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30일 376일 차 국회의사당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5월 12일부터는 국회의사당역 승강장 4-2에서 진행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활동가들은 29일 밤, 국회의사당역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 농성장에서 1박을 했다. 30일 오전, 활동가들이 침남 등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활동가들은 29일 밤, 국회의사당역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 농성장에서 1박을 했다. 30일 오전, 활동가들이 침남 등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끈적하다. 어제는 폭우가, 오늘은 습기가 몸을 감싼다. 국회의사당역 승장강에 내려가려면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 농성장을 지나가야 한다. 활동가 몇 명이 정리 중이다. 아마도 어제(29일) 저녁 잠을 청한 사람들의 침낭을 정리하는 듯하다.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경찰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선전전 참여자가 훨씬 많다. 족히 300명은 돼 보인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장애등급제 폐지를 선언한 날, 다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말한다. 시민기자 양유진은 개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오늘은 광각렌즈가 필요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광각렌즈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다.

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 앉아 있다. 사진 양유진
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 앉아 있다. 사진 양유진
승강장 안전문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고문. 철도안전법 49조 1항에 따라 철도의 안전,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한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열차의 고의 지연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며 과태료 대상입니다. 열차 내부가 혼잡할 경우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직무집행을 방해할 경우 퇴거 조치됩니다. METRO9(메트로나인)”이라 적혀 있다. 사진 양유진
승강장 안전문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고문. 철도안전법 49조 1항에 따라 철도의 안전,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한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열차의 고의 지연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며 과태료 대상입니다. 열차 내부가 혼잡할 경우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직무집행을 방해할 경우 퇴거 조치됩니다. METRO9(메트로나인)”이라 적혀 있다. 사진 양유진

당산역 방향의 승강장에 모여 있다. 정다운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활동가는 스크린도어를 등지고 섰다. 승강장 2-2부터 3-2까지 늘어선 사람들. 첫 번째 줄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 뒤에는 맨바닥이나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 뭉게뭉게 있다. 하루 종일 물 폭탄을 맞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청한 사람들. 열기도, 채취도 승강장을 함께 채운다. 벽과 스크린도어 곳곳에는 경고문이 줄지어 붙어있다.

8시 2분,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발언한다.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커녕 동정과 시혜의 시선이 여전합니다.” 승강장엔 안내방송도 함께 나온다. “철도안전법…” 불법이니 그만하라는 내용이다. 최용기 앞에는 붉은 티셔츠와 모자를 맞춰 쓴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최용기 회장이 발언 말미에 “투쟁!”이라고 외쳤다. 핸드폰을 보고, 부채질을 하고, 멍하게 있던 사람들도 손뼉을 치며 “투쟁!!!”이라고 화답한다.

8시 11분, 정다운이 누군가를 신나게 소개한다. “광양 제철? 광양 불고기? 보다 유명한 광양의 김! 정!”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한명희 전장연 활동가는 바닥에 앉은 채로 “시선이다~ 시선 멤버다~” 소리친다. ‘시선’은 장애인 노래패 이름이다.

김정 광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환하게 웃으며 발언 중이다. 사진 양유진
김정 광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환하게 웃으며 발언 중이다. 사진 양유진

김정 광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앞으로 나온다. 광양지역의 현실을 말하고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한다. 목소리가 우렁차지만 그 속에 떨림이 전해진다. 또다시 불법을 그만하라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김정과 활동했던 사람들은 광양의 김정이 자기 앞에 나타난 것 자체가 반가운지 웃음을 보낸다. 김정의 발언은 멀찌감치 가니 흐릿해진다.

8시 17분, 유금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이 청테이프를 가지고 정다운에게 왔다. 마이크 두 개를 청테이프로 감는다. 마이크가 갑자기 쌍쌍바처럼 두 개가 됐다. 마이크가 ‘이 정도는 돼야 소리가 들리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안내방송에서 불법이라는 말이 줄기차게 나와서인지 정다운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장애인 권리보장이 안 된 사회에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8시 21분, 불나비의 붉은 모자를 쓴 조한우 민들레장애인야학 활동가가 나온다. 발언을 굵고 짧게 했다. 정다운은 잘 못 알아들었는데 혹시 내용을 누군가 알려줄 수 있냐고 한다. 다른 불나비 동료가 통역한다. “활동지원시간 많이 받기 위해서 열심히 투쟁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함께하실 거다.” 정다운이 “허허허, 종교의 책임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있으시죠”라고 덧붙인다. 불나비의 김재학 활동가도 자신을 소개하며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한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8시 24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온 배영준 활동가도 앞으로 나와 지역의 이야기를 나눈다.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행정의 답답함과 어려움을 토로한다. 역시 마지막 마무리는 “투쟁!”이다. 정다운이 마이크를 전해 받았다. 사람들과 구호를 주고받았다.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쳐”

