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남긴 질문들①

[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 사회에 많은 질문을 남겼다. 왜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가? 왜 혐오와 차별은 일상이 되었나? 감염병은 취약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관통했는가? 코로나19로 3만 6천 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잃었는데 왜 우리 사회는 무감각한 것일까? 부족한 병상과 의료 체계의 공백을 메웠던 공공병원은 왜 외면당하는가? ‘아프면 쉬자’는 이야기는 어떻게 사라져 버렸나?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는 지난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 질문들에 대한 해법을 인권을 중심으로 모색하는 7회차의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한국이 병상 수로는 세계 1, 2위를 다투지만 공공병원 수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꼴찌라는 사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공공병원 확충, 공공의료 강화’라는 다소 딱딱하고 정책적인 슬로건이 어떻게 애도와 기억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얼마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 감염되었거나 감염되지 않았거나

기억해야 할 장면 하나.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아닌 단순 폐렴이었는데 PCR 검사만 십수 번, 결국 폐렴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은 고 정유엽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가족들은 호흡기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수많은 질문에 답을 구하며 2021년 봄 경산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했던 유가족은, 지난해 1월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질문이 도달한 곳은 의료의 공공성 확보 방기와 공공의료 전달 체계 관리 소홀로 의료 공백을 초래한 국가였다. 시급한 진료보다 바이러스의 차단만을 우선하는 비상식적인 의료 체계는, 코로나19를 감당할 수 없었던 무너진 공공의료 시스템이 낳은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2021년 3월 18일 개최된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사진 참여연대
2021년 3월 18일 개최된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사진 참여연대

기억해야 할 장면 둘.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있었다. 코로나19 진료를 기피한 95%의 민간병원들이 만든 공백은 5%의 공공병원들 몫이 되었다. 국가적 팬데믹 대응 체제가 유지된 기간 중 상당 시간 동안, 공공병원은 모든 자원을 코로나19에 동원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격리 병상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공공병원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홈리스, HIV 감염인, 장애인, 이주민에게는 비극이 되었다. 공공병원은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시기에도 민간 의료 체계가 외면하는 진료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역할이 중단되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병원 코로나19 총동원 체제의 피해는 이처럼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그리고 내몰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정부는 제대로 된 통계도 내지 않았다.

기억해야 할 장면 셋. 코로나19 감염으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소위 ‘K-방역’을 자화자찬하던 정부는 확진자 치료를 위한 공공의료 자원은 확충하지 않았다. 결국 2021년 겨울, 확진자가 수천 명 발생했을 뿐인데 한국의 의료 체계는 바로 붕괴에 직면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는 동안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공공의료 자원을 늘리지 않았고, 감염자 수가 가파르게 오르던 시기에 민간병원들이 여전히 협조하지 않자 병상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당장 어려움에 처한 것은 위중증 환자와 보호자들이었다. 병상을 비우기 위해 정부가 내린 ‘격리 해제’라는 이름의 퇴거 조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수용 가능한 병상을 찾도록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점차 줄어든 치료비 지원 때문에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허덕여야 했다. 사망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장례식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유족들이 장례를 미뤄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별개의 일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사태들은 모두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무계획적인 시장 논리에 내맡겨져 있는 한국의 의료 체계와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과제를 미뤄온 정권의 무능함이 팬데믹을 계기로 고스란히 드러나며 발생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감염되지 않았거나,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의료 체계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잔인한 우리 사회의 조건이었다.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따른 ‘노숙인 등’ 의료 공백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인권재단 사람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따른 ‘노숙인 등’ 의료 공백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인권재단 사람

- 남겨진 이야기, 이어갈 이야기 : 공공의료

지금은 어떨까.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조차 건강과 생명이 아니라 이윤을 지키는 선택을 했던 민간병원들은 그사이 몸집을 더 불렸다. 반면 코로나19 전담 병원에서 해제된 공공병원들은 뜻밖에도 위기에 처해 있다. 정상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코로나19에서 소진된 의료진들은 현장을 떠났고 환자들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코로나19 회복기 지원 예산마저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전례 없는 수준의 경영 위기에 고전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병원 확충 요구가 곳곳에서 일어나자 대통령은 겨우 1개소 추가 설립(울산의료원)을 약속했지만, 그마저도 경제성 논리로 좌초시켜 버렸다.

이러한 의료 체계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망 소식을 TV 뉴스에서 듣게 되는 건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코로나19 의료 공백의 희생자들과 남겨진 우리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새로운 팬데믹이 닥쳤을 때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불안하고 취약한 시장주의 의료 체계가 지배하는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정부, 공공의료 확충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정부는 바로 그 ‘일상’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쉽게 잊으라고 하는 듯하다. 따라서 2024년의 우리가 ‘공공병원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코로나19 의료 공백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려는 한 가지 방식이자, 애도의 한 방식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과 실천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코로나19 위중증피해 환자 보호자들이 충분한 병상 확보와 치료비 지원 국가 책임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코로나19위중증피해환자보호자모임

필자 소개

이서영. 이윤보다 생명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병원이라는 공간을 사회적 연대의 산물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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