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반란’ 과학자들 ④]
과학자반란 공동창립자 마이크
“1.5℃ 호도 그만, 이미 죽은 목표… ‘비상사태’ 선포가 진실”
“기후재앙 막고 팔레스타인 살상 막는 비폭력이 불법 되는 시스템” 변혁해야

[편집자 주]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 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이 운동에 결합하는 과학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후재앙을 당장 막아야 한다며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벌인다. 도로와 공항을 점거하고, 정부 건물에 붉은 페인트를 뿌리고, 화석연료 기업의 벽을 과학 논문으로 도배한다.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정의 단체들이 늘 해온 일이나, 과학자들도 적극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일견 과격하게 보이는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유기고가 손가영 씨가 흰 가운을 입고 거리로 뛰어든 ‘과학자반란’ 구성원 8명을 지난 2월 한 달간 인터뷰했다. 이 내용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당신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걷는 길에 한 집이 불길에 휩싸인 걸 봤다. 그런데 집 안엔 사람들이 갇혀 있다. 달려가 창문을 깨고 그들이 탈출하는 걸 돕는 게 ‘극단적’(radical)인가, 아니면 별일 없다는 듯이 집을 지나치는 게 ‘극단적’인가?

영국의 기후운동가이자 팔레스타인해방연대 활동가인 마이크 린치 화이트(Mike Lynch-White)는 기후정의 운동 단체에 흔히 가해지는 ‘극단적’, ‘폭력적’이라는 비판에 이리 말했다. 그리곤 이를 그대로 지금의 기후위기에 빗대 다시 말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남의 집 문을 부수는 행동은 극단적이고 당연히 잘못됐다. 그러나 비상사태라면? 전 지구적 멸종 위기는 차치하고, 집을 지나쳐 사람이 죽도록 놔두는 게 진짜 극단적이다. 나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용인하지 않는다. 벽과 창문에는 감정이 없다. 기후위기로 인해 불필요한 죽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십억 명의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는 감정을 갖고 있다. 사유재산을 생명과 같은 수준에 올려두고 생각해선 안 된다.”

흰 실험복을 입고 발언 중인 마이크. 사진 본인 제공
흰 실험복을 입고 발언 중인 마이크. 사진 본인 제공

‘비상사태’는 마이크가 세상을 바라보는 열쇳말 중 하나다. ‘1.5℃까지 몇 ℃가 남았다’거나 ‘이러저러한 대책으로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다’는 말은 그에겐 완전한 거짓이다. 생태계 멸종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지구는 기후재앙에 이미 갇혔으며, 1.5℃는 사실 곧 지구가 넘겨 버릴 죽은 목표라는 것이다. 당장 창문을 깨고 사람을 구해야 할 비상사태인데, 정부·기업·국제기구가 수십 년의 ‘탄소 감축 과도기’만 정하는 모습은 그에겐 너무나 안일하고 기만적인 행태였다.

그는 비상사태에 필요한 행동을 유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이크는 대학원을 다니다가 사회운동가로 거듭났다. 그의 수단은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이었다. 그러다 2020년 천체물리학자 팀 휴렛(Tim Hewlett)과 함께 ‘과학자반란’까지 만들게 됐다. 이 과학자반란은 이후 30개국 이상으로 퍼졌고 대륙을 넘어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

과학자반란 시위가 열렸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마이크가 기후위기 관련 논문 출력물과 함께 거리에 앉아 있다. 사진 Extinction Rebellion
과학자반란 시위가 열렸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마이크가 기후위기 관련 논문 출력물과 함께 거리에 앉아 있다. 사진 Extinction Rebellion

- 팔레스타인 살상 막는 행동이 불법이 되는 시스템

마이크는 자신이 “제대로 된” 과학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한 데다, 학문 자체보다 사회운동에 더 큰 가치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양자 중력과 양자 오류 수정 분야를 연구하고자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후위기 관련 서적을 읽고 비로소 문제를 체감하면서 무언가에 머리를 쾅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점점 더 기후운동에 골몰하던 그는 2년 후 학교를 떠났다. 2018년경 기후정의 단체인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전업 활동가가 됐다.

