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배리어프리-하기 ⑥] 2023 SPAF 접근성 기획 회고

[편집자 주]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자 다섯 편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였으며, 이 모든 과정을 아카이빙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장애인 관객에게는 정보와 안정감을, 비장애인 관객에게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그리고 창작진 및 제작진에게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공연장을 배리어프리-하기’라는 타이틀 아래 연속 기고를 기획하였다. 총 6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기획 연재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 누구나 올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까지

② ‘듣는 포스터’, ‘만지는 무대’… 배리어 위에 다시 쓴 것

③ 접근성 기획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질문들

④ 모두를 위해 다양한 입장을 조율하는 일

⑤ 접근성 이어 말하기: 관객의 경험

⑥ [대담] 끈질기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 대담 일시 및 장소

- 일시: 2023년 11월 14일 저녁 7시

- 장소: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 진행

- 백희원: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 접근성 기획 아카이브 에디터. 오늘의풍경이라는 스튜디오에서 글 쓰는 작업과 기획 작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 패널

- 김혜진: 조금다른 주식회사(아래 조금다른)에서 활동 중이다. SPAF에서 홈페이지와 티켓페이지의 온라인 접근성 개선 작업을 진행했고, 티켓을 관리하면서 관객들을 직접 응대하는 역할을 했다.

- 소재용: 조금다른에서 활동한다. SPAF에서 주로 현장 매니저로 참여했다.

- 이충현: 동료들과 같이 조금다른을 만들어 일하고 있다. 문화기획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데, 지금은 문화기획 중에서도 접근성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SPAF에서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했다.

- 조윤지: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본부 공연해외진출팀 주임으로 일한다. SPAF와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 최석규: SPAF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춘천마임축제와 연극문화원 등에서 장애 접근성 작업을 지속해 왔다.


2023년 SAPF 메인 홈페이지. 접근성을 뜻하는 단어 Accessibility가 화면 오른쪽에 있다. 상단에도 접근성을 안내하는 별도 카테고리(Accessibility)가 노출되어 있다. 
2023년 SAPF 메인 홈페이지. 접근성을 뜻하는 단어 Accessibility가 화면 오른쪽에 있다. 상단에도 접근성을 안내하는 별도 카테고리(Accessibility)가 노출되어 있다. 

- 긴 호흡으로 접근성 기획을 바라보기

백희원: 24일이나 진행된 축제였다. 조금다른이 접근성 기획을 한 것은 2022년부터였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큰 규모의 작업을 맡게 되어 설레기도 했을 것 같다. SPAF에 결합하던 초기에 조금다른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이충현: 가장 크게 기대했던 건 접근성 기획을 지속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큰 축제라는 점과 규모 있는 예산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 지속성이 중요했다. 접근성 작업이 늘 일회성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면 준비 기간 동안 고민했던 내용은 각자의 몫으로 남고, 이후에는 개인의 프로젝트로 가져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석규 예술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접근성을 축제의 주요한 관점 중 하나로 두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중장기적으로 프로젝트를 고민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게 조금다른이 결합하게 된 주요 동력이기도 하다. 당장은 두 달 동안 SPAF의 접근성 기획을 해내는 작업이었지만, 긴 호흡으로 접근성 기획을 가져갔을 때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큰 그림 안에서 2023년의 시도들을 그려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김혜진: 이런 맥락에서 아카이빙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우리 팀이 하지 않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남기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접근성 개선 전반에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백희원: 조금다른 외에 접근성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팀이 있나?

최석규: 조직화되어 작업하는 곳은 많이 보지 못했다. 접근성 매니저라고 불리는 개인 작업자나, 예술가 개인이 자신의 창작 배경에 접근성을 원칙으로 두는 경우는 있다.

이충현: 음성해설, 문자통역, 수어통역을 각각 집중적으로 하는 회사는 있는데, 접근성 전체를 매니징하는 업체는 저도 아직 알지 못한다. 개인 작업자는 있지만 회사는 없는 것 같다.

