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이 시설에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편집자 주] 지난 10월 26일, ‘장애인 탈시설 범사회복지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장애인 주거복지정책의 방향성 모색 토론회’에 이기수 신부가 발제자로 나섰습니다. 이 신부는 장애인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의 원장이기도 합니다.

이 신부는 비인간동물의 지능과 발달장애인의 지능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어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1급 지적장애인은 앵무새, 까마귀 지능에 해당하며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끼리, 범고래 지능에 해당하는 3급 지적장애인부터 자립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장애계는 “종 차별이자 장애인 차별 발언”이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지난 10일,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수 신부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정순택 대주교에게 면담요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아래 부모회) 회원들이 기자회견 앞뒤로 맞불집회를 열었습니다. “전장연은 해산하라”, “서울시 탈시설 지원 조례 폐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연 기자회견을 지켜보다가 항의하는 발언을 해서 경찰이 제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는 부모회 회원들을 향해 쓴 편지를 기자회견에서 낭독했습니다. 박 활동가는 김현아 부모회 회장에게 편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김 회장이 경찰을 통해 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박 활동가는 꿋꿋하게 전달했고, 김 회장은 편지를 받아 갔습니다.

김 회장이 받아 간 편지 전문을 싣습니다. 시설수용 피해생존자인 박 활동가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회 회원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함께 사과를 받아내자고 요청했습니다. 박 활동가의 넓고 깊은 진심과 포용력이 부모회 회원과 탈시설 반대를 일삼는 천주교 신부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가 12월 10일,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가 12월 10일,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안녕하세요. 저는 박경인입니다.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로 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청에서 진행된 장애인주거복지정책 토론회 영상을 보고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혼모시설에서 태어났어요. 23살에까지 시설에 살았고, 엄마의 얼굴을 몰라요.  제가 자립을 한다고 했을 때 시설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자립을 하고 싶어서 나왔지만, 막상 나와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자립을 하고 나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서 정신병원에도 입원했었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때 마트에 놀러 갔다가 토끼 한 마리를 샀어요. 부드러운 털에 뾰족한 귀가 너무너무 귀여웠어요. 토끼가 작은 철창 안에 갇혀 있었거든요. 마음이 아팠어요. 시설 안에 있는 제 모습 같아서 구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오래 입원하게 되면서 토끼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어요. 지금도 토끼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런데 조금 궁금해요. 그 토끼를 작은 철창에 가두고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사람들도 지금 토끼에게 미안해하고 있을까요?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이라는 방송을 많이 봤어요. 동물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잖아요. 사자도 앵무새도 자연 속에서는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요. 그런데 사람은 동물을 잡아서 가두잖아요. 저는 예전에는 동물원에 자주 갔지만, 탈시설 운동을 하면서 더는 동물원에 가지 않아요. 마음이 아프거든요. 저는 동물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갇혀 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어요.

박경인 활동가가 명동성당 앞에서 ‘중증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인 활동가가 명동성당 앞에서 ‘중증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10월 26일에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서울시 장애인주거복지정책 토론회’가 열렸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거기서 발제를 맡은 한 신부님이 저와 같은 발달장애인을 각종 동물로 구분해서 설명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자리에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김현아 회장님과 다른 부모님들도 계셨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걱정됐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부모님들 마음은 괜찮으신가요? (관련 기사: 지적장애 1급은 까마귀 지능? 천주교 신부 발언 ‘논란’)

저는 정말로 묻고 싶어요. 지능이 낮은 장애인은 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마음은 어떠세요? ‘그럴 수밖에 없어.’ ‘현실이 그래.’ 그런 말이 정말로 부모님들에게 위로가 되나요? 시설에 간 아이가 정말 행복해 보이시나요? 시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로 잘 아시나요?

당신 아이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지만, 나라면 하루를 살아도 엄마 곁에 있고 싶어요. 물론 저는 이제 어른이고, 엄마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곁에는 친구들도 있고 동료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엄마가 많이 원망스러워요. 그런데 바뀌어야 할 건 엄마가 아니라 세상 같아요. 엄마를 외롭게 만든 세상, 그래서 엄마가 나를 버리게 한 세상에 사과 받고 싶어요. 만약에 혼자서 나를 낳은 엄마를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가난해도 나랑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랬다면 내가 엄마 곁에 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세상에는 힘들어서 자식의 목숨을 빼앗는 부모들도 있어요. 부모회 여러분은 자기 자식을 지키셨잖아요. 남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했겠지만, 당신에게는 소중한 아이였을 거예요. 소중한 아이를 키우기 버거워졌을 때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 같아요. 그때 부모님들 곁에는 부모님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닌가요?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이 “발달장애인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월급을 받아야 한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인 활동가가 “발달장애인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월급을 받아야 한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우리는 무조건 시설부터 다 없애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장애가 있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의 집이 꼭 시설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부모님들이 우리를 시설에 보내는 대신 사과를 요청하면 좋겠어요. 부모님들에게만 버거운 짐을 지운, 시설이 아니면 선택할 곳이 없게 만든 이 세상에 저랑 같이 사과를 받아내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엄마, 아빠, 아이가 함께 있는 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집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내 아이는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고 안 갖게 될 수도 있어요. 장애가 있어도 장애가 없어도,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그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플퍼스트에는 발달장애인을 편견 없이 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마치 현주가 나한테 대하는 것처럼, 마치 혜미가 나한테 대하는 것처럼, 차별 없이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걸 김현아 회장님과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부모님들도 알게 되면 좋겠어요. 저희도 제 또래의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살고 싶어요. 그걸 위해 함께 싸워요.

2023년 12월

박경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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