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배리어프리-하기⑤
관객이 바라본 2023 SPAF 접근성 기획

[편집자 주]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다섯 편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였으며, 이 모든 과정을 아카이빙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장애인 관객에게는 정보와 안정감을, 비장애인 관객에게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그리고 창작진 및 제작진에게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공연장을 배리어프리-하기’라는 타이틀 아래 연속 기고를 기획하였다. 총 6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기획 연재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 누구나 올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까지

② ‘듣는 포스터’, ‘만지는 무대’… 배리어 위에 다시 쓴 것

③ 접근성 기획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질문들

④ 모두를 위해 다양한 입장을 조율하는 일

⑤ 접근성 이어 말하기: 관객의 경험

⑥ [대담] 끈질기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공연의 완성은 관객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대란 객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의 무대들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2023 SPAF에서는 전체 프로그램에 접근성 기획과 운영을 적용했고 5편의 배리어프리 공연이 진행되었다. 티켓 예매를 하는 시점부터 극장을 찾는 순간까지 관객은 여러 층위에서 접근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한 배리어를 느끼기도 했다.

아래 네 개의 에피소드는 가상의 인물이 작성한 SPAF 참여 후기다. 각 에피소드의 화자는 서로 다른 가상의 인물이다. 내용은 6명의 관객 인터뷰, 4인으로 구성된 접근성 모니터링단의 비평문, 창작진 및 제작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가상의 후기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발화의 책임을 나누어 짊어지고, 장애 유무와 장애 유형을 가로질러 여러 관객의 경험을 조합해 공동의 목소리로 말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러분도 이 목소리의 일원이 되어 공연예술 축제에서의 접근성을 함께 톺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 모르는데 어떻게 웃어요 (김은주┃31세┃서울시 성북구 거주) 

웃음 속에서 혼자 웃지 못하는 관객: 흑백 일러스트. 왼쪽과 아래에 배치된 네모 캐릭터들은 웃음을 짓고 있다. 반면 오른쪽 위에 있는 둥글둥글한 주인공 캐릭터는 웃고 있는 네모들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늘의풍경

연극을 관람할 때 가장 난감한 순간을 꼽자면 주변에 앉은 관객들이 웃을 때다. 말장난을 하는 대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나는 같이 웃지 못한다.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고 나왔다는 것을, 웃음을 유발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방도가 없다. 무대의 시각적인 연출 요소를 별도로 묘사하는 ‘음성해설’을 갖춘 공연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품이 부딪치는 소리, 배우가 딱딱한 벽에 글씨 쓰는 소리를 들을 때 나의 머릿속은 물음표투성이가 된다. 상대 배우가 어떤 움직임을 하고 있는지를 방백(무대 위의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대사)의 형식으로 묘사하는 대사가 중간중간 있다고 해도, 무대 위에 한 명의 배우가 대사 없이 있을 때는 무대가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배리어프리 연극이라고 홍보를 하는 공연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준비되지 않거나 충분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대본을 중심으로 한 음성해설 외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무대에 관한 해설이다. 이번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관람한 연극의 경우, 공연 날짜 전까지 세 차례의 사전 안내문자가 발송되었다. 그중에는 무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음성안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비장애인에게는 무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대사 또는 음성해설로 극을 이해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무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사전에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좋다. 가로/세로/깊이가 몇 미터인지, 벽이 무슨 색깔인지, 어느 방향에 어떤 것이 배치되어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에 본 연극은 내가 평소 좋아하던 극단의 공연이라서 관람했다. 홈페이지에 공연마다 안내보행이 있다고 공지되어 있었던 것, 객석에 장애인 안내견이 동행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던 것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내가 극장 문을 열었을 때 적어도 스태프들이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전 신청을 통해서 지하철역부터 극장까지 안내보행을 해준 접근성 매니저는, 내가 왼편에 서서 걷는 것을 편안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연극이 끝난 후 지하철역으로 돌아갈 때도 같은 방향에 서서 안내를 해주었다. 무대와 객석 밖에까지 접근성 지원이 연장된다는 점이 좋았다.

일정이 맞지 않아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동시통역기를 이용해 (폐쇄형) 음성해설을 하는 연극이 있었다던데, 나도 다음에는 실시간 음성해설을 상세하게 하는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 옆자리 사람들이 웃을 때 ‘뭔데 뭔데, 왜 웃는데’ 하며 멀뚱히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소심한 성격이라 신청하지 못한 터치투어도 다음에는 시도해보려 한다. 사전 음성안내로 무대 설명을 듣는 것을 넘어 그 무대를 직접 만져보기까지 한다면 공연을 이해하는 차원이 달라질 것 같다.