백희원: 조금다른이 SPAF에서 긴 호흡의 접근성 기획을 기대했는데, 흩어져 있는 개인들의 실험과 시도를 거쳐서 SPAF를 중심으로 성과가 축적되어 가는 5년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SPAF가 발전시켜 나가려는 접근성 기획의 방향은 어떤 모습인가?

최석규: 예술 생태계 전체에서 SPAF가 어떤 관점을 갖는 축제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다양성과 접근성을 주요하게 꼽았다. 접근성은 사실 관점이라기보다는 기본권으로 보장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의 숙제는 SPAF라는 축제가 기획할 수 있는 접근성 기획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나 예술가 단체 모두 접근성을 기획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 SPAF가 할 수 있는 것은 관객 개발이다. 긴 호흡으로 협업할 동료들을 찾는 것, 관객 개발을 목표로 접근성 기획을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접근성의 기본치를 올리기

백희원: 올해 SPAF 접근성 기획의 성과와 한계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 이번 SPAF 접근성 기획에서 목표로 했던 것을 키워드로 말해본다면?

조윤지: 제 키워드는 ‘기본’. 축제가 보장하는 기본 접근성 수준을 올리고 싶었다. ‘SPAF는 이 정도는 꼭 한다’라는 기본 수준을 만들어서,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장애인 관객에게 안정감을 주기를 바랐다. 장애인 관객이 없을 때에도 접근성 테이블을 운영한 것이 그 이유에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다른 곳에서도 따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예술 유통의 활성화와 예술기관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만큼, 접근성을 고민하는 예술단체들에 영감을 주면 좋겠다. 아카이빙을 하는 목적이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

이충현: 조윤지 주임님과 비슷하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 되기, 그리고 플러스 일(+1)’. 이번 작업에서의 ‘플러스 일’은 아카이빙이다. 회의를 통해 처음 예술경영지원센터를 만났을 때, 2023년 작업을 잘 기록해서 2024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것을 덥석 물어 여기까지 왔다. 접근성 작업을 할 때 제 개인적 목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되, 저번보다 무엇이 나아졌는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재용: 이번 SPAF 접근성 기획을 할 때, 전반적으로 필요성에 관한 기준이 명확하고 그것이 잘 공유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설득하는 과정 또한 있었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선들이 잘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조금다른이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할 때 늘 설득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런데 SPAF에서만큼은 안테나가 서로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김혜진: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항상 저희를 지지해주신다는 느낌이 있어서 안정감 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대기업과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는데 담당자와의 관계에서 많이 힘들었다. 반면 여기에는 주임님이 계셔서 거의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일을 했다(웃음).

SAPF 홈페이지 내 공연 접근성 안내. 각 공연 별로 어떠한 지원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더 많은 관객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백희원: 올해 장애인 관객 수가 총 92명으로 집계됐다고 들었다. 전체 관객규모가 9천 명 정도이니 장애인 관객은 1퍼센트.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최석규: 사실 사회적 기반이 같이 맞물려야 예술에서의 접근성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사회가 기본으로 갖추는 문화적 태도와 역량이 성숙해졌을 때 관객도 같이 커가는 것이다. 축제에서 할 수 있는 장애인 관객 개발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2022년에는 1차적으로 창작자들을 통한 관객 개발을 했다. 기존에 장애인 관객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사회적 기반이 형성돼 있지 않으니 관계 기반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케팅 개발이었다. 장애단체에 연락을 쭉 보내고 받은 회신을 보면 ‘이게 뭐냐’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보니 그렇다. 공연 프로그램이 장애인 당사자들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나머지 관객 개발은 거의 다 장애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회적인 조건이나 문화적인 것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윤지: 한 가지 희망이 있다고 본 건, 올해는 유료 관객이 많았다는 것이다. 객관적 분석이 가능한 정도로 표본을 끌어올릴 필요는 있겠지만, 자발적 의지에 따라 티켓을 구매한 장애인 관객 비율이 늘었다는 것은 유의미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김혜진: 현장에서 인상 깊은 관객이 있었다. 시각장애인 관객이 음성해설이 없는 공연을 예매해서 관람한 케이스였다. 이동지원을 하면서 음성해설 없이 괜찮으셨는지를 물어보았는데, 평소에 이 극단을 좋아해서 온 것이고 내용을 이해하는 건 방백 같은 것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지속가능한 관객 개발은 ‘찐팬’을 만드는 것 아닐까. 여러 공연 경험을 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극이라는 게 비장애인한테도 그렇게 주류적인 문화예술 분야는 아니지 않나. 어쨌든 콘텐츠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입문하는 거고, 이는 장애인 관객도 다를 바 없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접근성을 잘 갖춰서 전달하는 공연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