“나는 세계가 불타고 있을 때 박사학위를 취득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 지식의 나무에 나뭇잎 한 장을 놓는데, 정작 그 나무가 불에 타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과학자는 13살 때부터의 꿈이었음에도, 기후위기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부터 나는 그 길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삶의 여러 궤적이 영향을 줬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헤어진 후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가족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사회 시스템을 보면서 자랐다”고 말했다. 2014년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기억은 그의 가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당시 학부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중동 및 남아시아 등지로 여행을 갔는데, 우연히 팔레스타인에 들렀다가 이스라엘의 억압과 폭력, 아파르트헤이트로 점철된 실상을 목격했다. 살면서 봤던 것 중 가장 “반인간적인 끔찍함”이었다. 그에겐 기후위기도, 팔레스타인 해방도 전 지구적 비상사태라는 측면에선 동일한 문제였다.

2021년 6월 10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수업체에 군수 설비를 납품하는 영국 APPH 공장을 점거한 모습. 가장 왼쪽이 마이크다. 사진 Palestine Action
2021년 6월 10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수업체에 군수 설비를 납품하는 영국 APPH 공장을 점거한 모습. 가장 왼쪽이 마이크다. 사진 Palestine Action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이라도 하겠다.” 이렇게 다짐했던 그는 귀국 후 지금까지 정말 이 말을 지키며 살았다. 대학을 다니던 중에도 꾸준히 팔레스타인해방연대 활동에 참여했고, 전업 활동가가 된 후엔 더 적극적으로 직접행동에 뛰어들었다.

그중 하나가 2021년 6월 진행한 ‘APPH 공장 옥상 점거’다. 2년 후 그는 27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APPH는 이스라엘 군수기업 엘빗(Elbit)에 공격 드론 착륙 장비를 공급하는 곳이다. 2021년 5월, 이스라엘은 7일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했고, 70여 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260여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다. 엘빗의 2021년 수익은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마이크는 팔레스타인 살상 무기를 만드는 엘빗과 영국 간의 공급망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6월 10일 새벽 4시, 마이크는 팔레스타인행동 활동가 2명과 함께 공장 옥상에 올라갔다. 그들은 건물 외벽에 빨간색 페인트를 붓고 조명탄을 터뜨렸으며 팔레스타인 깃발을 게양했다. 건물 채광창을 통해 소화기를 떨어뜨려 일부 착륙기어 부품을 손상시켰고, 옥상을 점거하며 이틀간 공장을 일시적으로 폐쇄시켰다.

- 과학계의 위선에 페인트를 던지다

2020년 9월 10일, 마이크와 팀은 영국 왕립학회에 페인트를 뿌리며 과학자반란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오른쪽이 마이크. 사진 Extinction Rebellion
2020년 9월 10일, 마이크와 팀은 영국 왕립학회에 페인트를 뿌리며 과학자반란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오른쪽이 마이크. 사진 Extinction Rebellion

과학자반란은 2020년 9월 10일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에 페인트를 뿌리는 직접행동을 하며 시작됐다. 공동 창립자인 마이크와 팀의 기획이었다. 왜 화석연료 기업이 아니라 학회였을까. “(진실하지 않은) 과학계를 상대로 맞서고, 과학자들이 기후위기의 무서운 진실을 대중에게 말하도록 요구하는 게 초기 과학자반란의 핵심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왕립학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학술 기관이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과학 및 과학 권력의 심장이자 중심지다. […] 그래서 여기서 시작했다. 우리는 대중에게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얘기하는 과학계의 치어리더가 아니다. 대신 우리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기후위기의 진실이 ‘진짜 진실’인 것처럼 스스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과학자들이다. 왕립학회 회원들은 기후위기가 진실인 것처럼 행동할 의무가 있는, 매우 특권적이고 신뢰받는 이들이다.”