2. 모든 관객을 환영하려는 연극 (이한솔┃34세┃경기도 고양시)

로비에서 필담(글로 써서 대화하는 것)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전에 문자를 받아 알고 있었지만, 티켓 수령을 하는 곳에 수어통역사가 있는 것을 보고 사실 좀 놀랐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매번 수어통역사가 상주한 것은 아니고 극단의 판단에 따라 비상시적으로 배치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극단 이름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각 단계와 공간 하나하나에 모든 관객을 환영하려는 준비를 하는 창작자들이다.

반면에 극단 관계자가 아닌 듯한 스태프는 마스크를 한 채로 입장 안내를 했다. 입술 모양의 움직임으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파악하는 청각장애인은 스태프의 마스크가 달싹이는 것을 보고 ‘즐거운 관람 되세요’라고 했겠지 유추할 뿐이다. 국공립 극장인 것 같던데, 공공기관의 안내 스태프가 착용하는 마스크는 립뷰마스크(입 모양이 보이도록 가운데를 투명하게 만든 마스크)로 통일할 수는 없는 걸까?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마스크를 끼고는 서로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던데.

수어통역이 있는 접근성 안내 동영상을 휴대기기로 보고 있는 장면: 흑백 일러스트. 휴대기기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이의 손과 화면이 그려져 있다. 화면 안 왼편의 각진 캐릭터는 검은 중절모를 썼고 작은 말풍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어 사용자이다. 화면 오른편 동그란 캐릭터는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오늘의풍경
수어통역이 있는 접근성 안내 동영상을 휴대기기로 보고 있는 장면: 흑백 일러스트. 휴대기기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이의 손과 화면이 그려져 있다. 화면 안 왼편의 각진 캐릭터는 검은 중절모를 썼고 작은 말풍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어 사용자이다. 화면 오른편 동그란 캐릭터는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오늘의풍경

한국농인LGBT+(약칭 한농퀴)에서 활동을 하는 친구가 어느 날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제작한 접근성 안내 영상이었는데, 수어통역이 있었다. 얼굴이 익숙한 수어통역사가 예술감독과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동시통역을 했다. 수어통역사를 화면 아래 조그마한 원형 안에 배치하여 수어통역은 부수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소위 말하는 ‘알에 갇힌 모습’이 아니었다.

배리어프리 공연 중 모든 회차에 수어통역이 있는 작품이 있다기에 일정이 맞는 것으로 관람을 했다. 수어통역이 있다는 정보뿐만 아니라 수어통역사가 누구인지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공연 준비 기간에 다른 수어통역사로 바뀌기는 했지만. 농인(수어를 제1언어로 쓰는 사람)들 중에서는 누가 수어통역을 하는지에 따라 행사에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통역사의 역량에 따라 농인이 공연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번역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즘 많은 연극에서 무대 중앙이나 측면에 모니터를 배치해서 대사와 배경음악을 글자로 중계하는 문자통역을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잠시 대사를 놓친 청인(음성언어를 쓰는 사람) 관객에게도 도움이 되는 장치이다. 그런데 배우가 정해진 대사를 빼먹거나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에는 실제 대사가 미리 준비해 둔 화면과 다르기 때문에, 문자통역의 자막에 의존하고 있는 관객은 소리를 듣는 관객과 미세하게 다른 관람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 수어통역이 있다면 이 차이가 확연히 줄어든다. 동시통역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연극의 경우 수어통역이 전체 연출의 주요한 일부였다.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에 수어통역 화면을 송출함으로써 실제 무대에 있는 배우보다 수어통역사가 크게 보였다. 무대 전체를 바라보면서 시선이 분산되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수어통역도 볼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이었다. 화면 상단에서는 문자통역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수어통역사가 무대 한편에 붙박이처럼 서서 통역을 할 경우 배우의 동선에 따라 수어통역이 가려지는 불상사가 있기도 한데, 이 공연의 경우 그럴 염려가 없었다. 수어통역 화면이 극 자체 그리고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듯했다.

