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과 2023년 ‘달보기 운동 함께 선언’ 기자회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13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모였다. 바닥과 벽면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13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모였다. 바닥과 벽면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13일 오전 8시,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1-1(서울역 방향). 6호선 환승 구간과도 연결되는 그곳은 다른 승강장보다 널찍하다. 그곳에 휠체어 탄 사람 20여 명, 비휠체어 이용자 50여 명이 일직선보다는 살짝 둥그렇게 서 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그들 앞을 빼곡히 채우고, 경찰 기동대는 지하철이 서는 승강장 통로에까지 방패를 들고 이들을 예의주시한다.

이르게 온 몇몇 사람들은 바닥과 벽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말한다. “저희는 스티커를 붙이겠습니다. 이것(스티커)은 장애인들의 권리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입니다. 장애인도 교육받고 싶은 우리의 절절한 메시지입니다. 장애인도 노동하고 싶습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명시한 탈시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더 이상 짓밟지 마십시오.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10분간 공식적으로 스티커를 붙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설 수용이 아니라 보호다. 기획재정부는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춰라’, ‘오세훈 서울시장,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준수’라고 적힌 스티커가 승강장 바닥에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시설 수용이 아니라 보호다. 기획재정부는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춰라’, ‘오세훈 서울시장,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준수’라고 적힌 스티커가 승강장 바닥에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구기정 삼각지역장이 스티커 붙이는 것에 대해 계속 저지하자, 박경석이 항변한다.

“왜 우리가 이렇게 붙이고 있는가에 대해서, 22년을 외쳐도, 서울교통공사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반성부터 좀 하세요.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2022년까지 엘리베이터 설치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하세요. 지하철에서 타다가 죽은 장애인에 대한 사과부터 하세요. 그것이 먼저입니다. 기획재정부와 오세훈 시장에게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3월 23일까지 우리가 22년을 외치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답을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담아 (스티커가) 떨어지지 않게 붙여주시고요, 이 스티커를 붙이며 우리의 권리를 지역사회에 알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장애인들의 권리입니다. 쓰레기 취급하지 마십시오.”

‘21년 외쳤다. 이제 차별 그만해’로 시작하는 노래가 앰프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바닥과 벽면에 스티커를 붙인다.

한명희 전장연 활동가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분홍 몸피씨를 입은 그의 왼쪽 가슴에는 ‘추모’라고 적힌 검은 리본이 있다. 사진 강혜민
한명희 전장연 활동가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분홍 몸피씨를 입은 그의 왼쪽 가슴에는 ‘추모’라고 적힌 검은 리본이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11분, 한명희 전장연 활동가의 사회로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분홍 몸피씨를 입은 그의 왼쪽 가슴에는 ‘추모’라고 적힌 검은 리본이 있다.

“지난 1월 2일, 신년투쟁을 선포했던 이 삼각지역은 공권력이, 서울교통공사가 무력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진압했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곳에 다시 한번 많은 시민이 와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하는 자리로 오늘 기자회견을 힘차게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날 전장연은 3월 23일까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멈추고, 승강장에 머무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전장연은 시민들과 함께 ‘손가락이 아닌 달보기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지하철행동에 대한 본질을 봐달라는 호소다.

3월 23일을 기점으로 잡은 것은 기획재정부가 3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4년도 정부 예산 가이드라인(실링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여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지하철 리프트 추락 참사·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 미이행’에 대한 사과와 함께, 기획재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책임 있게 촉구할 것, 탈시설 가이드라인 권고와 관련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과의 초청간담회 진행, 2024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답변을 3월 23일까지 요구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말한다. “그동안 정치권력은 예산에 대해 ‘검토한다’는 말로 22년을 흘려보냈습니다. 언론은 시민의 불편만 보도하고, 우리가 시민으로 외쳤던 그 내용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김태균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말한다.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운수 사회서비스 투쟁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전장연과 함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요’라고 적힌 하얀 종이 앞에 방송국 마이크들이 올망졸망 기대어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과 함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요’라고 적힌 하얀 종이 앞에 방송국 마이크들이 올망졸망 기대어 있다. 사진 강혜민 

앰프 앞에는 하얀 종이가 반듯하게 기대어 있다. 종이에는 반쪽짜리 달 그림과 함께 그 아래에 “전장연과 함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방송국 마이크들이 올망졸망하게 그 문구에 기대어 있다.

