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자리, 노프라이드 파티 ②

[편집자 주] 초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아래 길리어드)는 작년과 올해, 퀴어퍼레이드(아래 퀴퍼)에 스폰서십 파트너 부스와 행진 차량에 참여해 ‘HIV 감염인을 응원합니다’ ‘Inclusion & Diversity(포용성과 다양성)’ 등의 캠페인을 벌였다. 길리어드는 성소수자와 HIV/AIDS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타파하고자 열리는 ‘프라이드 갈라’의 주요 후원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길리어드의 ‘퀴어 친화적’ 마케팅 이면에는 약에 대한 특허 독점과 터무니 없이 높은 약가를 통한 자본의 착취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착취해 온 대상이 성소수자와 HIV/AIDS감염인이라는 점이다. 길리어드는 HIV/AIDS 치료제 트루바다 특허권을 가진 회사다. 국내 약값은 한 달에 약40만 원이며, 최근 개발한 신약 레나카바비르는 5000만 원이다. 신약은 매일 먹어야 하는 구약과 달리 6개월에 한 번 주사만 맞으면 된다. 이렇게 높은 약가로 얻은 이윤 중 극히 일부를 퀴퍼 때 사용하면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른바 전형적인 ‘핑크워싱’을 저지르는 기업이다. 이러한 길리어드에 대한 퀴퍼 참여 결정에 지난해 일부 성소수자운동 진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목소리는 올해 더욱 두터워졌다. 퀴퍼 전날인 6월 30일, 길리어드 코리아 본사 앞에서는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퀴퍼 날인 7월 1일에는 ‘노프라이드 파티’가 진행됐다. 비마이너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기원이 되었던 스톤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며, ‘노프라이드’에 관한 이야기를 싣는다.

《 퀴어의 자리, 노프라이드 파티 》

①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삶과 정치 드러내기 / 나영정

② 나는 너에게 동지일 수 있는가 / 다니주누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7월 1일,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모를 찝찝함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성소수자를 위한 자긍심의 무대, 서로를 향한 존중과 환대의 공간,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날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기쁘지 않았다. 그 공간은 각국의 대사관들과 여러 인권 단체,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글로벌 제약회사가 함께 있었다. 

그곳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성소수자 당사자지만 나는 그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존재,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나에게 퀴퍼는 더 이상 자긍심의 무대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인 내게 그날 퀴퍼는 ‘업무 일정’ 정도였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나에게 배정된 ‘부스 운영 시간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을지로 반대쪽인 합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노프라이드 파티’로 향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편안했다. 그곳에서 자긍심이라고 부르는 프라이드(Pride)의 의미를 새삼 깨달음과 동시에 쓸쓸함과 외로움, 서러움이 눈물과 함께 치밀어 올랐다.

노프라이드 취지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어딘가에 갇힌 삶, 초국적 기업의 착취 대상인 삶, 경찰의 단속 대상인 삶, 삶의 조건이 불법인 삶이 있습니다”, “배제 위에 세워진 퀴어 자긍심의 정체를 묻고자 한다”, “퀴어 커뮤니티는 우리를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혐오하지 말고 지지하라!”

7월 1일, 합정 티라미수에서 노프라이드 파티가 열렸다. 벽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 W/O F.
7월 1일, 합정 티라미수에서 노프라이드 파티가 열렸다. 벽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 W/O F.

나는 젠더퀴어1), 나는 HIV감염 당사자2), 나는 가난한 성소수자다. 나는 ‘을지로 사람들’이 말하는 ‘멀끔한 성소수자들’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나는 부끄러운 존재였고 드러내지 않아야 할 다른 이면이었다. 이것은 잊고 있었던, 어쩌면 스스로 외면했던 사실이었다. 