마이크의 눈엔 과학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대로 행동하지도 않는 문제가 보였다. 널리 알려진 과학계의 ‘1.5℃ 내러티브’는 그에게 비상사태라는 진실을 가리는 허구였다. 과학자들 커뮤니티만 봐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정한 1.5℃ 내로 지구온난화를 유지하는 건 이미 불가능하며 이대로는 기후재앙을 피할 시간이 없다는 걸 서로가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행동할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건 극도의 역효과를 낳고 있다”며 “기후위기의 격변적인 결과를 연구하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과학자들은 솔직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들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사람들에게 보낸다“라고 말했다.

에퀴노르, 아다니, BP 등 기후재난에 큰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기업의 후원을 받는 영국 과학박물관 앞에서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Extinction Rebellion
에퀴노르, 아다니, BP 등 기후재난에 큰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기업의 후원을 받는 영국 과학박물관 앞에서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Extinction Rebellion

학계는 더 적극적으로 화석 자본과 ‘결탁’해 있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과학박물관은 과학자반란 시위가 열리는 단골 장소다. 박물관이 재생에너지 투자 약속을 철회한 영국 최대 석유회사 브리티스 페트롤륨(BP), 영국에서 최대 미개발 유전의 개발을 계획 중인 에퀴노르(Equinor), 세계 최대 민간 석탄 개발업체이자 이스라엘 방위군에 장비를 제공하는 아다니(Adani) 등 ‘기후 악당’들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심지어 기후 변화 전시회도 전 세계 2위 규모 석유회사 셸(Shell)의 후원금으로 열기도 했다.

『란셋』(Lancet) 등 의학·과학기술 유명 저널을 출판하는 학술출판사 엘스비어(Elsevier)도 있다. 엘스비어가 10년 넘게 화석연료 추출 기업에게 기술·정보 지원을 해왔고, 초국적 석유기업 직원을 편집자와 자문위원 등으로 위촉한 사실이 지난해 밝혀지자, 영국 과학자반란은 규탄 피켓을 들고 본사 사무실 앞을 찾아갔다. 이들은 모기업 대표를 만나려고 직접 주주총회를 찾아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과학·의료 출판사가 기후 붕괴를 조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294일, 최장 복역 기후운동 과학자

그렇게 쉬지 않고 동료들과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어 온 마이크는 2023년 2월 구치소에 수감됐다. 명시적 이유는 팔레스타인 관련 APPH 공장 점거 때문이었다. 그해 5월, 그는 무기 공장을 점거하고 방해한 혐의로 27개월(이후 23개월로 감형)의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투옥됐다. 수감 294일 만인 12월 4일, 가택연금 보석으로 석방돼 현재는 집에서 보호관찰을 받으며 지낸다.

마이크의 석방을 요구하는 연대 활동을 하고 있는 포르투갈 과학자반란 활동가들 모습. 사진 Extinction Rebellion
마이크의 석방을 요구하는 연대 활동을 하고 있는 포르투갈 과학자반란 활동가들 모습. 사진 Extinction Rebellion

지난달엔 히드로공항 활주로 추가 건설 계획을 막고자 벌였던 직접행동 때문에 또 유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후 ‘정부가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약속을 고려하지 않아 위법하다’며 영국 법원이 제동을 건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징역 17개월에 집행유예 18개월, 사회봉사 262시간을 선고받았다.

마이크는 “아내와 개,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건 힘들었고, 재판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언제 감옥에 갇힐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나를 지치게 했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변명하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 살아오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체포될 수 있는 직접행동을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우리가 인간종으로서 직면했던 가장 큰 도전에 한 발을 내디뎠고 (기후위기를 둘러싼) 진실이 진정한 진실,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인 것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유럽에서는 ‘당신이 독일인이고 나치가 집권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악과 싸우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 실험이다. 그냥 포기하고 그들과 합류할 것인가, 조용히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죽음을 감수할 것인가? 지금 당장 수십억 명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고 수백만 종이 멸종될 예정이다. 위험은 이보다 더 높을 수 없으며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 사고 실험을 살고 있다.”

필자 소개

손가영 8년간 언론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기상과 기후 공부를 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고 좀 더 나은 기록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rockyrkd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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