8시 25분, 김솔 인천뇌병변장애인인인권협회 회장이 말한다. 그는 인천에서 오기 위해 이날 새벽 5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특수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때 한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하며 쇠사슬을 묶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분들의 희생으로 너희들의 권리가 보장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운동하면 장애인에 대한 악감정만 더 생기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같이 학교 다닌 사람들 대부분이 이후 시설에 가거나, 지역사회에 살더라도 시설 같은 수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하철 투쟁 같은 과격한 행동을 하면서 이게 정말 우리한테 도움이 되나, 싶었지만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산 때문에 권리가 지연이 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지하철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은 죽습니다. 그때마다 사회가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죽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문화활동가 이혜규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문화활동가 이혜규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혜규 씨의 노래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이혜규 씨의 노래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8시 31분, 문화활동가 이혜규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아침 8시에 노래 부르긴 처음”이라고 입을 떼며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자다가 혹시라도 늦으면 어쩌나 해서 잠을 설쳤습니다. 여기 오니까 아주 멋진 장면이 연출되어 있네요. 우리 투쟁이 만들어낸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삼각지역 1-1 승강장, 장애인의 권리가 바닥과 벽면을 둘러싼 곳을 무대로 이혜규가 노래 부른다. 힘찬 노랫소리에 아침잠에 취해있던 사람들의 눈이 깨어난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보낸다.

8시 40분, 연달아 두 곡(‘휠체어 타고’, ‘덤벼’)을 부른 이혜규가 몸을 돌려 들어가려고 하자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한 곡 더”를 외친다. 평소라면 마지 못하는 척 다시 마이크를 잡을 그였다. 그러나 귀엽게 울상을 지으며 도저히 못한다는 표정으로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자 사람들이 폭소한다.

사회를 보던 한명희도 그를 붙잡지 않는다. “다음 집회 때, 오후에 해가 좀 지고 나서 다시 초대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김언경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이 무지개색으로 “아이 러브 전장연”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언경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이 무지개색으로 “아이 러브 전장연”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언경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이 무지개색으로 “아이 러브 전장연”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나온다. 종이상자를 이용해 직접 만든 팻말이다. 이날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 네 명이 그와 같은 재질의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에 함께했다.

그는 지난 2일 있었던 전장연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 오 시장이 보인 태도의 부적절함에 대해 지적한다. 기자들에게도 호소한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께 부탁합니다. 갈라치기 하는 보도는 절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스티커 붙이는 모습 굉장히 열심히 찍으셨는데요, 그 모습을 혼란으로 보이게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국민들이 누구에게 분노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를 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크게 환호한다.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활동가가 말한다. “전장연이 가리키고 있는 달빛이 매우 밝기 때문에 그 본질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까지 법과 예산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기에 장애인권리예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보기운동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지지와 연대의 말을 더 눈에 띄게 하겠습니다. 비장애중심 체제를 전복시키는 투쟁을 하는 전장연 운동에 연대하겠습니다.”

이어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던 중 반대편에서 박경석과 삼각지역장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삼각지역장이 바닥에 물이 묻으면 미끄러우니 또다시 스티커 떼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바닥에는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바닥에는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9시, 박경석이 말한다. “지난 2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습니다. 사회적 해결을 기대한 자리였는데 시장님은 협박만 하셨어요. 저희가 왜 지하철을 타게 됐는지, 원인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하철행동을 극단적 시위라고, 중범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상한 복지정책실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극단적 시위가 아니라 22년이 지나도 극단적 차별이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가 본질이고, 우리가 달을 보자고 하는 것은 바로 극단적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힘을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저희는 3월 23일까지 시민들과 함께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면서 기다리겠습니다. 왜 장애인은 이렇게 불평등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 땅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아주십시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박경석은 “전장연 유튜브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알려 나가겠다”면서 시민들에게 ‘좋아요’와 ‘구독’을 요청했다. “지금 3천 명이 조금 넘었는데 3월 23일까지 5천 명을 모아보자”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전장연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인정했어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위해 싸우는, 가장 강한 전장연이 되어서 내일 다시 이곳에 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시민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요.”

이날 연대 온 시민들과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구독, 좋아요,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연대 온 시민들과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구독, 좋아요,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이 오늘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들을 자기 곁으로 초대한다. 그들에게 박경석이 장난스레 말한다. “제가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그러면 ‘구독, 좋아요’ 이렇게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우리 오천 명 만들어야 해요.” 시민들이 알겠다고 끄덕한다.

사람들이 함께 외친다.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구독, 좋아요, 투쟁!”

