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근로지원인 동시 지원 5명으로 확대
고용노동부·공단 “강제 아닌 선택” 주장
그러나 현실은 원치 않아도 동시 지원으로 내몰려
장애계 “예산 부족의 책임 당사자에게 떠넘기는 것”
장애인 노동자·근로지원인들 “1:1 지원 제도화하라”

오는 7월부터 근로지원인이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장애인 노동자가 1인당 5명까지 확대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등 장애계는 21일 오후 2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아래 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시 지원은 중증장애인을 숫자로 쪼개는 폭력”이라며 “근로지원인 1:1 개별 지원 복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권협 등 장애계가 21일 오후 2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00여 명의 참여자들이 건물 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중증장애인을 5등분하지 말라. 나는 1/5이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있다. 사진 김소영
전권협 등 장애계가 21일 오후 2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00여 명의 참여자들이 건물 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중증장애인을 5등분하지 말라. 나는 1/5이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있다. 사진 김소영

- 2명 → 3명 → 5명으로 동시 지원 확대 강행해 온 고용노동부·공단… “부족한 예산 때문”

근로지원인 제도는 업무에 필요한 핵심 업무 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장애로 부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직업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근로지원인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200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1년에 법적으로 제도화됐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동시 지원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관련 고시인 ‘사업주 및 장애인 등에 대한 융자·지원규정’을 개정하여 2019년부터는 근로지원인 1명이 동시에 2명을, 2021년부터는 3명을 지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동시에 2명 또는 3명을 지원하는 것은 이미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공단 고용개발원이 2024년 12월에 발행한 ‘근로지원인 및 유사 인적지원제도 근로조건 실태 연구’에서도 “획일적이면서 일괄적인 (동시 지원) 증대는 장애인 근로자와 근로지원인 양측 모두에게 업무 적응과 원활한 업무수행을 지원하지 못하며, 업무상 재해나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최대 5명까지 동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와 공단의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시 일부개정안 행정예고에서 “근로지원인 지원 사업의 효율성 도모 및 동료 간 유대·소통 능력 향상 등을 위해” 동시 지원할 수 있는 기준을 5명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근로지원인 업무를 담당하는 이윤지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 주무관은 20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근로지원인 동시 지원은 장애인 근로자의 동의를 구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의 이야기는 달랐다. 조은소리 전권협 사무국장은 “장애인 노동자들은 1:1 지원을 원하며 근로지원인을 신청하지만, 공단에서 ‘(1:1은 당장 지원이 어렵고) 1:2나 1:3으로 하면 근로지원인이 바로 파견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근로지원인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동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지원인 예산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근로지원인 제도 예산은 소폭 증액에 그쳤다. 이는 최저임금 상승분이나 수요 증가조차 반영하지 않은 실질적 예산 삭감”이라며 “근로지원인 동시 지원 확대는 예산 부족의 책임을 중증장애인 당사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여자가 한 손으로는 “중증장애인 1:5 정책 노동권 침해다!”라고 적힌 종이 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 참여자가 한 손으로는 “중증장애인 1:5 정책 노동권 침해다!”라고 적힌 종이 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장애인 노동자 “지원을 나누면 노동의 기회도, 삶의 자립도 나눠져”

기자회견에는 100여 명의 장애인과 근로지원인 등이 모여 근로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제공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인 김기백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는 “근로지원인은 발달장애인이 근무할 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문서 작업 시 오타를 확인하거나 동료 상담을 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옆에서 질문을 해주는 등의 지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김 활동가는 “2년 전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근로지원인을 이용했다. 그때 동료가 퇴근하거나 나에게 먼저 급한 일이 있을 때만 근로지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혼자서 문서를 작성하면서 큰 어려움을 느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멘붕’(멘탈 붕괴, 충격적인 상황을 겪었을 때 큰 혼란을 느끼는 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1:2, 1:3 지원도 어려운데 1:5는 많은 발달장애인 동료들이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1:1 지원을 촉구했다.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노동하고 있는 김영복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노동하고 있는 김영복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노동하고 있는 김영복 씨는 “근로지원인의 도움은 특혜가 아니라 내 노동의 권리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정부는 이제 그 최소한마저 쪼개겠다고 한다. 한 명의 근로지원인으로 다섯 명의 중증장애인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1인분의 노동’을 다섯으로 나누라는 말과 같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지원을 나누면 노동의 기회도, 삶의 자립도 나눠지고 깎인다”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존엄한 노동을 할 자격까지 쪼개지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우리는 ‘한 사람 몫의 노동’을 당당하게 하고 싶다. 중증장애인을 5등분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근로지원인 “1:5 지원 말도 안 돼… 개별 지원 필수적”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의 근로지원인인 신유정 씨는 “근로지원인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봤을 때 1:5 지원은 말이 안 된다. 모든 몸들은 다르다. 모두가 다 다른 장애 양상을 가지고 있다. 같은 발달장애인이니 5명을 묶어서 한꺼번에 지원하라는 것은 장애인 노동자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고 있지 않는 처사”라고 피력했다.

신 씨는 “‘행정상 이동 지원이 필요하다’고 서류에 제출해도 어떤 분은 울퉁불퉁한 길을 걷기 어려워하고, 어떤 분은 방향을 찾기 어려워하고, 어떤 분은 글을 읽지 못해 길을 찾기 어려워해 지원을 요청한다. 장애인이 일을 하기 위해선 ‘이동 지원’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하기 어려운 다양하고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1:다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장애인과 근로지원인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선희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박선희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이날 기자회견에는 경기·경남·부산·충북 등 전국 각지에서 서울까지 온 이들이 함께했다. 경남에서 온 박선희 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전년도 12월에 기존 노동자들이 근로지원인을 우선 신청하기 때문에 1월에는 이미 예산이 소진된다. 결국 신규 이용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근로지원인 신청이 어려워 항상 대기 상태에 놓이게 된다. 특히, 경남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이 4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해당 노동자들은 근로지원인서비스를 이용하기가 더더욱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 소장은 “이러한 것은 명백히 예산 부족을 핑계로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단순히 숫자로만 판단하는 탁상행정이고 중증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무시하는 폭력적인 처사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금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데 7월부터 근로지원인 1:5 매칭을 추진한다는 공단의 발표였다”며 “공단은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이제라도 1:1 지원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노동권과 자립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우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너희만 일해? 우리도 일해!” 등이 적힌 피켓을 각자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우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너희만 일해? 우리도 일해!” 등이 알록달록 적힌 피켓을 각자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 이후에는 장애계와 류정진 공단 고용촉진이사, 최호성 일자리안정국 국장, 안병태 근로지원부 부장과의 면담이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전권협은 “면담 자리에서 근로지원인 1:1 지원 제도화를 요구했다. 특히, 내년도 예산을 편성할 때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에게 근로지원인을 1:1로 매칭할 수 있도록 예산을 미리 확보하라고 촉구했다”며 “이에 대해 6월 말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을 경우,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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