배경음악에 대한 해설 자막의 경우에도 ‘단조롭고 슬픈’, ‘빠르고 흥겨운’과 같은 최소한의 설명이 아니라, 전자음악 특유의 분위기에 관해 좀 더 디테일한 설명이 있었다. 시점에 따라 음악의 크기가 어떻게 조절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자막의 크기가 충분히 크지 않았다. 애매한 글자 크기는 문자통역에 의존해서 극을 이해하고 있는 관객의 피로도를 높이거나 몰입을 방해한다. 무대와 문자통역을 번갈아가며 보는 것이 아니라 자막만 읽다가 공연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공연 중에 제공받는 정보의 양이 비장애인에 비해 적을까 봐 공연 내내 걱정하는 관람 경험이 아니라, ‘접근성 연극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라는 긍정적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접근성 공연이라는 것이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연출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 공연장에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3. 현관문을 열고 나가 객석에 자리를 잡기까지 (박승민┃29세┃서울시 종로구 거주)

공연 예매 플랫폼 사이트에 접속할 때면 스크롤을 내렸다 올리는 손가락이 바빠진다. 얼마나 극찬받는 연극인지를 어필하는 화려한 이미지 사이사이에서 나는 휠체어석 관련 안내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뜬다. 한참을 헤매다 페이지 하단에서 “티켓 예매 시 유의사항. 본 공연은 휠체어석이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게 되면 상황이 종료된다. 위에 잘 보이게라도 좀 써놓지!

나에게 공연 관람이란 일정이 맞는지, 내가 관심이 있는 주제인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전동휠체어가 공연장 객석까지 진입할 수 있어야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뭐, 매번 예매 단계에서 ‘입장 컷’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인식이 활성화되면서 극장 접근성 안내를 하는 곳이 늘어났다. 그 안내가 얼마만큼 자세한지는 극단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모든 공연에 대한 접근성 안내를 온라인 페이지의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두었다.

연극을 가장 많이 본 가을이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주요 극장별 접근성 안내를 홈페이지 공지 사항, 유튜브 영상과 같이 여러 채널로 안내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뛰고 연극의 내용만을 훑어보며 보고 싶은 연극을 골라보기도 했다.

극장 앞 높은 턱 앞에서 의기소침해 하고 있는 캐릭터: 흑백 일러스트. 둥글둥글한 주인공 캐릭터가 땀을 흘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위로 주인공 캐릭터가 상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휠체어를 탄 주인공 캐릭터가 극장 앞 높은 턱에 막혀 들어가지 못하는 뒷모습, 그리고 누군가에게 업혀 이동하며 다소 의기소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의풍경
극장 앞 높은 턱 앞에서 의기소침해 하고 있는 캐릭터: 흑백 일러스트. 둥글둥글한 주인공 캐릭터가 땀을 흘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위로 주인공 캐릭터가 상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휠체어를 탄 주인공 캐릭터가 극장 앞 높은 턱에 막혀 들어가지 못하는 뒷모습, 그리고 누군가에게 업혀 이동하며 다소 의기소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의풍경

‘휠체어석 있음’이라고 달랑 한 줄 적혀 있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휠체어석이 있다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극장으로 향할 때면, 집 현관문에서 객석에 가기까지 있을 수 있는 여러 변수를 혼자 상상하고 맞닥뜨리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극장 입구에서 객석까지 경사로가 있는지, 혹여 경사로가 가파르다면 뒤에서 휠체어를 잡아줄 이동지원 스태프가 상주하고 있는지, 어느 방향 출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극장으로 직행할 수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은 몇 층에 있는지, 건물 내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면 가장 가깝게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등의 안내가 필요하다. 공연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주차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후 차량을 둘 곳을 찾아 빙빙 돌아다니다 연극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러한 일련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될까? 어느 공연장이나 주차 안내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되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지만.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위에 나열한 여러 정보가 모두 제공되었다. 예매한 공연 날이 다가오자 이동지원이 필요한지 묻는 사전 설문 문자가 오기도 했다.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경우 휠체어석으로 이어지는 경사로가 가파른데, 극장에 이동지원을 하는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한다는 안내를 먼저 받아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경사로 또는 엘리베이터 없이 좁은 계단을 통해서만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던 여행자극장의 경우, 접근성 매니저에게 업힌 채로 지하로 내려가서 따로 마련된 수동휠체어를 타고 객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초면의 스태프와 신체 접촉이 있어야만 객석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렇게라도 연극을 보고 싶다면’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타인에게 안기거나 업히기가 어려운 신체적 조건을 지닌 장애인의 경우 극장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문자로 사전 안내를 받은 바와 같이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서 경사로를 통해 객석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연예술계의 배리어프리도 건축 분야와 다름없이 휠체어 접근성을 개선하는 움직임이 첫 단추가 되는 듯하다. 휠체어석이 있다는 단순한 안내와는 별개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극장까지 가는 길과 방법, 장애인 화장실 위치와 같은 정보들이다. 나의 공연 입장을 제한하거나 지연하는 문턱과 장벽은 객석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길 구석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정보들을 나갈 채비를 하면서 잠깐의 시간만 내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4. 긴장 풀고 연극 보러 가자 (최진아┃24세┃인천시 부평구 거주)

