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발의된 지 4개월
복지부·서울시, 국회에 ‘반대 의견’ 제출
반대 논리 살펴봤더니
유엔협약·권리중심공공일자리 ‘몰이해’
시민사회 “특별법 연내 제정, 강력 지지”

커다란 현수막에 “차별생산노동 철폐, 권리생산노동 쟁취,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라고 적혀 있다. 현수막 앞에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대표가 있다. 사진 하민지
커다란 현수막에 “차별생산노동 철폐, 권리생산노동 쟁취,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라고 적혀 있다. 현수막 앞에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대표가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 노동자들이 ‘제4회 장애인 노동절’을 맞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을 연내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권리생산노동 쟁취”라고 적힌 화면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권리생산노동 쟁취”라고 적힌 화면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특별법, 무슨 내용일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 23일,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간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지자체 별로 상이하게 도입됐다.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가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있었다.

그 결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축소되거나 없어지기도 했다. 서울시가 대표적 사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해당 일자리를 없애면서 400명의 최중증장애인 노동자가 해고됐다. 경기도는 매해 노동자 수를 줄이고 있다. 2022년엔 707명이었지만 지난해엔 197명으로 대폭 감소됐다.

이 점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이 일자리를 지자체 재량에 맡기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 해야 최중증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특별법안에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지자체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한 복지부는 공공기관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원사업 실적을 경영실적 평가 등에 반영하라고 명시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휠체어에 걸고 행진하는 사람. 사진 하민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휠체어에 걸고 행진하는 사람. 사진 하민지

- 복지부 “기존 일자리 운영 저해”? 현실은 정반대

해당 법안에 대해 복지부와 서울시는 난색을 표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발표한 해당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복지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기존 (복지일자리 등) 사업의 탄력적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며 이미 유사한 직무를 포함해 시행하고 있어 법률 제정의 실익이 적다”는 의견을 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제도화되면 장애인에게 “실익”이 없을까? 복지부 설명과 달리 해당 일자리에 참여한 최중증장애인 만족도는 매우 높다.

2023년 연구에 따르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또한 사회참여 증진 기회를 제공받고 개인적 성취감을 느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2023, 최형민, ‘서울시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 장애인의 삶의 질 변화에 관한 연구’)

“기존 사업의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기우에 불과하다. 최중증장애인은 복지부가 시행하는 기존 장애인 일자리에 진입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기존 일자리가 경증장애인 위주로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제도화해도 경증장애인 위주로 고용하는 기존 일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은 처참한 수준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증장애인 경제활동인구는 72만 명, 취업자 수는 68만 명이다. 중증장애인은 이 수치의 절반도 안 된다. 중증장애인 경제활동인구는 19만 명, 취업자 수는 18만 명에 그친다.

상황이 이런데, 서울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혐오하는 주장을 반복하는 중이다. 서울시는 해당 법안에 대해 “직무 대부분이 집회·시위·캠페인에 편중돼 있다”며 “인식증진, 가치 표현 등 활동은 개념 및 목적상 일자리와 다르며 해당 법령의 제정 실익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해당 주장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가치 생산’ 일자리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이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협약 8조에는 “장애인 권리에 대한 효과적인 대중인식 캠페인을 추진하고 지속”할 의무가 명시돼 있다.

따라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주로 캠페인을 시행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를 대신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탈시설장애인 김진석 씨가 장애인노동권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탈시설장애인 김진석 씨가 장애인노동권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시민사회, 특별법 강력 지지… 420공투단 해단하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중 투쟁 마무리

명동성당 앞에 모인 활동가들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특별법을 적극 지지하며 연내 제정을 촉구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노동할 권리는 단지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에겐 좋은 노동을 할 권리가 필요하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승강장에서 장애인을 끌어내는 일을 하는 건 좋은 노동일까?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좋은 노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슬로건이 ‘이것도 노동이다’인데 나는 ‘이것이 노동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바로 좋은 노동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좋은 노동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처럼 생산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노동이다. 혁명적으로 노동의 개념을 바꿔나가면서 진짜 노동이 뭔지 얘기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문정현 신부가 영상을 통해 연대발언했다. 천주교에 맞선 투쟁이 가열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문 신부의 지지발언은 큰 울림이 있었다.

문 신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우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을 해고했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장애인과 오랜 세월 함께했다. 앞으로도 장애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할 것이다. 계속해서 투쟁하자”고 독려했다.

한진중공업의 부당해고에 맞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영상으로 연대발언했다. 김 지도는 “오늘(1일)은 노동절이다. 그야말로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이 기쁠 수 있는 날이다. 장애인 동지들은 언제쯤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굽힘 없이, 지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명동성당 인근을 행진한 후 세계 노동절 대회에 참석했다. 이후에는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해단식을 진행했다. 이로써 올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이 마무리됐다.

한편 장애계는 2022년부터 매해 5월 1일을 ‘장애인 노동절’로 기념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최옥란 열사 기일인 3월 26일 전국장애인대회부터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과 5월 1일 장애인 노동절까지 집중 투쟁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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