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불명확한 기준으로 45명 해고
1년간 빚 떠안으며 버틴 위탁기관들
올해 새 공고… 이번에도 모호한 심사기준
“신규 30% 채용”에 “지역사회 환류” 계획까지
장애인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취지 없다” 비판
경기도 장애인 노동자들이 경기도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경기도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를 올해도 이어갈 가능성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이미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경기지부 소속 기관의 노동자 45명이 해고됐다. 경기도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수행 위탁기관을 다시 선정하면서 기존에 사업을 수행하던 위탁기관 세 곳을 떨어뜨린 것이다.
탈락기관은 1년간 빚을 떠안아 가며 올해 초에 열릴 새 공모를 기다렸다. 지난 10일 공개된 공고문을 보고 절망했다. 공고문에 따르면 공모에 신청하려는 기관은 중증장애인을 지역사회로 “환류”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게다가 “모집인원 중 30% 이상은 신규 참여자를 선발”할 거라 명시돼 있다.
즉,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는 고용의 연속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비장애인 기준의 노동시장으로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 사업이 종료되고 새 공모가 뜰 때마다 해고될까 맘 졸여야 한다. 이 같은 해고가 지난해 실제로 일어났다. 공모기준이 이대로라면 올해 공모에도 선정되리란 보장은 없다.
이에 장애인 노동자들은 14일 오후 4시,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공모방식을 중단하라. 우리의 노동권을 매년 단두대 앞에 놓는 일을 멈춰라”라고 요구했다.
- “우리 언제 다시 출근해요?” 악몽 같았던 1년
지난해, 45명 해고 대란이 일면서 경기도 장애인 노동자들은 경기도청 지하 1층 민원실 입구를 점거하고 단식 농성을 벌였다. 투쟁 끝에 경기도는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인원 및 예산 확대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조례 제정 추진 △경기복지재단의 연구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연구 △협력과 대화 지속 등을 약속했다. 이에 노동자들과 탈락기관은 농성을 중단했다.
지난 1년, 탈락기관은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사업수행을 위해 마련한 공간과 각종 사무가구 등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장애인 노동자가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우리 언제 다시 출근해요?”라고 서로에게 물을 때마다 근심은 깊어졌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아래 경기부모연대) 오산지회는 탈락기관 중 한 곳이다. 유경애 지회장은 지난해를 “악몽 같았다”고 회상했다. 유 지회장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위한 사무공간을 마련했다. 고용 기간은 10개월뿐이었지만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한 건 3년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2024년은 진통제를 안 먹으면 단 하루도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노동자들이 사무실에 나와서 ‘우리 언제부터 또 출근해요?’라고 하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노동자에게는 출근이 하나의 패턴이 됐다. 일할 수 없어도 패턴대로 출근하고 계신다”고 성토했다.
김미범 경기부모연대 대표 또한 “장애인 노동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인가.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 볼 기회도 얻지 못하고,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고용돼 처음으로 월급 받고 부모님께 빨간 내복 사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면 ‘내년에 우리 잘려요?’라고 물어보며 초조해한다”고 규탄했다.
- 인원 및 예산 확대, 조례 제정 등 약속 일부 이행
경기도는 약속 중 일부를 이행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인원을 지난해 665명에서 올해 730명으로 65명 늘렸다. 예산은 지난해 91억 3,902만 9천 원에서 올해 101억 8,90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10억 4,997만 1천 원 확대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관련 조례도 제정됐다. 박재용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은 ‘경기도 장애인 일자리 창출 및 장애인 고용촉진·직업재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정의, 지원계획, 일자리 확보를 위한 공공기관의 역할 등이 명시돼 있다. 비록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제도화를 분명히 하는 단독 조례는 아니지만 수많은 경기도 장애인의 찬성 속에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0일 가결됐다.
경기복지재단 연구사업도 수행됐다. 해당 연구의 보고서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개선방안”을 보면 개선과제로 “사업 운영체계 및 지원 인프라 강화”를 제시하며 “짧은 위탁 기간으로 인한 사업 안정성 저하, 사업 종료 시 중증장애인의 고용 불안감 증대, 1년 단위 공모사업 방식의 문제점, 연속성 측면에서의 취약성” 등의 쟁점과제를 도출했다. 이를 위해 “장기 위탁 및 예산 확보 계획, 수행기관 선정 및 관리체계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했을 때, 경기도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연속성이 중요하단 걸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매해 새롭게 공모를 내고, 심사 기준 또한 매해 달라지며, 기관은 행여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면서 신청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일자리의 연속성은 보장할 수 없다.
- 새 공고 보니 또 “매년 새로 모집”… 심지어 “지역사회 환류” 계획까지
그럼에도 경기도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문제로 지적한 방식을 답습하는 내용의 공고문을 냈다. 우선 경기도는 올해부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경기복지재단 산하의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아래 누림센터)’에 위탁했다. 따라서 기관들은 누림센터의 심사를 받게 됐다.
공고문에 따르면 이번 사업 기간은 오는 2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총 23개월이다. 기관의 사업 기간이 23개월인 것이고, 노동자의 근무 기간은 여전히 1년 미만이다. 누림센터는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이내, 다음 해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 이내로 구분해 매번 노동자를 공개 모집할 예정이다. 장애인 노동자의 목숨이 파리목숨인 건 달라지지 않았단 뜻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심사기준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취지 등이 없다는 것이다. 심사지표안은 기관평가, 사업평가, 예산평가 등 3개 항목으로 간단하게 구성돼 있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건지 심사지표안만 봐선 알 수 없다. 어떤 항목에서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홍보 등 권리중심공공일자리와 연관된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기관은 ‘직무활동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여기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환류”하는 방안을 포함하라고 명시돼 있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 노동시장에 취직할 방안을 세우라는 것이다.
김미범 대표는 “최중증장애인이 기존 노동시장에서 취직하기 쉬웠다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왜 만들어졌겠는가? 뜬금없이 장애인을 다른 노동시장으로 보내라는 요구가 사업계획서에 버젓이 들어있는데,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문제는 더 있다. 누림센터는 노동자를 공개 모집할 때 “30% 이상은 신규 참여자를 선발”하겠다고 했다. 쉽게 설명하면 기존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한 최중증장애인을 데리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라는 파이 안에서 로테이션을 돌리겠다는 거다. 장애인에게 번갈아 가며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규정에 대해서도 강력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영봉 전권협 경기지부장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복지 프로그램인가? 엄연한 노동이다. 만약 비장애인 중심 회사에서 노동자를 채용할 때 매년 30%는 신규 인력으로 대체한다고 하면 비장애인들은 가만히 있을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경기지부장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복지 프로그램으로 아니까 ‘중증장애인들 1년 혜택받았으면 내년엔 다른 장애인도 받아봐라’ 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다시 말하지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분명히 노동이다. 모든 중증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일하는 환경 만들어라. 그게 경기도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수지센터)도 지난해 탈락한 기관 중 한 곳이다. 김동예 수지센터 소장은 “30% 신규 채용,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공무원도 1년에 한 번씩 그만두게 하고 신입으로 채워라”라고 분노했다.
김 소장은 “기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를 해고하고 다시 실업상태로 내몰겠다는 부당한 처사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경기도는 해당 규정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경기도 장애인 노동자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경기도와 면담했다. 박경석 전권협 대표는 1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요구사항을 경기도에 전달했다. 경기도는 오는 23일까지 답변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