[편집자 주]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됐다. 장애계는 오랜 싸움의 성과이자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반기면서도,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장애등급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만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시작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6개의 장애등급이 중증·경증으로 이원화된 ‘가짜 폐지’였다. 정부 예산도 장애계의 요구만큼 확대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그사이 싸움은 확장됐다.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없다며, 필요한 모든 것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요구했다. 현행법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의 목록을 발명해 냈다. 시민들은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을 가로 막았을 때에야 그 목소리에 반응했다.
2023년 6월 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하며 다섯 번째 전동행진을 벌였다. 이날 폭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매섭게 내렸다. 우산도, 우비도 무용했다. 그래도 앞을 향해 온몸으로 밀고 나아갔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출발해 마포대교를 건너 애오개역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새로운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장애인을 가두는 모든 제도의 철폐를 요구했으며, 이러한 변화를 위한 정부 예산 확대를 요구했다. 이 과격한 주장은 놀랍게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평등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너무 과격’한 것이어서, 보수언론과 정부, 여당 정치인들은 이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다고 연일 나무랐다.
날이 흐렸다. 저녁 8시경, 국회 앞에서 문화제를 시작할 때쯤에 폭우는 서서히 멈췄지만 날은 개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어둠을 헤치며, 다시 한 발을 뗀다.
박소연. 사진을 배우고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계기로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지원하는 자원활동교사를 하고 있다. 더 어른이 되기 전에 여러 세상을 만나려고 노력 중이다. 결국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고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