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5일 발표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지구 지정 고시’ 이뤄져야 공공개발 확정인데… 4년째 감감무소식
4년간 쪽방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주민들만 111명
“지금 당장 지구 지정 고시하고 약속 이행하라”

2021년 5월, 동자동쪽방촌 주민자치조직 동자동사랑방 문 앞에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 적힌 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2021년 5월, 동자동쪽방촌 주민자치조직 동자동사랑방 문 앞에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 적힌 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2021년 2월 5일,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서울시·용산구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 국토부는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 지구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구 지정’은 개발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할 건지 정해 공표하는 것으로, 이 고시가 이루어져야 공공개발이 실질적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계획 발표 후 4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 사이, 동자동 주민 111명이 쪽방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난 5일, 쪽방 주민들과 빈곤사회연대, 홈리스 행동 등 16개 주거권 운동 단체로 이루어진 2025홈리스주거팀과 윤종오 진보당 국회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조속히 추진하라”고 성토했다.

- ‘지구 지정 고시’ 이뤄져야 공공개발 확정인데… 4년째 감감무소식

국토부·서울시·용산구는 4년 전 “쪽방 주민은 기존 쪽방보다 2~3배 넓고 쾌적한 공간을 현재 임대료의 15% 수준으로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게 된다”며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이제는 편안하고 따뜻한 방에서 살 수 있겠구나 싶어 꿈 같았다”고 말하는 등 정부의 결정에 환영의 입장을 표했지만, 일부 토지주와 건물주들은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유재산을 탈취한다”는 주장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됐던 당시, 국민의힘 등 보수 정치세력들이 공공주택사업을 무산시켜 민간개발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동자동 주민들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공공주택 사업은 그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에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기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주민요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서울시청·한국토지주택공사·대통령실 청사·국회 등에서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주택사업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토론회와 집회들도 이어갔다.

2021년 8월에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사업 관련 사업 설명 안내문’ 중 서울 동자동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추진일정(안). 주택지구 지정이 2021년 말로 예정되어 있으나 4년이 지난 2025년 2월 현재까지도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21년 8월에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사업 관련 사업 설명 안내문’ 중 서울 동자동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추진일정(안). 주택지구 지정이 2021년 말로 예정되어 있으나 4년이 지난 2025년 2월 현재까지도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 말까지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에 대한 지구 지정 고시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토부는 ‘공공주택 지구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개발구역 내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공공개발을 결사반대하며 여러 차례 민간개발 계획안을 국토부에 제출했고, 국토부가 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구 지정 고시는 한없이 미뤄졌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보통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계획이 발표되면, 거의 동시에 ‘지구 지정을 위한 의견청취 공고’가 올라온다.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 2020년 1월 20일에 의견청취 공고가 올라왔고 그해 7월 17일에 지구지정 고시가 이뤄졌다. 대전 쪽방촌은 2020년 4월 22일에 의견청취 공고가, 그해 12월 7일에 지구지정 고시가 됐다.

이처럼 다른 쪽방촌 공공개발은 추진계획이 발표된 지 6~7개월 만에 지구 지정이 확정됐지만 동자동 쪽방촌은 4년이 지나도록 지구 지정조차 확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쪽방 주민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공공주택사업 추진”

지난 5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쪽방 주민인 김호태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는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임대주택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내년이면 들어가 살아야 할 집이 지금 이렇다 저렇다 결정도 안 되고 진행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김 전 대표는 “국토부는 건물주들과 합의가 안 돼서 그렇다는데 정부에서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공공주택사업 추진이) 왜 안 되는가. 요즘은 국토부에서 아예 찾아오지도 않는다. 우선 지구 지정부터 해 놔야 한다. 그것부터 해 놓으면 건물주들도 민간개발과 같은 주장을 할 수 없다”며 “주민들이 바라는 최고의 복지는 공공주택사업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쪽방 주민들을 들러리 세워 이용만 하려고 하지 말고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 지정을 하루빨리 해 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일, 2025홈리스주거팀과 윤종오 진보당 국회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국회 생중계 캡처
5일, 2025홈리스주거팀과 윤종오 진보당 국회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국회 생중계 캡처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예정지는 1978년에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그 후, 서울시가 토지·건물 소유주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사이 동자동 쪽방은 더욱더 열악해지고 주민들의 삶 자체는 재난이 되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정부가 나서서 한 것이 공공주택사업이다. 그 후 4년이 지났다. 4년의 기다림이다.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은 1462일 동안 유예됐다. 공공주택사업의 지연은 주민들에게 퇴거와 죽음의 고통임을 정부와 서울시는 무겁게 인식하고 지금 당장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과 주거권 운동 단체들은 공공주택지구를 즉시 지정할 것을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모아진 서명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전달할 계획이다.

▶ 서명 링크: https://forms.gle/pR9HQpMCTQ2Kwp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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