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갈등의 원인, 가족을 제거하라?!
모든 갈등의 원인, 가족을 제거하라?!
어머니는 조금 다르시다. 어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하셨다. 그것도 빨리 졸업해 농사일 거들고 동생들 돌봐야 한다고 외할아버지께서 실력과 관계없이 월반을 시키시는 통에 그나마 제대로 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부지런함과 성실함(부모님의 많지 않은 공통점이다), 그리고 삶으로부터 얻는 지혜 등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부하시다.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거치신 아버지는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말이 통하지 않는 보수적인 경상도 남자의 전형인데 반해, 어머니는 감정적으로 동의하시지는 않아도 적어도 논리적으로 대화가 가능하시고, 현실적인 판단도 빠르신 편이다.
어머니의 그런 면이 사글셋방에서 날품팔이로 시작한 살림을, 나 같은 장애아동을 기르면서도 지금의 비교적 안정적인 살림살이로 발전시킨 가장 기본적인 토대였지 않았나 싶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은 정규교육조차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알아채셨다. 내가 알기로 어머님께서 가족을 위해 하시는 일을 줄이고, 성당에서 하는 봉사활동 등 당신이 하고 싶은 활동들을 시작하면서,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닌 당신과 아버지를 위해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신 것이 아마 그즈음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어머니는 나의 그런 선언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못 미덥지만, 일단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신 것 같다. 다행히 대학 등록금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 회사의 노동조합 장학금에서 보전되고,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기간이 좀 남아 경제적인 부담은 크게 가중되지 않은 상황에, 고3 때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내 생활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생활로부터 해방되셨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어느 정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선언이 나만의 해방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 나아가 가족구성원 전체의 해방을 선언한 것임을.
우리 사회는 여러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이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TV 드라마, 특히 늦은 아침이나 이른 저녁, 주부들을 텔레비전 앞에 묶어두는 소위 막장드라마들의 주된 소재가 바로 가족관계다.
배우자와 아이가 있는 남녀가 가족들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다 들켜 가족간에 서로 갈등하다 파탄이 나고,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반성하고 각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장인 아들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시시껄렁한 문제로 서로 갈등하다 또한 마찬가지의 결론에 이른다.
또 죽을 만큼 사랑하는 남녀가 각각의 가족의 반대, 또는 계급적 차이에 의해 갈등하다 결국 헤어지고, 그 둘 사이에 생긴 아이가 나중에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미워도 다시 한 번’류의 드라마, 또는 영화도 많다.
장애 또한 가족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의 하나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서로 사랑하지만 상대방 가족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하고,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하거나 시설에 버리는 가난한 부부 이야기도 가끔 등장한다. 뭐 이런 일들은 실제로 비일비재해서 막장드라마에 등장한다 하더라고 과장된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족관계를 미화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도 있다. 대부분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거나, 스타 연예인들의 인생역정에 가족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조명한다. 또한 개인적, 혹은 관계적인 문제로 틀어진 가족관계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주는 솔루션 프로그램도 최근 들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들 드라마나 영화의 공통적인 주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비록 가족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이를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 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사람이 빠져들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이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근데 이것이 정말 옳은 명제일까?
위에서 제시한 드라마나 영화, 다큐멘터리, 솔루션 프로그램 등의 내용에서 공통적인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가족’ 아닌가?
위의 내용에서 ‘가족’이라는 관계만 제거한다면, 더러운 불륜에 의한 치정극도 아름다운 로맨스가 될 것이고, 고부간에 주도권 쟁탈전을 할 필요도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계속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며, 미워도 다시 한 번처럼 자신을 버린 정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눈물 콧물 짜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장애인이라 해도 연애하고 결혼하는 데 있어 타인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며, 장애아 낙태나 유기의 문제는 관계나 윤리의 문제가 아닌 빈곤 자체의 문제로 한정될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김주현의 경계에서 언어장애를 동반한 뇌성마비 장애인.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지만, 먼 ‘하늘’보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시설공대위, 관악사회복지 등 여러 장애인운동단체와 지역운동단체에서 활동했고, 두 차례에 걸쳐 각각 다른 이름의 진보정당에서 각각 다른 지역의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는 진보신당 대외협력실 국장으로 일하며 주로 장애인운동과의 연대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30대 중반의 중견(?)활동가인 현재까지도 중증과 경증의 경계, 이성과 감성의 경계, 장애인운동과 정치운동, 중앙과 지역의 경계에서 좌충우돌 고민과 실천을 통해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