언니와 같이 연극을 보고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서울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다. 광화문 근처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려 차가 많이 막혔다. 공연 시작 시간 직전에야 극장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의자에 앉기 전 물에 젖은 손으로 바지의 허벅지 뒷면을 여러 번 문지르는 습관이 있는 언니를 위해서는 입장 전에 화장실에 꼭 들러야 하는데, 공지 사항에 지연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던 것을 봤던지라 버스에 있는 내내 조급한 마음이었다. 다행히 음향 점검으로 공연 시작이 3분 정도 늦어진 덕에 언니는 앉을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그동안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외국인 관객이 여럿 있었다. 포스터에 국제공연예술제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연극이 시작되고 나서야 ‘아하!’ 했다. 무대 중앙에 있는 화면을 통해서 영어로 번역된 대사를 볼 수 있었다. 배리어프리 공연이라고 해서 언니와 같이 올 생각을 한 건데,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는 한국어 대사도 장벽(배리어)이 될 수 있구나. 평소에 하지 못하던 생각이었다.

공연 시작 전, 안전을 위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퇴장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데 박수 소리와 경광봉 불빛이 동원되었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도 비상시 대피로가 각인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나 보다. 한국어 안내 멘트가 끝난 후에는 영어 버전의 멘트도 흘러나왔다.

공연 중 예상치 못한 트리거로 놀라고 있는 캐릭터: 흑백 일러스트. 극장의 객석에 두 캐릭터가 앉아 있다. 위로는 큰 소리 또는 번쩍이는 조명으로 유추되는 효과가 표시되어 있고, 네모난 캐릭터가 눈썹을 찡그리며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둥글둥글한 모습의 캐릭터도 당황한 표정이지만 놀란 네모 캐릭터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늘의풍경
공연 중 예상치 못한 트리거로 놀라고 있는 캐릭터: 흑백 일러스트. 극장의 객석에 두 캐릭터가 앉아 있다. 위로는 큰 소리 또는 번쩍이는 조명으로 유추되는 효과가 표시되어 있고, 네모난 캐릭터가 눈썹을 찡그리며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둥글둥글한 모습의 캐릭터도 당황한 표정이지만 놀란 네모 캐릭터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늘의풍경

중간 중간에 언니가 공연을 즐겁게 관람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려 봤는데, 무대에 잔뜩 빠져든 표정을 하고 있어 기뻤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배우가 큰 소리로 욕을 하는 장면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예매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문자로 ‘트리거 워닝’ 안내를 받긴 했다. 트라우마를 유발시킬 수 있는 소재나 내용이 있을 수 있고 욕설 및 성적인 대사를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언니가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가 불안함을 느낄 때면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젓는 상동행동을 하기 때문에 잠깐 공연장을 나갈까 고민했지만, 재입장이 안 되는 공연이라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언니의 손을 잡고 안정이 되도록 돕느라, 끝날 때까지 나도 연극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비슷한 줄거리의 공연을 언니와 같이 보기로 선택한 것이었는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좀 후회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커튼콜까지 언니가 잘 견뎌주었고, 객석에 불이 켜지자마자 언니 손을 잡고 공연장을 나왔다. 재입장이 가능한 공연이었다면 어땠을까? 객석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들어오는 등의 큰 움직임이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공연 도중 잠깐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양해해 주는 관람 문화가 있다면, 큰 걱정 없이 언니와 극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장을 나오자마자 언니에게 “고생 많았어”라고 했는데, 언니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힘들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며, “다음에 또 보러오자”고 말하는 언니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나도 모르게 언니가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을 제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편안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관람할 수 있는 ‘릴랙스드 퍼포먼스’ 같은 것도 있다지만, 언니와 같이 ‘보편적인’ 연극을 가볍게 즐기고도 싶다. 다음에 어떤 공연을 같이 보러갈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나눠보지는 않았다. 언니가 보기 힘들어하는 무대가 어떤 것인지, 또 보고 싶어 하는 공연은 무엇인지 자주 물어봐야겠다.

* 필자 소개

김소라. 2023 SPAF 접근성 기획 아카이브 에디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 이 기사는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2023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