최석규: 실제로 올해 관객 데이터를 보면 극단의 고정 관객 비율이 제일 높다. 결국 예술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SPAF는 이러한 작품을 관객에게 잘 소개하면 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장애인 관객에게도 잘 소개해 주는 과정이 접근성 운영이다.

- 우리는 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까

김혜진: 올해 SPAF 접근성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은 연결이 잘 됐는데, 또 어느 부분은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공연팀과 축제 전체 접근성 매니저 간의 소통이 부족했던 것이다. 예컨대 어떤 작품에 음성해설이나 수어통역이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는 당일에 공연을 실제로 보고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 아쉬웠다. 접근성 운영팀과 공연팀의 소통이 더 원활했다면 관객에게도 이 점을 좀 더 어필하고 적극적으로 초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석규: 어떤 작품은 공연 전에 정보를 조금도 노출하지 않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고,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백희원: 다른 연결 고리를 도모해볼 수도 있겠다. 〈싸움의 기술, 〈졸〉_2.0〉(아래 〈싸움의 기술〉)의 김풍년 연출처럼 창작자가 배리어컨셔스를 학습한 이후, 팬을 만들어 와서 축제로 연결하는 가설은 어떨까.

조윤지: 극단 작당모의의 김풍년 연출과 이충현 매니저의 커뮤니케이션은 좋은 예시라고 본다. 〈싸움의 기술〉의 경우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 “(접근성 기획 관련해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다”고 말씀 해주시는 팀도 있는 것을 보니, 창작자가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나 컨설팅을 싫어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시점에는 자연스러운 연결이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충현: 김혜진 매니저의 경우 〈연극연습3.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아래 〈물고기로 죽기〉)의 고주영 피디님과 커뮤니케이션이 많았다. 초반에 도움을 요청한 작품과는 달리 〈물고기로 죽기〉의 경우 필요에 의해 대화를 하다가 신뢰를 갖게 된 케이스인데, 그런 사례들도 저희에게는 좋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면 무섭게 느껴지지 않나. 한 번 만나서 대화하는 게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분들이더라도.

조윤지: ‘하기 싫은 분들이더라도’가 중요한 포인트 같다.

소재용: 저는 주로 배리어프리 공연이 아닌 회차의 현장 접근성 매니저를 맡았다. 오가는 관객들이 화장실이나 주차 관련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가장 많기는 했는데, 접근성 테이블의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낯설어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어? 이런 게 있네’라는 뉘앙스가 느껴져 긍정적으로 생각됐다. 한편 극장마다 시스템이 크게 달랐던 점이 어려웠다. 관객을 가장 많이 만나는 메인 공간인 티켓부스에 더 많은 안내와 정보를 둘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년에는 접근성 테이블이 티켓부스 쪽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한다. 혹은 안내판(POP)이 티켓부스 근방에 친절하게 비치되어 있으면 좋겠다.

2023 SPAF 공연장의 접근성 데스크: 사진 중앙에 접이식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에는 필담을 안내하는 문구가 크게 적힌 노트북이 한 대 있다. 그 오른쪽에는 SPAF 접근성 문의라고 적힌 알림 패널이 있고 뒤편에 앉아있는 스태프가 약간 보인다. ©2023 SPAF
2023 SPAF 공연장의 접근성 데스크: 사진 중앙에 접이식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에는 필담을 안내하는 문구가 크게 적힌 노트북이 한 대 있다. 그 오른쪽에는 SPAF 접근성 문의라고 적힌 알림 패널이 있고 뒤편에 앉아있는 스태프가 약간 보인다. ©2023 SPAF

- 예술 향유라는 기본권을 위해 끈질기게 설득하기

백희원: 할 수 있는 만큼 뜻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움직이기 어려운 이해관계자를 만나셨을 것 같다. ‘이곳’만큼은 2~3년 뒤에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설득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 희망사항을 이야기해보자.

