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씨, 65세 생일 되고 장기요양 1등급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삭감, 복지형 일자리 탈락
인권위 권고에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복지부
장애노인들, “나이 드는 게 무섭다” 눈물로 규탄

올해 만 65세가 된 장애노인 최윤정 씨. 최 씨는 최근 두 번의 ‘부당해고’를 당했다.

첫 번째 해고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했다. 최 씨는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 시장이 해당 일자리를 폐지하면서 최 씨는 실직했다.

두 번째 해고는 보건복지부가 했다. 최 씨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해고당한 후 복지부에서 시행하는 복지형 일자리에서 일했다. 만 65세가 된 후 노인장기요양 1등급을 받게 되면서 해당 일자리조차 잃었다.

이에 최 씨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장애인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장애노인들은 최 씨와 함께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장애노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최윤정 씨가 기자회견에서 눈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윤정 씨가 기자회견에서 눈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기요양 1등급 받자마자 활동지원서비스 줄고 일자리 탈락

장기요양 1등급 판정과 복지형 일자리 탈락까지, 최 씨에게는 날벼락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최 씨는 61세이던 2020년, 처음으로 복지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하루 서너 시간씩 동료상담가로 일했다. 매년 말 선발 과정을 거쳐 1년씩 계약하는 불안정한 일자리였다. 그럼에도 최 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 월 50여만 원의 임금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다.

최 씨는 올해도 복지형 일자리 노동자로 선발돼서 지난 1월 1일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12월 31일까지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지난 2월,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신청해야 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관할 주민센터 직원의 안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최 씨는 장기요양 1등급을 받았다. 이후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든 것은 물론, 3월 중순부터는 복지형 일자리까지 잃게 됐다.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보건복지부는 장애노인 자립생활 권리보장에 대한 국가적 책임 이행하라! 대한민국의 장애노인 차별 행정 및 자립생활 권리 침해에 대한 행정/장애차별구제 소송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보건복지부는 장애노인 자립생활 권리보장에 대한 국가적 책임 이행하라! 대한민국의 장애노인 차별 행정 및 자립생활 권리 침해에 대한 행정/장애차별구제 소송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인권위 권고에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복지부… “장애노인 선택권 보장하라”

우선 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목적과 내용이 전혀 다른 복지제도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일상생활, 사회생활 등 삶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반면 장기요양은 노인성질병을 가진 사람이 집에서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즉, 장기요양은 ‘집안’에서의 ‘요양’을 지원하는 ‘재가서비스’라서 학교, 직장, 나들이 등 장애인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와 아예 다르다.

또한 활동지원서비스는 월 최대 480시간을 받을 수 있는데 장기요양은 월 최대 116시간밖에 안 된다. 이마저도 집안에서의 요양, 치료 등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시간에는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

현재 복지부는 만 65세가 된 장애인이 노인성질병으로 장기요양등급을 받게 되면, 강제로 장기요양으로 전환한 후 해당 시간만큼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삭감한다. 장애노인에게 선택권은 없다.

장애노인들은 2019년부터 이 사태를 “현대판 고려장”이라 부르며 지속해서 투쟁해 왔다. 조인영 ‘공인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만 65세 이상 장애노인에게 장기요양을 이용하라고 강제하는 건 자립생활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심각한 폭력행정”이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이미 “(장애노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복지부와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2016년 10월에는 복지부 장관에게, 2019년 7월에는 국회의장에게 관련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법원도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활동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4월 28일, “종전부터 활동지원급여를 받아오던 모든 장애인이 65세가 넘게 되면 일률적으로 활동지원급여만 지원받을 가능성은 전부 배제되도록 할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며 “이러한 방식의 제도 설계는 (중략) 장애인활동법 제5조 제2항 단서의 내용과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에 공식적으로 ‘불수용’ 입장을 밝혔고, 법원 판단도 무시한 채 관련 법령을 내버려둔 상태다. 조 변호사는 “정부는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정부가 편한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한다”고 규탄했다.

최 씨는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장기요양으로 변경된 처분에 대해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조 변호사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현행법 위반이란 걸 확인받고, 장기요양 전환을 즉시 중지하며, 활동지원서비스를 온전히 제공하라고 요청할 것”이라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왼쪽)와 박명애 전국장애노인연대(준) 공동대표(오른쪽).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왼쪽)와 박명애 전국장애노인연대(준) 공동대표(오른쪽). 사진 하민지

- 장기요양등급 받으면 일자리 참여 즉시 중단?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최 씨가 복지일자리에서 해고된 건 또 복지부 때문이다. 복지부는 ‘2024년 장애인 일자리 사업 안내 지침’에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즉시 장애인 일자리 사업 참여를 중단한다는 지침을 세워놨다. 또한 향후 장애인 일자리를 신청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복지부 지침은 정당한 사유 없이 만 65세 이상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우한다”고 비판했다.

최 씨는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더 삭감될 위기에 놓였다. 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 장애인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면 가점을 받아 더 많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받을 수 있다. 최 씨는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원래 받았던 가점을 못 받으면, 기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이에 최 씨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 제2항에 따라, 대한민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복지부의 부당한 지침 삭제 △일자리를 잃어서 못 받은 급여 상당액에 대한 손해배상 △임시조치로 2024년 장애인 일자리 사업 참여 등을 청구할 예정이다.

최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공공사업 수혜자의 선정기준을 정할 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 배제 등을 할 수 없다. 또한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금지하고 있다”며 “이 사건이 잘 판단돼 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명애 전국장애노인연대(준)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명애 전국장애노인연대(준)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노인들 “현대판 고려장 만드는 복지부… 나이 드는 게 두렵다” 눈물로 규탄

최 씨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지으며 정부를 규탄했다.

“만 65세 생일이 지났다고 하루아침에 해고돼 실직자가 돼버린 최윤정입니다. ‘노인’이란 이유로 중단된 출근길을 되돌아 보고는 합니다. 집에 있다가 아주 주저앉을까 봐 이렇게 (기자회견에) 나왔습니다.

64세일 때는 멀쩡하다가 1년 사이에 갑자기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00세 시대인 지금은 그런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장애노인을 재가장애인으로 만들고 일자리를 중단하는 이유는 뭔가요? 현대판 고려장을 만들려는 건가요? 장애노인을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려고 하는 건가요?

우리도 일할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 세금도 내는 직장인이 되게 하세요. 세금 빼먹는다는 소리 듣기 싫어요. 활동지원서비스와 장기요양 중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하세요. 우리도 똑같은 국민으로, 시민으로 살게 하세요.”

최 씨와 같은 장애노인들도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토했다. 올해 71세가 된 박명애 전국장애노인연대(준) 공동대표는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며 절규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생겼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가슴에 피눈물이 흐릅니다.

최윤정 님! 우실 필요 없어요. 울 일 아닙니다. 이거는 ‘나쁜 새끼야’ 하면서 멱살을 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왜 복지부가 마음대로 내 삶을 좌지우지한단 말입니까?

대통령, 돌아보십시오! 돌아봐!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장기요양 하루 최대) 3시간 받고 어떻게 삽니까? 제발 사람답게 좀 살아가게 하십시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노후를 보내게 하십시오.”

올해 63세로, 65세를 앞둔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도 정부를 비판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무섭습니다. 두려움이 매일 엄습합니다. 지금 이용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 속에서 삽니다. 최윤정 님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문제입니다.

장애인이 늙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야만적인 제도를 바꿔냅시다. 더는 눈물 흘리는 장애인이 없도록 끝까지 투쟁합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는 돌봄과 보호라는 명분으로 장애노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외쳤다.

최윤정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윤정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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