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편집자 주] 9월 25일에 출간 예정인 신간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상호교차성, 삶과 정의에 관한 최전선의 이야기들》(앨리스 웡 엮음, 박우진 번역, 가망서사)은 미국의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작가인 앨리스 웡이 미국 장애인법(ADA) 제정 30주년에 출간한 장애 당사자 에세이 선집이다. 몇몇 역사적 인물의 영웅담 대신 평범한 장애인의 진짜 삶을 담겠다는 취지로 엄선한 다채로운 경험과 사유는 당사자들이 연결되고 주도해 장애인권을 법제화하고 차별을 철폐해온 운동의 역사와 맞물리며 장애서사의 가능성을 넓게 펼쳐 보인다.
장애서사의 의의는 장애인의 현실을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점하고 있는 ‘변방의 시좌’(김도현, 《장애학의 도전》)에서 구조적 부정의의 구체적 양상을 그려내며, 배제와 혐오에 저항해 연립과 정의를 실천한 과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장애인의 지혜야말로 생태 재난과 정치적 불안정 등 비장애중심적 세계가 자초한 총체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 나누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를 관통한다.
비마이너와 가망서사는 책 출간에 맞춰 이들 에세이 중 한국에서도 첨예한 주제인 ‘장애 정의’, ‘재생산 권리’, ‘이동권’, ‘장애문학’과 관련된 네 편을 골라, 국내 필자의 글과 교차해 싣는 연재를 시작한다. 이 글들을 통해 가장 취약한 자리에서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지어온 장애인의 삶의 가치를 담은 장애서사의 힘을 전하고 앞으로의 장애 재현과 서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자 한다.
나를 픽업해야 하는 차는 정해진 시간보다 15분이나 늦게, 그것도 길 반대편에 도착했다. 나는 내가 근무하는 뉴욕시청 건물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서 있지 않도록 경비원들이 마련해준 자리였다. 경비원들은 저녁에 내가 내려오면 의자를 밖으로 꺼내주었다가, 내가 차를 타면 다시 가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차는 내 앞이 아닌 길 저편에 섰다. 나는 일어서서 운전사의 눈에 띄려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인도 쪽으로 다가가 허공에 목발을 흔들어댔다. 이른 저녁이었고 인도에는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운전사는 거리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나를 발견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실례합니다.” 나는 앞으로 조금 더 나가 행인 한 명을 불렀다. “길 건너에 액세스–어-라이드(Access-A–Ride) 차량이 보이시나요?” “뭐라고요?” 행인이 되물었다.
“액세스-어-라이드요. 저기 있는 파랗고 흰 버스요.” 내가 목발로 가리키자, 행인은 비로소 길 건너편을 바라봤다. “아.”
하지만 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직전에 운전사가 마침내 나를 발견했다. 운전사는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을 들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가 저를 본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어쨌든 고마워요.” 운전사는 안경을 끼고 턱수염이 희끗희끗한, 마르고 나이 든 흑인 남자였다. 그가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해 길을 건너왔고, 나는 행인의 물결을 용감하게 헤치며 그를 향해 연석 쪽으로 갔다.
“가요.” 운전사는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와 함께 브로드웨이를 달리는 차들 사이로 길을 건너자고 재촉했다. 나는 망설였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막아드릴게요.” 그는 차도 한복판을 걸어가며 다가오는 차들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나는 목발 끝이 미끄러운 곳을 짚거나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급하게 걸었다.
“천천히 하세요. 제가 차를 멈출게요.” 그는 나를 안심 시키려 했지만, 나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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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세스-어-라이드는 뉴욕의 보조교통서비스로 다섯 곳의 자치구 내에서 운영된다. 뉴욕 지하철역 중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역이 20퍼센트뿐인 현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수십만 명의 장애인과 노인의 교통수단이다. 뉴욕시 교통국이 여러 개의 민간 업체들과 계약해서 운영하며 승용차, 미니밴, 소형버스가 이용자들의 “집 앞부터 집 앞까지” 이동한다. 여러 명의 이용자가 함께 탑승하며 요금은 뉴욕의 다른 대중교통 요금과 동일하다.