‘성적으로 문란해서 에이즈에 걸린다’는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혐오세력이 하는 말 같지만 ‘이쪽’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찜방에서 하는 섹스가 더럽다’고 말하며 ‘그런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와 ‘성소수자가 모두 에이즈에 걸리는 건 아니’라며 일반화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내부에서 더욱 편을 가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 편이 되어준답시고 ‘바이러스는 겨우 하나의 알약으로 충분히 관리된다’며 마치 그 알약과 바이러스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에게 나의 안위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성소수자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권력관계, 이를테면 나이나 외모, 성향 등에 따라 만들어지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권력관계는 콘돔과 같은 최소한의 예방조치마저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지금 생각하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내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을 무시하거나 그러한 사정 따위는 들을 가치도 없다며 HIV감염인을 향해 더럽고 헤프다며 손가락질하고 낙인을 찍는다. 그렇게 나 또한 성소수자 사회에서 내쳐졌다. 그래서 나는 더럽고 문란한 사람이 아닌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성애자)이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포장하며 커뮤니티 안에 끼어 있었다. (누군가는 그럼 그럴 필요 없다고 나가라고 또 내보낼지도 모르겠다.)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활동가의 길로 걸음을 옮긴 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자책했고 작은 방안에서 울고 있었다. 삶이 너무 외롭고 지쳤다. 언제 어떻게 자살할지 생각하는 내가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그런 나에게 나도 인간이며 인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댄 성소수자의 프라이드엔 정작 내가 없었다. 나는 커뮤니티 안에서 감염 당사자라는 것을 감춰야 했으며 연애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바이러스를 옮겼는지 여부보다 감염인이니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19조)은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고, 결국엔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아닌 상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따라 연애의 향방이 달라졌다.

2022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모습. 사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22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모습. 사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병원은 다를까. 사랑니를 뽑으러 방문했던 혜화의 치과병원은 혈액검사를 통해 내가 감염인인 걸 확인했다. 다음날 의료진은 내게 전화를 걸어 “왜 말하지 않았냐”며 따지고 혼내고 추궁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이미 죄인이 되어 버렸고 결국 감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술 일정을 다시 정하고 별도 공간에서 제대로 작동도 되지 않는 드릴로 치료를 마쳤다. 내가 경험한 것은 차별일까, 아니면 치료받았으니 다행인 걸까. 나를 담당하는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의 상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다른 과의 의료진은 나를 무서워한다. 나는 괜찮은 건가, 아니면 위험한 존재인가? 

대만퀴퍼에서 처음 만났던 초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는 서울퀴퍼에도 등장했다. 제약회사가 왜 퀴퍼에 등장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길리어드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약을 매일 먹으며 살아간다. 그 약들은 HIV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 더 이상 에이즈(AIDS)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며 인류를 구원할 기적의 약으로 포장된다. 감염인이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이제 약만 잘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약 복용은 결코 쉽지 않다. 병원에서 진단받고 첫 처방을 받는 순간에도 이 약을 지금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앞섰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고, 질병명이 언제 어떻게 공개될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서 약 먹는 데에 익숙해졌다. 그러자 이젠 내가 오늘 한 알의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린다. 그 경험은 꽤나 가혹하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가깝다. 혹여나 그 약을 두고 외박하게 된다면 더 끔찍해진다. 나는 그 작은 알약 하나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었다. 나는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내가 먹는 알약의 값은 저렴하지 않다. 약의 부작용으로 골밀도가 감소하고 떨어지는 골밀도를 잡기 위해 약을 더 추가하지만, 그 값비싼 약은 계속해서 내 몸에 쌓인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왜 이 생고생을 하며 살아가는지 한탄하고 있을 때 하필이면 주치의에게 들켜 항우울제도 처방받았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이제 나는 무성욕에 이르는 반(半) 고자가 되었다. 매일 아침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쓸쓸하고 외롭고 더럽고 문란한 데다 병들고 지친, 가난한 나는 어디서 편히 쉴 수 있나.  

*                    *                    *

1) 젠더퀴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짓지 않고 특정 성별을 지정할 수 없는 젠더를 가진 사람. 성별이 하나 또는 그 이상일 수 있다.
2) HIV감염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 약물로 바이러스의 양을 조절하여 타인에게 전파시킬 수 없을 정도로 낮출 수는 있으나 몸에서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는 없다.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거나 바이러스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필자 소개

다니주누.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이자 장애운동 활동가로 반차별 운동을 합니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구호와 함께 투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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