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생산노동’ 호평받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내년도 서울시 사업 폐지
장애인 400명·전담인력 50명 일자리 잃어
장애계, 오세훈 향해 강경 대응 예고
-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파업가
“흩어지면 죽는다 /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 하나 되어 우리 나선다 / 승리의 그날까지”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파업가를 불렀다. 노란 조끼에 ‘저는 ○○○ 해고자입니다’라고 적힌 몸자보를 입은 중증장애인 400명이 ‘팔뚝질’을 하며 “해고를 철회하라”고 외쳤다. 빈칸에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었다.
내년에 서울시 사업 폐지로 해고 위기에 놓인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50명이 파업을 예고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파업 선언 결의대회를 열었다. 마로니에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손에는 ‘디서블리티 프라이드,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적힌 작은 손깃발과 피켓이 쥐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진이 있는 피켓엔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폐지·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총 505명 해고.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해고 위기에 놓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이상용 씨는 언어장애로 AAC(보완대체의사소통)를 이용해 발언했다. 그 또한 ‘저는 이상용 해고자입니다’라고 적힌 노란 몸자보를 입고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내년 예산을 0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저는 수입이 0원입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대신 서울시가 제시한 일자리는 우리 중증장애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만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들만이 할 수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다시 만들 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투쟁할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님,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이규석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도 발언했다. 중증의 언어장애로 그의 발언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와 함께 “보장하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은 우리사회에서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로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우선 고용 대상자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최근 3년 이내에 지역사회로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 노동은 지자체 입장에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일자리는 이러한 의미를 인정받아 이후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서울시의 입장은 돌변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탈시설 등을 공격하기 위한 보수 정치인들의 화살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꽂혔다. 서울시는 지난 7월에는 시위·집회·캠페인을 하는 권익옹호활동을 직무에서 아예 제외하고, 내년에는 해당 사업을 폐지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58억 원은 0원이 됐다.
서울시는 내년에 이 사업을 폐지하고 ‘장애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서울형 시간제)’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최중증발달장애인이 수행하기엔 불가능한 직무로 채워져 있다.
- 중증장애인 노동자 해고가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
이날 결의대회에 연대 발언을 하러 온 사람들은 ‘약자와의 동행’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오 시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게 약자와의 동행인가. 오 시장은 시대의 흐름도 모르고 대통령을 꿈꾸는 모양인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예산 철회한다면 그 알량한 시장 자리에서도 쫓겨날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현미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장애아동의 부모이자 학교에서 특수교육실무사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 수석부본부장은 “최중증장애인은 다른 노동자에 비해 노동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렇다면 공공은 최중증장애인의 노동 창출에 힘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사업을 폐지하고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해고는 살인이다. 서울시는 해고를 철회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동에서 탈락하고 착취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으로 자본은 이윤을 쌓고 한국사회는 부유해 졌지만 대다수 사람은 힘들게 살아간다. 그래서 최중증장애인의 파업 선언이 반가웠다”면서 “장애인 노동자 해고가 어떻게 약자와의 동행인가. 서울시는 전쟁을 선포한 거다. 전쟁의 최전선에 전장연 동지들이 있다. 해고 철회를 넘어 이 사업을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싸움의 시작으로 만들자”고 말했다.
전장연이 55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한 지난 2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에 전장연을 겨냥해 “출근 방해는 '사회적 테러'”라는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전장연은 사실상 '비뚤어진 강자'에 가깝다”면서 “전임 시장 시절 전장연 시위 참여 장애인들에게 일당까지 지급하는 예산을 만들었지만, 이제 그런 비정상은 중단됐다.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에는 언제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는 이러한 오 시장을 향해 “오 시장이 저지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이야말로 사회적 테러”라면서 “약자와의 동행 같은 구역질 나는 말은 고사하고 연행이나 하지 말아라. 오 시장은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가해자이고, 장애인고용촉진법도 어기는 범죄자”라고 일갈했다.
- “오세훈 시장의 배를 째서 중증장애인의 권리 되찾아 오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데모, 집회, 점거를 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만들었다. ‘이것도 노동’이라고 외쳤지만 사실 권력자들이 주고 싶으면 주고,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버리는 쓰레기였던 것 같다”며 무거운 마음을 표했다.
박 대표는 해고 예정자를 뜻하는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파업한다고 하면 서울시는 12월에 월급 안 주겠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보조금 끊겠다, 나아가선 노동자들 퇴직금 안 주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싸움을 결의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투쟁”이라고 외치며 힘차게 응답했다.
박 대표는 “서울시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전국으로 확산돼 다른 지자체에서도 제도화되고 있다. 전남은 올해 90명에서 내년엔 120명으로 확대해 고용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왜 서울시장만 이 일자리가 ‘비정상’이라고 하나”고 비판하며 “오 시장이 공개적으로 하는 모든 행사에 찾아가 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강경하게 투쟁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권력자들이 배 째라고 나오면 그 배를 째자. 그 배를 째면 우리의 권리가 나온다”며 결의를 다졌다.
이날 결의대회는 서울시에 대한 1차 경고 파업으로 근무시간 외에 이뤄졌다. 전장연은 서울시가 대화를 통해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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