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남긴 질문들③

[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 사회에 많은 질문을 남겼다. 왜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가? 왜 혐오와 차별은 일상이 되었나? 감염병은 취약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관통했는가? 코로나19로 3만 6천 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잃었는데 왜 우리 사회는 무감각한 것일까? 부족한 병상과 의료 체계의 공백을 메웠던 공공병원은 왜 외면당하는가? ‘아프면 쉬자’는 이야기는 어떻게 사라져 버렸나?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는 지난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 질문들에 대한 해법을 인권을 중심으로 모색하는 7회차의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지하철 역사 입구에 쿠팡 노동자 사망사고를 애도하는 피켓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 쿠팡대책위원회
지하철 역사 입구에 쿠팡 노동자 사망사고를 애도하는 피켓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 쿠팡대책위원회

2020년 5월 13일, 한 물류 노동자가 아팠다. 몸 아프다고 노동을 멈추어 본 적 없는 노동자는 계속 일했다. 도저히 일할 수 없게 된 5월 20일, 이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쉬었다. 5월 2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업주는 쉬쉬했고, 노동자들은 꼬박 36시간을 더 일했다. 그리고 직장은 폐쇄되었다. 그 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는 계속되고 있었다. 26일에 32명의 노동자가 감염되었다. 27일에도 추가로 31명의 노동자가 감염되었다. 동료 노동자들의 감염 소식은 6월 7일까지 이어졌다. 총 84명의 노동자가 감염되었고, 이들의 가족과 지인 68명도 감염되었다. 누군가는 죽었고, 또 누군가는 아직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는 대한민국에는 없는 권리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 책임을 묻기 쉽지 않았다.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에게 사실을 숨기고 방역 책임을 방기한 사업주와의 법적 다툼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뭉개고, 검찰이 또 한 번 뭉개고 있다.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 서사는 지독하게도 같은 식으로 반복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쿠팡 집단 감염의 기억이다.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사람들이 쿠팡의 과도한 노동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쿠팡대책위원회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사람들이 쿠팡의 과도한 노동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쿠팡대책위원회 

- 쿠팡 집단 감염과 아프면 쉴 권리, 그리고 상병수당

2020년 5월 13일 그때, 이 노동자에게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되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주일 동안 바이러스가 동료 노동자들에게 퍼졌고, 이들로부터 출발한 연쇄 감염이 다시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노동자가 쉬었다면, 이 감염의 고리가 끊어졌을 것이다. 150명이 넘는 숫자는 한 자릿수로 줄거나 0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죽지 않고, 중증으로 아직까지 병원에 머무르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초기부터 재택근무를 해서 사람 만날 일이 없던 이부터, 대면 노동을 계속해야만 살 수 있었던 이들까지. 누군가는 잔기침이나 미열에 노동을 쉬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평소처럼 참고 일했을 것이다. 백신을 맞으면 2~3일 정도 아프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나서, 누군가는 예방접종 예약일에 휴가를 냈지만, 또 다른 이들은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건소에서 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통보받았을 때, 누군가는 별다른 근심 없이 집에 머물렀지만, 또 누군가는 상사의 눈치와 동료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는 동안 ‘아프면 쉴 권리’라는 말은 익숙해졌다.

질병관리청장은 매주 방송에서 아프면 일을 쉬고 며칠 동안 몸을 돌볼 것을 권했다. 쿠팡 집단 감염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즈음, 보건복지부는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제도의 출발을 알렸다. 2021년 4월 15일 제1차 상병수당 제도기획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2022년 시범사업 시작을 공식화했다. 상병수당은 어쩌면 그렇게 선물처럼 찾아왔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너무 강렬해서 잠시 오해했다. 되새겨 보니, 내가 배운 세계와 역사에서 선물 같이 주어진 권리는 없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힘을 결집하여 지배 권력을 향해 싸워야만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상병수당은 아프면 쉴 권리와 동의어가 아니다. 권리 보장을 위한 도구 중 하나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조건과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러 원인 중 경제적 고통을 다소 완화하는 제도가 상병수당이다. 상병수당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에 걸려 하루 이틀 쉴 때는 유급 병가가 필요하다. 일하지 못하는 초기 며칠은 유급 병가가 보장되어야 하고, 더 오랜 기간 일하기 어려울 때 상병수당이 역할을 한다. 한국은 노동법으로 유급 병가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다. 정규직의 경우 사내복지의 하나로 유급 병가를 보장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회적 임금의 성격이 짙고,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획득한 성과물이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회보장은 아니다. 유급 병가의 법제화 없는 반쪽짜리 대책이지만, 어쨌든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소중한 선물 같았다.

사진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사람들이 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보장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 선물 같이 주어지는 권리는 없다

시범사업의 뚜껑을 열어보고 깨달았다. 선물 같은 권리 보장은 없었다는 경험적 사실을. 상병수당은 병에 걸리고 일정 기간 경과 후―이를 대기 기간이라 한다―부터 지원한다. 유급 병가가 이 기간을 메워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3일 혹은 7일 이상은 참고 견디다 일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야 상병수당에 다가갈 수 있다. 많이 아플 때만 주어지는 권리다. 그런데 상병수당을 믿고 쉬기에는 삶이 너무 고단하다. 하루 쉬면 벌지 못하는 임금의 일정 수준을 보상해 주지 않는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기준 60%까지만 수당을 보장한다. 웬만하면 참고 일하라는 상사의 가르침이 옳았던 것일까. 너무 큰 손해를 각오해야만 아픈 몸을 쉬어 볼 수 있다. 2차년도 시범사업에서는 갑자기 소득 하위 50%에 속하는 노동자에게만 보장하는 것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전 세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선별적 상병수당 제도의 서막이었다. 올해 3차년도 사업이 시작되었지만, 2025년에 실제 제도화가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9년 상병급여 협약에서 종전 임금의 60% 보장을 최소 급여 수준으로 하도록 했다. 협약은 3일을 초과하는 대기 기간을 금지했다. 최대 보장 기간도 1년 이상으로 정했다. 한국의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대기 기간 3일(입원에 한함)을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서 제시한 조건을 준수하는 것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 사회에 준 가르침은 차고 넘친다. 아프면 쉴 권리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말을 많은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이에 화답할 때다. 쉬고 싶을 때 노동자가 쉴 수 있는 권리, 아파서 일하지 못할 때 쉴 수 있는 권리는 일부 급여의 보장만으로 쟁취할 수 없다. 이를 시민들이 권리로서 인식하는 과정,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 권력과 국가 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과정,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투쟁이 망가진 상병수당 제도를 바로 세울 것이고, 아프면 쉴 권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내어줄 것이다. 코로나19가 열어준 기회를 시민들의 힘으로 채워나가야 할 때다.

필자 소개

최홍조. 시민건강연구소와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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