이용자들은 대체로 매번 다른 운전사와 다른 업체를 만난다. 나처럼 하루 두 번씩 출퇴근용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아침에 만나는 운전사와 저녁에 만나는 운전사가 다르고, 다음날에는 또 다르고, 일주일 내내 계속 새로운 운전사를 마주치게 된다. 그날 만난 운전사도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뉴욕 토박이이고 뇌성마비장애인인 나는 다른 아이들이 혼자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하는 열한 살 때부터 액세스-어-라이드를 이용해 왔다. 올해로 16년 차다. 처음 8년 동안은 이 서비스의 비효율성과 불안정성에 대해 진정한 밀레니얼 세대답게 항의해왔다. 가족, 친구, 소셜미디어 팔로워들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국민청원을 하고, 특히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업체에 공식적으로 불만을 접수했다.
하지만 그것은 1단계에 불과했다. 나의 궁극적인 계획은 로스쿨에 가서 만연한 차별과 혐오에 대항해 싸우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얻는 것이었다. 마이크 타이슨의 고향에서 나고 자란 흑인 장애 소녀답게 말이다.
나는 2년 전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집으로 돌아와 서비스 이용자들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노선 등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문서화해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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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내가 버스를 탄 시간에도 내가 출연한 지역 뉴스가 방송될 예정이었다. 브루클린에 있는 우리 집과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직장은 1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어, 보통은 차로 4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액세스-어-라이드를 타면 거의 두 시간쯤 걸린다. 여러 이용자를 태우고 내려주느라 그 정도는 흔한 일이다. 기자는 이 경로를 뒤따라오며 취재했었다. 그날도 나는 차를 타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 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집 쪽으로 가기만으로 희망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일이 꽤 잘 풀리는 것 같았다. 버스에는 여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좌석이 여섯 석 정도 되고 뒤쪽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있는 소형 버스였다. 나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앞줄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운전사는 맨해튼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 쪽으로 향했고,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헤드폰을 끼고, 뉴스를 봤다는 삼촌의 문자 메시지에 답을 했다. 전 못 봤어요. 당연히 액세스-어-라이드 타고 있죠. 제가 제안한 걸 강조해줬나요?
나는 최근 뉴욕시 교통국 이사회에서 액세스-어-라이드의 세 가지 주요 개선 사항을 제안했다. 노선 개선, 이용자들이 근처에 있지도 않은 차량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지 말 것, 그리고 승차와 관련한 이용자와 운전사 간의 더 직접적인 소통이 그것이었다.
액세스-어-라이드 이용자는 승차하기 전날 오후 다섯 시까지 차량을 예약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에 따라 컴퓨터로 생성된 픽업 시간을 받게 된다. 이동 시간은 이용자의 승하차 지점 사이의 거리에 따라 조율되는데, 픽업 시간은 도착 시간 두 시간 전인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어 이동 거리가 10~15킬로미터라면 액세스-어-라이드는 최대 탑승 시간을 한 시간 35분으로 예상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뜨겁거나, 날씨가 어떻든 간에 이용자들은 정해진 픽업 시간에 야외에 있는 픽업 장소에서 대기하라고 안내받는다. 또한 교통 체증이나 지연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대 30분까지는 차량을 기다리라고 지시받는다. 30분 늦게 도착한 운전사도 제시간에 온 것으로 간주된다. 한번 지연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다음 이용자들은 몇 시간씩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교통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운전사는 미리 정해진 노선에 따라 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용자들이 지각할 경우 운전사는 5분까지만 기다린다. 운전사가 도착했을 때 이용자가 보이지 않으면 전화를 걸도록 권장되지만, 의무는 아니다.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내가 탄 버스가 어떤 이용자를 태우기 위해 정차했는데, 그 이용자가 자리에 없었다. 몇 분 후 70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 근처 맥도날드 매장에서 급히 나왔고 보행기를 밀며 다가왔다. 보행기에는 검은색 쓰레기봉지가 세 개 걸려 있었다. 운전사는 리프트를 내리기 위해 버스에서 나가더니 소리쳤다. “내가 가버리지 않아 다행인 줄 아세요. 5분이 넘었거든요.”