아직 박경석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기획재정부와 서울시에 요구하는 내용을 훑고는 다시 삼각지역으로 돌아온다. “삼각지역장이 우리가 붙인 거, 비가 오면 미끄러지니 우리 보고 다 떼고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다 떼면 힘드니깐 이쪽으로 지나지 말라고 라카로 ‘미끄럼주의’라고 써서 시민들이 피해 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박경석 대표가 라카 칠을 하려고 하자 구기정 삼각지역장이 나와 저지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대표가 라카 칠을 하려고 하자 구기정 삼각지역장이 나와 저지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이 휠체어 뒤에 달린 가방에서 라카를 꺼낸다. 뿌리기 위해 라카를 흔드니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 삼각지역장이 그의 앞에 서서 그의 행동을 가로막자, 박경석이 “왜 맨날 다 안 된다고만 해요”라고 하며 비키라고 한다. 삼각지역장이 “못 뿌리게 막으세요” 하자마자, 보안관들이 박경석을 비롯해 라카 든 사람들을 둘러싸면서 승강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경찰까지 달려들어 사람들을 제지한다.

박경석을 둘러싼 지하철 보안관은 취재하는 기자를 몸으로 밀고 카메라를 팔로 가리며 자기 발을 박경석 휠체어 바퀴 아래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는 발이 끼였다며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그걸 본 박경석이 “자해공갈단이에요?” 소리친다. 박경석은 보안관들에 둘러싸여 꼼짝없이 갇혔다.

승강장 여기저기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 경찰, 활동가들이 덩어리째 뭉쳐 있다.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비명과 절규가 들릴 뿐이다. 하늘 높이 뻗은 카메라들이 그 목소리의 형상을 찍기 위해 꼿꼿하게 휘청인다.

8시 25분, 박경석이 대열을 정비하자고 하지만 현장은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자가 어떤 한 덩어리의 사람들을 헤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니 문애린이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바닥에 내려와 있는 문애린에게 “왜 지하철 바닥에 라카칠하고 지랄이야”라고 고함친다. 욕설을 내뱉은 그를 활동가들과 기자들이 쫓아간다. 그는 서울교통공사와 경찰 사이로 몸을 숨긴다.

한바탕 소요가 끝난 후 박경석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바탕 소요가 끝난 후 박경석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9시 31분, 박경석이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부닥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서울교통공사 직원에겐 (스티커가) 한낱 쓰레기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환경미화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언론들도 이렇게 이야기하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전장연, 깡패 같은 조직, 사회적 강자, 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해치는 사람들. 이런 방식으로 저희를 다뤄왔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여기 붙어 있는 스티커 하나하나를 이루기 위해 22년을 외쳤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관용적이라고 했는데요, 저희는 2001년 지하철 철로 내려가서 다 사법처리 받았습니다. 지하철 탈 때마다 벌금 다 받았습니다. 지금도 21명의 동지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공안 검사가 맡았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민주노련 집행부 6명을 2014년 사건까지 엮어서 법정 구속시키는 이런 어마어마한 공포,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맞을 수밖에 없죠.

정말 관용하는 사람은 장애인입니다. 21년을 외쳐도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기다리면서도 말조차 못한 시간이었습니다. 2004년까지, 또 2022년까지 엘리베이터 100% 설치하겠다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안 지켰습니다. 지금 오세훈 시장은 95% 넘었으니 그동안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길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우리의 권리를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삼각지역장이 와서 저한테 사람들이 지나가다 미끄러진대요. 그래서 ‘미끄럼주의’라고 쓰려고 하니 그것도 불법이래요. 저들 말에 의하면 모든 게 다 불법이래요. 저들은 정당하고 우리는 불법으로 만드는 이 대한민국, 그냥 갈 수 없지 않습니까. 동지들, 제안드립니다. 이제 이 지하철 벽면, 바닥 모든 곳에 우리의 권리를 붙입시다. 저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저항한다는 마음으로 시도 때도 없이 붙이는 투쟁에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투쟁!”

기자회견은 끝났지만 현장은 끝나지 않았다. 박경석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삼각지역장이 다가와 스티커 떼고 가라고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바닥에 붙은 스티커의 빈틈은 붉고 검은 스프레이가 채웠다. 글자는 쓰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하나둘 승강장을 떠난다. 지하철 보안관이 벽면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 구깃하게 주먹 안에 쥔다. 그 모습을 기자가 사진으로 촬영한다. 그의 옆에 있던 보안관이 기자가 사진 찍는다며 언질을 주자, 그는 행동을 멈춘다. 벽에 붙은 스티커는 이미 상당히 뜯겨 나가 너덜하다. 뜯긴 스티커 한 덩어리가 바닥을 뒹군다.

벽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 내는 서울교통공사 보안관.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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