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센터 시설화하려는 장복법 개악안
투쟁 끝에 통과 불투명 해졌지만 ‘불씨’는 남아
이기일 복지부 차관은 법사위서 거짓말 일색
장애계 사과요구… 서울시는 벌써 IL센터 압박 중

장애인 200여 명이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에게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악 및 장애인자립생활운동 퇴행 저지 긴급투쟁단(아래 긴급투쟁단)’은 3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이 차관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에 대해 한 거짓말을 사과하라”라고 성토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이기일 차관 사과 촉구 집중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이기일 차관 사과 촉구 집중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IL센터 시설화라니… 농성 투쟁 끝에 개악안 통과 불투명

장애계의 끈질긴 투쟁 끝에,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은 법제사법위원회(아래 법사위) 제2소위원회에 회부됐다. ‘법안 무덤’이라 불리는 2소위에 회부되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작아진다.

‘개악안’이라 불리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은 평소 진보적 장애인운동과 대립각을 세워온 이종성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지난 1월 26일 대표발의했다. 현재 독립된 조항(54조)으로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58조)로 편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찬성 측에선 정부의 IL센터 지원이 더 늘어날 거라고 낙관한다. 반대 측에선 예산 지원 근거가 불명확하고 정부 감시가 강화돼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후퇴할 거라 전망한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개정안이 “IL센터를 장애인거주시설로 만드는 법안”이라며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와 자립생활운동을 퇴행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이에 따라 긴급투쟁단을 구성해 지난 5월 11일부터 국회의사당역에서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은 4일 기준 86일 차를 맞았다.

밧줄에 걸린 피켓에 “이종성(지장협 전 사무총장)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악 시도! 장애인복지법 개악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밧줄에 걸린 피켓에 “이종성(지장협 전 사무총장)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악 시도! 장애인복지법 개악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이 이종성안보다 늦게 발의됐다?

지난달 26일 열린 법사위에서는 해당 개정안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진행됐다. 이 과정 중 이 차관이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하여 장애계의 공분을 샀다.

우선 이 차관은 장애계가 요구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11월 18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과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언급하며 “최혜영 의원, 김민석 의원안도 논의되고 있다. 유사한 법안 두 개가 올라오니 같이 병합해서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최혜영 의원 발의안이 관련 있는 건가”라고 묻자 이 차관은 “상임위 논의할 때는 발의안이 없었다. 이것(이 의원안)만 있었다. 그 뒤에 발의된 것처럼 보인다”고 답했다.

또한 “그 법안(최 의원안)은 (이 의원안과) 좀 틀리다(다르다). 그 법안은 장애인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되겠고, 이거(이 의원안)는 장애인복지지설의 하나의 카테고리로 장애인자립지원센터(IL센터)가 들어오는 거기 때문에 약간은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최 의원안이 이 의원안보다 약 1년 2개월 먼저 발의됐는데도 이 의원안보다 늦게 발의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IL센터를 시설화하는 이 의원안과 최 의원안이 아무 관계 없는 것처럼 말했다.

이에 한자협은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은 IL센터의 지위뿐 아니라 복지부 장애인정책에 관한 전반적 변동을 수반한다”며 “이 차관은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을 전제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중요한 변화를 간과한 채 거짓 설명했다”고 규탄했다.

- IL센터는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이 차관은 IL센터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의원안을 언급하며 “이 법은 사실 장애인들한테 활동보조(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을 법인화, 시설화한다는 것이 되겠다.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 기관들(IL센터)을 품질관리 해야 한다. 지금은 임의단체로 돼 있는 걸 사회복지시설로 해서 운영기준을 만들어놔야 되기 때문에 사실은 장애인들을 더 잘 보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자협은 IL센터가 이미 법적지위를 가졌다고 반박했다. “2007년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을 통해 IL센터에 법적지위가 부여됐으며(54조), 2015년에는 정부의 지원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지원의 근거가 명시됐다(54조 3항)”며 “또한 장애인활동지원기관은 매년 지방자치단체 지도점검을 받고 2년에 한 번씩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선영 한울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양 소장은 상의에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 결사 반대한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사진 하민지
양선영 한울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양 소장은 상의에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 결사 반대한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사진 하민지

- 한자협이 이종성안에 합의했다?

이 차관은 이 의원안이 발의될 때 한자협 등 반대 측 의견을 청취했다며, 이 의원안 통과 후 시행 시기를 늦추고 그 과정에서 협의를 이어가면 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법사위에서 “협의가 완전히 됐다는 말씀은 안 드렸다. 그 기간(이 의원안 통과 후 시행 전에)에 협의하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한자협은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장애인을 철저히 무시한 어불성설 발언”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정다운 한자협 활동가는 “한자협은 이 의원안 통과를 주장한 적이 없다. 우선 법안부터 통과시키고 협의하겠다는 건 장애인을 완전 무시하는 일”이라며 “거짓말로 법안통과시키려 하지 말고 장애인에게 사과부터 하라”라고 규탄했다.

이기일 차관 사과 촉구 결의대회에 약 200명이 참석했다. 사진 하민지
이기일 차관 사과 촉구 결의대회에 약 200명이 참석했다. 사진 하민지

- ‘lL센터, 왜 이렇게 집회 많이 나가나?’ 벌써 압박

긴급투쟁단은 송준헌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 면담을 앞둔 4일 오후 1시에는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자협은 △IL센터의 장애인복지시설화 철회 △IL센터 개소당 지원금 확대 △탈시설 로드맵 민간 인프라로서 IL센터 명시 등 IL센터 지원을 강화할 것을 복지부에 요구했다. 또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 즉각 추진, 이 차관의 거짓발언 사과와 이 차관 면담 등도 촉구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이 차관은 이 의원안이 합의로 발의된 것처럼 왜곡을 일삼았다. 우리는 이 의원 개악안에 분명히 반대한다”며 “최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논의하라. 21대 국회에서 이 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복지부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은 한자협 활동가는 벌써 IL센터에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활동가는 “IL센터가 권익옹호활동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게 현행 장애인복지법 54조에 명시된 역할이다. 그런데 지도점검을 나온 서울시 공무원이 ‘왜 이렇게 집회에 많이 나가느냐’며 ‘이제 IL센터는 시설화될 것이니 다음 점검 때 이런 것을 준비해라’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고 증언했다.

정 활동가는 “어제(3일)는 평가지표 개선회의가 있었는데, 서울시 공무원이 IL센터의 고유한 활동보다 서비스 제공 중심의 행정을 이야기했다. 나아가 상대평가를 실시해 하위 10% IL센터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말까지 했다”며 “IL센터를 시장논리에 맡겨 관리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IL센터를 길들이려고 하는데, 이 시도에 IL센터가 절대 포섭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면담에는 송준헌 장애인정책국장을 비롯해 한자협,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아래 한자연) 대표단들이 참석했다. 한자연은 이 의원안 찬성 측이다.

이날 면담에서 진형식 한자연 회장은 종사자 처우 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의 향상을 이야기하며 이 의원안에 대한 찬성을 재차 피력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중증장애인 당사자 조직으로의 IL센터의 역할을 강조하며 IL센터만의 독자성 강화 방안을 촉구했다. 면담에서는 이 같은 내용으로 90여 분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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