“혐오는”

“쓰레기통에”

“이윤보다”

“생명을”

8시 28분, 강한별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말한다. “투쟁도 하고 언론에 많이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일상에서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몰라요. 사실 장애인의 권리는 모두의 권리입니다.” 쑥스럽다고 했으나 낭랑하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정다운은 “초신성”이라고 일컬으며 이다영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소개한다. “장애인권리 보장하라~~~!” 마치 성악가가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내지르는 듯하다.

노지성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전날 폭우 속 전동행진을 하느라 그의 휠체어에는 비닐로 쌓여 있다. 사진 양유진
노지성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전날 폭우 속 전동행진을 하느라 그의 휠체어에는 비닐로 쌓여 있다. 사진 양유진

8시 38분, 노지성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이상도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홍정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구지부 대표, 박민규 우리하나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조연희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이 순서대로 나와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장애인 인권의 현실,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기쁨과 어려움, 탈시설을 기만하는 말과 거짓기사에 대한 분노,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비’정상성을 입을 모아 토해낸다. 열차에서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전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손에 쥔 피켓을 더 높이 들어 올린다.

선전전을 진행 중인 활동가들. 그 앞을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양유진
선전전을 진행 중인 활동가들. 그 앞을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양유진

KBS에 ‘전국노래자랑’이 있다면 국회의사당역에는 ‘전국장애인차별자랑’이 있다. Mnet에 ‘쇼 미 더 머니’가 있다면 이곳에는 ‘쇼 미 더 지역’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슬픈 건 자랑보다는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지역 이동권이 이렇게 잘 보장돼 있어요’, ‘우리 지역에 장애인거주시설이 0개’, ‘우리 지역 탈시설장애인 인구수 엄청 많아요’, ‘완전 통합교육 되는 우리 지역!!’이라는 자랑들을 나누는 자리가 되길 상상해 봤다. 그럼에도 ‘열심히 투쟁해서 바꾸겠다’는 말들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들을 찍고 있다. 사진 양유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들을 찍고 있다. 사진 양유진

한쪽에서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사람들 사진을 찍는다. 한쪽 팔을 들어보라며 포즈를 추천하기도 한다. 조는 사람을 깨워가며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기쁜 표정과 포즈로 화답한다.

9시 3분, 박경석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이제 준비해 봅시다. 오늘 모인 사람들, 경찰 추산 몇 명일까요?” 이다영이 멈칫거리더니 “300명?”이라고 답한다. 박경석은 커피를 쏘기로 한다. 잠시 후 지하철을 어떻게 나눠 탈 것인지 말한다. “휠체어 탄 분들은 45명이더라고요. 열차 한 대가 총 6량이에요. 1량에 4칸이 있어요. 문 하나에 두 명씩 타면 한 열차에 8명이 들어가요! 2 곱하기 4는 얼맙니까?” 사람들은 “8!!”이라고 외친다. “우와~ 여러분, 정말 공부도 열심히 하시네요! 여러분은 이 세상에 합격입니다!!”

마지막 발언인 줄 알았으나 박경석은 임소연 전장연 사무총장을 초대한다. “(사람들은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을) 불법이라고 폭력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비폭력 투쟁이자, 불복종 투쟁이자, 이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선 활동가들. 사진 양유진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선 활동가들. 사진 양유진

선전전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같이 구호를 외치고 열차를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열차의 모든 칸에 장애인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불법이고 폭력이라 한다면 이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음이 매우 분명하다. 사회라는 열차의 모든 칸에는 장애인이 함께 탑승해야 한다.

“전장연의 시위로 현재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승강장일기에서 감히 말하겠다. ‘지연’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가기 위한 속도라고.

<끝>

이것으로 승강장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승강장일기는 지난 1월 11일부터 6월 30일까지 총 48회 연재됐습니다.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장애인의 지하철 선전전을 기록하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새로운 기획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승강장일기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