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665명 총인원은 늘었지만 기존 사업수행기관 탈락
‘기존 기관 탈락’은 2021년 사업 시행 후 처음
중증장애인 45명 해고에 장애계 점거·단식 농성 이어가
- 서울 이어 경기도도 중증장애인 노동권 무너지나
‘괴소문’은 끔찍한 현실로 드러났다. 2월 1일로 경기도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1월 30일, 경기도가 올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수행할 기관 34곳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기존 사업수행기관 사이에 유령처럼 떠돌던 ‘리스트’는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닌 사실임이 확인됐다.
문제는 지난해 사업을 수행하던 기관 중 탈락자가 발생하면서 중증장애인 노동자 대량 해고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장애인보호작업장을 운영하는 기관이 사업수행기관으로 선정되면서 ‘노동능력이 없는 최중증 탈시설장애인을 우선고용한다’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이라는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해왔다. 장애를 이유로 세상에서 배제되었던 중증장애인이 공공의 장소에서 그림, 춤,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권익옹호활동이자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활동으로 인정해 온 것이다. 지자체 입장에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폐지로 400명의 해고자가 발생한 것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한 경기도마저 흔들리면서, 중증장애인 노동권에 적신호가 켜졌다.
- 사유도 알지 못한 채 탈락… 사무실 마련 비용은 빚으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경기지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5일, ‘해고 노동자 리스트’가 될 ‘사업수행기관 탈락 리스트’를 우연히 입수했다. 이튿날인 26일, 경기도청과 면담을 진행했으나 쉽게 풀리지 않았고 결국 점거 농성으로 이어졌다. 사업선정기관 발표 하루를 앞둔 29일에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2월 1일로 도청 점거 농성은 7일, 단식 농성은 4일 차를 맞았다.
전권협 경기지부 소속 단체 중 올해 사업에서 탈락한 곳은 세 곳이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오산지회와 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사업에서 탈락했다. 경기부모연대 오산지회, 아람센터에는 각 20명, 수지센터에는 5명의 중증장애인이 고용되어 있었으나, 사업 탈락으로 총 45명의 해고자가 발생하게 됐다.
1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경기부모연대 오산지회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 소식을 듣던 지난 25일부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유경애 경기부모연대 오산지회장은 31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며칠 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아무 생각이 없다”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탈락 사유를 경기도로부터 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지회장은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대신 유 지회장은 지난 26일 경기도와의 면담에서 담당 공무원이 “기회균등”이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유 지회장은 “김성겸 주무관(경기도 담당 공무원)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해 사업수행기관을 바꿔야 한다면서 ‘기회균등 차원’이라고 말했다”면서 “기회를 균등하게 주려면 지역도, 일한 기간도 살펴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는 작년에 사업 시작해서 고작 10개월 일했다. 다른 지역은 오히려 사업수행기관이 늘었는데 오산에선 시각장애인 기관 한 곳이 신규로 들어오고 우리는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경기부모연대 오산지회는 작년에 이 사업을 하기 위해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에어컨과 히터가 함께 되는 냉난방기 세 대를 설치하는 데에만 600만 원이 들었다. 정수기를 3년 약정으로 임대하고, 인터넷도 약정을 걸어서 설치했다. 월세와 관리비만 매달 100만 원이 나간다. 그러나 올해 사업을 못 하게 되면서 이 모든 걸 빚으로 떠안게 됐다.
유 지회장은 “지인들에게 돈 빌려서 사무실을 마련했다. 사업 운영할 때는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나중에 천천히 나눠서 주세요’라고 했겠지만, 제 입장에선 결국 다 빚이다. 면담에서 시설 투자비 이야기하니 공무원분이 ‘사업 계속될 줄 알고서 시설 투자 한 거냐’라고 했는데 10개월 후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누가 했겠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1년에 경기도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시작한 이후 기존 사업수행기관이 탈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한 과거 선례를 통해 유 지회장 또한 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여기에는 2021년 25명을 시작으로 2022년엔 200명, 2023년엔 500명으로 인원을 확대해 온 경기도의 흐름이 있다. 올해는 700명을 고용할 예정이었으나 의회에서 예산이 일부 삭감되어 665명이 일하게 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까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1천 명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시설 투자비도 문제지만 가장 버거운 것은 장애인노동자 20명과 전담인력 2명에게 직접 해고를 통지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동자에게 그는 지난 1월 22일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저희 2월 1일 9시까지 일터로 가면 되나요?” 그 문자에 유 지회장은 “공지 올리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발표도 너무 늦게 났다. 구청 장애인복지일자리는 연말이면 다 발표가 나서 이제 이분들은 갈 곳도 없다. 복지일자리 하다가 그만두시는 분들 티오(빈자리)가 나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이 시기엔 정말 갈 데가 없다”며 막막함을 전했다.
유 지회장에게도 두 명의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가 있다. 두 자녀는 현재 장애인표준사업장에서 일한다. 그전까지는 그의 자녀들 또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유 지회장은 “발달장애인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게 어떤 건지 안다. 중증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왜 이렇게 마음대로 해고하나”라고 말했다.
- 김동연 도지사 면담 요구하며 단식‧점거 농성 중
1월 31일, 경기도는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사업수행기관 선정 기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 김성겸 경기도 장애인자립지원과 주무관은 “제가 평가하는 게 아니다. 평가위원들이 평가한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도 모른다. 점수만 안다”고 했다.
기존 사업수행기관을 탈락시킨 것이 ‘기회균등’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제한된 예산 범위 내에서 이왕이면 많은 분이 혜택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평소 제 소신”이라고 말했다.
전권협 경기지부는 31일 저녁에도 한 차례 경기도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단식 농성 4일 차(2월 1일 기준)에 접어든 박경석 전권협 회장은 “경기도는 ‘김동연 도지사에게 면담 추진에 대해 보고하겠다’고 한다”면서 “향후 면담이 성사될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면담이 성사된다면 탈락자 구제를 위한 추경 편성 여부에 대한 입장까지 김 도지사가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와의 다음 면담 날짜는 잡히지 않았다. 전권협 경기지부는 2월 1일 오후 2시에 경기도청 북문 안쪽 지하 1층에서 해고 철회 촉구를 위한 집중결의대회를 연다. 이들은 김 도지사와의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경기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노동권 쟁취를 위한 단식 결의자》 (1월 31일 기준, 3일 차)
김미범 경기부모연대 회장, 박경석 전권협 회장, 이창균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