김혜진: 극장의 하우스팀(극장 내 객석 전반을 담당하는 팀)? (일동 웃음) 접근성 공연을 진행했던 극장에 한해 사전안내 멘트에서 시청각 정보로 경광봉 활용과 박수 소리 삽입을 기획했는데, 특정 공연장에 그걸 설득시키기가 힘들었다. 충분히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물음표를 다셔서 어떻게 더 설득하지 싶었는데, 마침 그 공연에 농인 관객이 예매를 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담당자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농인 관객이 있다. 꼭 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극장에는 사실 따로 규칙이나 규제가 많다. 하나를 하려고 해도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복잡한 데, 설득하는 부분이 힘들었다.

조윤지: 일부 극장은 규율과 매뉴얼이 오래전에 만들어진 상태로 멈추어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유 없는 규율은 없었겠지만, 접근성 관련 질문을 던졌을 때 극장 측에서 이게 왜 안 되는지 설명이 가능한 경우가 많이 없어 아쉬웠다.

최석규: 창작자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법률에 저촉될 경우,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지 같이 찾아보는 게 아니라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 답답했다. 매뉴얼이라는 게 지켜야 하고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창작 예술의 상상력과 규칙이 부딪힐 때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 함께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극장에서는 완전한 암전을 할 수 없다. 비상등 불빛까지 가리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공연장에서는 비상등 사이즈로 피켓을 만들어서 암전 시점에 맞추어 불빛을 가렸다.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기적 체계가 한꺼번에 작동하지는 않는다. 극장, 운영팀, 기술팀 다 같이 합심해야 한다.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백희원: 과도기여서 겪게 되는 문제로 보이면서도 계속 부딪히는 부분이다. 공연장을 공공적 공간이 아니라 서비스 공간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공연이 왜 이 정도로 공공성을 추구하지?’, ‘공연장이 왜 기본권을 갖추어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예술을 개별적인 취향 혹은 취미로 생각하면 낯설게 느낄 지점이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공감대가 있겠지만, SPAF라는 축제가 적극적으로 접근성의 기본치를 높여보려고 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설명해 주신다면?

이충현: 사람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각자의 조건이 필요한데, 보통 사적이고 취향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 축구나 풋살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이라든가 게임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에게는 개별화된 사적인 취향이 있고 그런 것들이 일상을 유지할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제게 사적 취향을 발견할 기회가 없었으면 분명 덜 행복했을 것 같다. 저에게는 공연을 볼 선택지는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SPAF가 접근성 운영을 왜 해야 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SPAF가 아니어도 다 해야 하는 것 아닐까. SPAF는 어떤 면에서 공연예술계에서 대표적이고 큰 축제이니만큼 그걸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

김혜진: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술이 사적인 것으로 되려면 사전에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예술 향유라는 권리가 그동안 어떤 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권리였다. 선택지조차 없었던 만큼 이제는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 사적인 것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적이고 접근 가능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최석규: 접근성은 계속 만들어가야 할 당위의 몫이고, 저는 여기에서 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세상에 질문을 하는 예술처럼 축제도 세상에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접근성 기획의 우선순위

백희원: SPAF 접근성 기획 과정에서 당장 내년부터 바꿔보고 싶은 부분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2024년에 ‘이것 하나는 개선시켜 보자’는 말씀을 해주시면 된다.

조윤지: 공연 제작 단계에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한다. 이걸 조건으로 둘 수는 없겠지만, 애초에 접근성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많이 다르다. SNS 카드 뉴스 하나를 만들더라도 장애인 관객이 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제작하는 등 접근성을 고려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거다.