“5분이요?” 할머니가 되물었다. “나는 세 시간 넘게 기다렸어요. 맥도날드 직원들이 안에서 기다리게 해줬는데, 차가 왔을 때 바로 보지 못했다고요.”
“당신은 짐 한도도 초과했네요.” 운전사가 덧붙였다. “두 개까지라고요. 당신 짐은 세 개잖아요. 이게 바로 액세스-어-라이드 이용자들의 문제라니까. 당신들은 이득을 취하고 있잖아요. 이용 자격이 있다고 유세 떨기는.”
[운전사가 말한 ‘이용 자격’에 해당하는] ‘(사회복지) 수급권(entitlement)’은 인종과 계급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문 용어인데, 장애 영역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그 말은 우리가 마치 빚쟁이처럼 행동한다는 뉘앙스로 쓰이곤 한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용법에는 특정한 지위나 조건의 사람들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주어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게 무엇이든,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운전사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나서, 짐은 보행기에 걸려 있으니 당신이 실어줄 필요도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 가끔만 외출을 하며 그때 최대한 장을 봐야 하는데 쓰레기봉투에는 그에 필요한 장바구니들이 들어 있다고 해명했다.
“당신에게도 어머니가 있나요?” 할머니가 운전사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나이 들었을 때 이런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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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 중 하나이며 늘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이 도시에서 액세스-어-라이드 차량이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전사와의 소통 절차가 너무나 비효율적이어서, 이용자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불필요하게 가중시킨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예를 들면, 이용자가 자신이 기다리는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려면 대중교통 오퍼레이터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그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읽어준다. 만약 GPS로도 차량을 추적할 수 없거나 이용자가 운전사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는 경우에는 오퍼레이터가 차량을 파견한 업체에 연락을 하고, 업체에서 운전사에게 전화를 건다. 또한 이용자가 액세스-어-라이드 측의 규정을 위반하면 벌점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이용 자격에 영향을 미친다. 규정에는 탑승 취소를 최소 두 시간 전에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최근 뉴욕시의 액세스-어-라이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에 벌점 때문에 이용을 금지당한 사람은 3만 1천 명이 넘었다.
뉴욕시 교통국은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액세스-어-라이드 이용자가 30분의 대기 시간 내에 차량이 도착하지 않아 택시를 탄 경우 그 비용을 환급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택시 수를 감안해봤을 때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게다가 환급을 받기까지는 두세 달이 걸린다. 뉴욕의 비싼 택시요금을 미리 지출할 여력이 없는 사람도 많다.
이용자 입장에서 액세스-어-라이드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고 탑승을 변경할 여지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차량을 탔을 때는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정해진 노선을 따라 정해진 정류장을 거친다. 하지만 액세스-어-라이드 이용자들은 자신이 탄 차량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목적지까지 몇 개의 정류장이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이용자들을 태우고 내리느라 거의 시티 투어를 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목적지를 지나쳐서 되돌아오는 일도 있다.
액세스-어-라이드 고객 서비스 담당자에게 두 시간이나 걸리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출퇴근길에 대해 불평했더니 그는 어딘가에 실제로 도착해야 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액세스-어-라이드를 예약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는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행여 직장에 제시간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경로가 뒤죽박죽인 데 대한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시간에 도착해도요?” 그가 되묻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문제의 그날, 목적지 방향으로 가는 차량을 탄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