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차별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전장노련 창립
국회에서 출범식 및 기념 대담회 진행
서미화 의원 “전장노련, 권리투쟁의 새로운 지평 열어나갈 것”
“장애노인을 위한 권리투쟁은 결국 모든 노인을 위한 투쟁”

장애노인 권리투쟁을 위해 전국장애노인연대(아래 전장노련)가 출범했다. 17일 오후 2시, 전장노련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장애인이 나이 들어 부정당하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 권리 보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17일 오후 2시, 전장노련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참가자 전체가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소영
17일 오후 2시, 전장노련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참가자 전체가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전장노련 창립대회에 많은 장애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장애노인의 특수성 고려하지 않는 정책… 사각지대에 몰린 장애노인들

전장노련은 어떤 배경에서 출범하게 됐을까. 이재민 전장노련 간사는 “가장 선두에서 세상을 바꿔왔던 장애인들은 ‘나이 듦’, 정확히는 노인기로 접어들며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지역에 함께 살고 싶어 만들어낸 정책들이 정부와 사회가 만든 노인이라는 기준 앞에 무력화됐다. 연령을 이유로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애당사자들이 나이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존엄하게 살며, 존엄하게 죽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전장노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장애노인들이 처한 현실은 차별적이다. 장애노인은 65세가 되면 강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편입된다. 이로 인해 이전에 받던 서비스 자격을 상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한다. 장애노인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노인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게 되면 중증장애인들은 활동지원이나 보조기기 등 지급받던 서비스가 위축된다. 노인장기요양 등급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탈락하면 받고 있던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유지할 수 있지만 등급 조정에 의한 서비스 변동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목적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일상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 삶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반면 노인장기요양은 고령이거나 노인성질병을 가진 사람이 집에서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노인장기요양에는 크게 ‘재가급여’와 ‘시설급여’가 있다. 재가급여는 가정을 방문해 신체활동 및 가사활동 등을 지원하는 것, 시설급여는 요양시설에 장기간 입소해 신체활동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노인장기요양은 ‘집안’ 또는 ‘시설’에서 ‘요양’을 지원하는 제도라서 학교, 직장, 나들이 등 장애인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와 아예 다르다.

또한 활동지원서비스는 월 최대 480시간을 받을 수 있는데 노인장기요양은 월 최대 116시간밖에 안 된다. 이마저도 집안에서의 요양, 치료 등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시간에는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편입되면 장애인복지일자리 자격이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장애노인 65세 됐다고 복지부 일자리서 해고… 국가 상대 손배소) 이에 대해 장애노인 당사자가 차별구제 민사소송을 제기해 최근 지침이 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2025년도 장애인 일자리 사업 지침’ 내 장애인 일자리 참여 신청 제외 대상에서 장기요양 등급 판정자 예외 사항을 삭제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이 실제로 이행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처럼 여전히 장애노인들은 개별적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 “전장노련, 권리투쟁의 새로운 지평 열어나갈 것”

이날 창립대회는 1부 출범식으로 시작됐다. 출범식 사회를 맡은 박김영희 전장노련 이사는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장애노인들이 간절히 원했던 자리이다. 장애를 가지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렇게 모이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65세가 넘은 장애노인들도 장애 정도에 따른 미세한 차이점들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장애노인들을 장기요양 대상자로 포괄적으로 묶어 획일화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전장노련 출범이 장애노인의 유형을 세분화하여 그에 맞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한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축사를 전했다.

전장노련의 창립대회를 함께 주최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자리에 참석했다. 서 의원은 “전장노련 출범이 장애노인의 권익을 신장하고 권리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국회에서도 전장노련과 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미화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서미화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축사에 대한 화답으로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가 인사말을 전했다. 박 대표는 “65세가 넘으면서 노인요양장기보험으로 전환되어 3시간의 지원만 받았어야 했다. 그때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어 자살을 하고싶을 정도였다. 죽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자식들한테 나를 맡기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다행히 나는 요양 등급을 받지 못한 덕분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속해서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많은 장애노인들이 65세가 되는 것을 고민하고 겁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왜 우리가 65세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 전장노련이 든든한 선배가 되어 함께 싸워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장애노인을 위한 권리투쟁, 결국 모든 노인을 위한 투쟁”

축사와 인사말이 끝난 뒤에는 이재민 전장노련 간사의 발제가 이어졌다. 이 간사는 “비장애중심적인 노인 정책으로 강제적으로 편입되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개별 서비스에 대해 각개 돌파해야 하는 반인권적인 상황에 계속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노인을 위한 권리투쟁은 결국 모든 노인을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장애노인은 장애를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모든 전선에서 가장 앞에 서 있으며 연대를 촉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창립대회 2부는 출범 기념 대담회로 진행됐다. 대담회에는 최현숙 작가가 사회를 맡고 패널로는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최윤정 장애인 일자리 권리 활동가, 임소연 전장연 사무총장이 참여했다.

창립대회 2부로 출범 기념 대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임소연 전장연 사무총장, 최윤정 장애인 일자리 권리 활동가, 최현숙 작가,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김영희 전장노련 이사. 사진 김소영
창립대회 2부로 출범 기념 대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임소연 전장연 사무총장, 최윤정 장애인 일자리 권리 활동가, 최현숙 작가,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김영희 전장노련 이사. 사진 김소영

패널들과 플로어에 참석한 장애인들은 ‘언제 스스로 늙었다고 느끼는지’, ‘노인인데 장애인이어서 다른 노인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활발히 이어갔다.

플로어에 있던 한 장애인 당사자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 주민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보조기기 기준에 따르면 팔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전동휠체어가 아닌 수동휠체어만 이용할 수 있다. 나는 팔에 장애는 없지만 척추장애와 노화로 인해 팔에 굉장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전동휠체어로 처방전을 받기 위해 의사에게 정말 간곡하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고 장애노인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활동지원서비스 재심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동지원시간을 심사하러 온 조사원은 장애인의 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기존에 판정된 장애만으로 활동지원시간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최현숙 작가는 “장애 판정의 기준 자체도 문제이지만 노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기존의 기준만을 적용하다 보니 장애노인들이 계속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매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담회를 마치고 참가자 전체가 함께 “장애노인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며 창립대회는 마무리됐다. 한편 전장노련은 장애노인뿐만 아니라 장애노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을 모으고 싶은 누구나 회원가입 및 활동이 가능하다.

▶ 전국장애노인연대 가입링크: https://apply.do/Sasd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와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서미화 의원이 함께 전장노련 창립 기념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박명애 전장노련 대표와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서미화 의원이 함께 전장노련 창립 기념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있다. 사진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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