이충현: 대화를 진짜 많이 해보고 싶다. 올해 변화했던 것을 꼽아보면 결국 다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공연팀과 더 빨리 만나서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미학적 접근성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접근성 측면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계속 생겼으면 좋겠고, 그게 SPAF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 축제 차원에서의 접근성 원칙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다. 공연팀에게는 제작 전 단계에 확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소재용: 대체로 급박하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만남의 자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교육도 그렇고 협의도 그렇다. 이렇게 되면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방어적으로 대하게 된다. 필요할 때 만날 수 있는 자리들이 조금 더 자주 있으면 좋겠다.

이충현: 더불어 2024년에는 이 자리에 당사자가 계셨으면 좋겠다. 음성포스터를 제작할 때 시각장애인 당사자를 모신 것은 작업의 주체가 되는 곳에 당사자가 같이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였다. 축제 소개 수어영상에도 미러링 통역을 활용해서 농인이 진행하려 했는데 코로나19에 걸리셔서 당일에 할 수 없게 되어 아쉬웠다. 장애예술단체가 공연을 하면 장애인 관객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백희원: 당사자가 생산 과정과 기획 과정에 참여하는 게 관객 개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역할이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지를 감독님께 묻고 싶다.

최석규: 예술에서 당사자성은 중요하다. 예술의 새로운 서사, 전환하는 시대의 예술의 사회적 역할,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 바라보기 등 당사자를 통한 창작 프로그램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의 경우, 쉽게 작품을 고르기 어려운 것이 저의 숙제이다. 동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채로 장애예술인의 어떤 예술을 소개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미러링 통역을 고려해주셨던 것처럼, 속도를 문제 삼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가 같이 참여하는 영역을 늘려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 모니터링단의 비평 작업을 진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백희원: 접근성 연극을 하려면 장애인 당사자 관객이 피드백을 주는 게 기능적으로 너무 필요하다는 것을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의 리허설에 참여하고 느꼈다. 농인 관객이 문자통역의 글자 크기부터 효과음을 통한 연출의 대안까지 다양한 부분을 짚어주셨다. 당시 연출팀에서 개별 섭외를 한 것 같은데, 접근성 매니저가 여러 명을 섭외하는 방식도 가능하겠다.

SPAF 접근성 기획 주체들: 여러 주체들의 관계를 표기한 관계도다. 각 주체들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검은색 동그라미는 접근성 기획 협력 주체이고, 흰색 동그라미는 접근성 기획 실행 주체이다. 이 관계도를 통해 축제 접근성 운영을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조율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풍경
SPAF 접근성 기획 주체들: 여러 주체들의 관계를 표기한 관계도다. 각 주체들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검은색 동그라미는 접근성 기획 협력 주체이고, 흰색 동그라미는 접근성 기획 실행 주체이다. 이 관계도를 통해 축제 접근성 운영을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조율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풍경

- 한 배를 탄 사람들

백희원: 이제 마무리를 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이 있다면?

최석규: 2022년보다 조금 더 즐거웠고 마음이 편해졌다. 2022년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우리가 모신 매니저에게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작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있었다. 2023년에는 담당자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심적으로 안정되었다. 어느 의류 브랜드의 슬로건이 ‘태도를 입는다’인 것처럼, 2023년은 태도를 입어가는 해였던 것 같다. 인식 전환이 제일 어렵다.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김혜진: 개인적으로 SPAF 일을 하면서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 나눠보니까, 생각하고 계셨던 성과나 한계도 비슷한 것 같다. ‘정말로 한 배에 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배에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희원: 지켜보고, 쓰고, 듣는 입장에서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기간에 쌓인 상호 간의 신뢰가 느껴진다. 오늘 회고 자리에서 곧바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하셨다. 시간이 걸린다는 걸 전제하고 꾸준히 계속하기만 한다면 많은 질적 변화가 가능해질 것 같다. 선순환의 배에 올라타셨다. 오늘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기록 및 정리

김소라. 2023 SPAF 접근성 기획 아카이브 에디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 이 기사는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2023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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