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 보장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유죄 아닌가”
“스티커행동, 시민들에게 장애인의 목소리 알리기 위한 최후의 보루”
변호인 “재물손괴죄 구성요건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성립해도 정당행위”
박경석 대표, 재판서 “장애인의 외침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호소

1일 오전, 전장연과 희망법이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두에 앞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1일 오전, 전장연과 희망법이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두에 앞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지하철 승강장에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권리스티커를 부착했다’는 이유로 공동재물손괴죄로 기소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에 검찰이 벌금형을 구형했다.

1일 오전 9시, 재판에 앞서 전장연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아래 희망법)은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해 2월 13일, 전장연은 윤석열정부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장애인의 이동권·자립생활·교육권·탈시설·노동권 등의 권리 보장을 이야기하는 스티커를 승강장 내 벽면 및 바닥에 부착했다. 이에 대하여 검찰은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재물손괴)으로 기소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애린 소장은 “대한민국에서 40년 넘게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이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이동해본 적이 없다. 학교조차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장애인들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하고자 20년 넘게 외치고 있지만, 오늘 공공장소의 재물을 손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됐다”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건물에 손상을 입혔다면 개인적으로 사과드리겠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시설과 방구석에서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국가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있나. 우리는 어디에 가서 함께 살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불균형한 법의 적용에 분노를 표했다.

문애린 소장이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문애린 소장이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권달주 대표는 “우리는 정부가 장애인권리 보장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마지막 보루로 지하철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장애인의 목소리를 알리려 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탑승을 막고 우리가 내는 목소리마저 막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티커로서 시민들에게 작은 목소리로라도 외치려고 한 것”이라면서 “정부와 기획재정부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장애인의 입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 예산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규탄했다.

- 변호인 “재물손괴죄 구성요건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변호를 맡은 박한희 희망법 변호사는 “재물손괴죄는 특정 물건, 건축물, 차량 등의 재물의 효용을 떨어뜨릴 때 성립한다. 대법원은 재물손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용도, 행동의 목적, 경위, 복구할 때 드는 비용과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하철 승강장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여기에 장애인인권을 지지해달라는 스티커를 붙인 것이 승강장의 효용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장벽을 세운 것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물을 설치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서 형식적인 논리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넘게 이동권을 외쳤음에도 보장되지 않고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했다.

변호를 맡은 박한희 희망법 변호사가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변호를 맡은 박한희 희망법 변호사가 ‘지하철 스티커행동에 대한 형사재판 출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30여 분 만에 끝난 재판“장애인들의 외침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에서 박한희 변호사는 재물손괴죄 성립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설령 활동가들의 행위가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알리고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로서 이루어진 행위의 목적 및 구체적인 양상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재물손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경석 대표, 권달주 대표, 문애린 소장. 사진 김소영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재물손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경석 대표, 권달주 대표, 문애린 소장. 사진 김소영

이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박경석 대표는 “많은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리프트 추락사고 등으로 죽어가는 동안 서울시는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유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정치권은 장애인권리를 책임지긴커녕 무시하고 장애인들의 입을 막아왔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 이동권을 명시한 교통약자법 제3조, 장애인차별금지법,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 모든 것을 위반했다”면서 “그들의 잘못과 무책임함 때문에 아직도 지하철에서 외치고 있다. 저희들의 외침을 막지 말아달라. 판결을 통해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검찰은 박경석 대표에게 벌금 500만 원, 권달주 대표와 문애린 소장에게 각 벌금 200만 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선고기일은 5월 1일 오전 10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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