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미디어권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 개최
"재해방송 등 당연한 내용만 의무… 명백한 차별"

장애인 미디어권 보장을 위해서 현재 보도·행사 프로그램에 치중된 장애인방송서비스를 사람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오락 프로그램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2일 늦은 2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미나 1실에서 열린 ‘장애인 미디어권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영묵 교수는 현행 장애인방송서비스 관련법들이 “재난방송 프로그램처럼 너무나 당연한 내용만 규정하고 있다”라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등 장애인방송서비스 관련법들은 △재난방송프로그램 △보도에 관한 방송프로그램 △선거에 관한 방송프로그램 △국경일과 기념일의 의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의 중계방송 등에 대해서만 수화·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밖에 방송통신위원회 규칙으로 정부정책발표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별도로 요청한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사업자가 장애인방송서비스를 하게 돼 있다”라면서 “하지만 정부정책발표가 방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별도로 사업자에게 장애인방송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실효성 없는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장애인에게 보도·행사 프로그램에만 장애인방송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작 사람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오락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면서 “방송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취향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의 향유와 오락이기에 장애인방송서비스 장르도 대중성 있는 장르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류 언론들은 장애인 관련 보도를 외면했으며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정보 제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면서 “이에 1980년대 말부터 생존권 차원에서 장애인이 정보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러 장애인전문지가 생겨났다”라고 설명했다.
백 대표는 “하지만 지금도 큰 미디어 권력을 가진 포털사이트에서 장애인을 위한 정보 제공이나 시스템이 없다는 점에서 주류 미디어가 장애인 문제를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공공성 확보 책무가 있는 포털사이트들은 장애인 정보가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장애인과 장애인단체들이 포털사이트에 장애인 정보에 대한 몫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장애인방송 제작 및 편성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의 제정절차를 마치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라면서 “하지만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으로 활용 가능한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수화통역방송 5%대, 화면해설방송 10%대의 목표는 수정되어야 하며, 서비스 확대를 전제로 정책이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또한 고시에서는 이동멀티미디어방송을 하는 지상파방송사업자는 서비스 의무제공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이들 사업자는 방송법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장애인의 시청제공사업자로 명시된 상태”라면서 “따라서 이 사업자에게 장애인방송서비스 의무를 면제한다면 관련 법률 조항이 사문화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이동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에게 면제 혜택을 주는 이유는 현재의 기술규격으로 자막방송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 방송표준을 검토해 방식을 변경하고 표준을 새롭게 개발하면 될 일”이라면서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므로 현재 상황만을 가지고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미디어운동네트워크 박규민 활동가는 “지난 5년간 미디어 제작 활동을 해온 시각·청각·지체·지적 장애인을 만나면서 이제는 장애인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탈시설, 이동권, 교육권, 결혼생활, 성문제 등 다양한 일상생활을 담은 작품이 많아졌다”라고 전했다.
박 활동가는 “이에 각종 영화제를 개최해 많은 사람이 오지만 관람객의 대부분이 장애인단체 종사자나 가족, 친지들이라는 점이라는 한계가 있다”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활동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엑스비전 테크놀로지 마케팅사업부 김정호 이사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방송이 전환하면 비장애인에게는 ‘더 똑똑해진 텔레비전’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완전히 깜깜한 텔레비전’이 될 수 있다”라면서 “앞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를 음성과 정보를 출력해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기마다 기본 장착하거나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또한 앞으로 리모컨은 복잡한 버튼 중심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몇 개의 버튼과 터치 화면을 갖춘 리모컨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리모컨은 시각장애인의 텔레비전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물리적 장벽이 될 수 있다”라면서 “따라서 리모컨 제작 시 물리적 키를 충분히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가리키기 동작’과 같은 제어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기능 역시 제공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석자는 “홍수 피해를 당한 태국의 방송에서 수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태국이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라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홍수가 났을 때 방송에서 수화서비스를 하는 것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 참석자는 “우리나라 방송에서 수화통역창은 너무 작고 통역하는 사람들의 수화 실력도 고르지 못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라면서 “기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농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가 지난 11월 4일부터 오는 12월 12일까지 25차례에 걸쳐 개최하는 ‘2012년 미디어정책 연속토론회’의 9번째 토론회로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