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장애인도 함께 행복한 서울 만들겠다”
일자리·주거·이동권·인권 등 5개년 종합계획 발표
그러나 정작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배제
장애계 “‘제2의 약자와의 동행’에 불과한 혐오 정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2530 장애인 일상활력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일자리·주거·이동권·인권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해 장애인의 ‘아주 보통의 하루’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계는 이를 ‘아주 보통의 하루’가 아닌 ‘아주 차별적인 하루’, ‘아주 시설화된 하루’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세훈 시장은 기자설명회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기형적인 일자리”라 폄하하고 탈시설은 ‘해법이 아니’라고 발언했다.
- 중증장애인 배제한 공공일자리 확대, 무슨 의미?
서울시는 장애인 공공일자리를 2025년 기준 5,000개 수준에서 2030년까지 1만 2,000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공공일자리에는 행정지원 업무 등 ‘일반사무보조형’을 비롯해 요양보호사 보조·어르신 안마서비스 등 ‘사회서비스형’, 바리스타·사서 등 ‘취업연계형’ 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발달·뇌병변 등 중증 특화 ‘장애인 전문 직업학교’와 목공·바리스타·제빵 등 ‘장애인 특화과정’을 신설한다며 ‘현장 수요형 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을 지원한다고도 했다.
장애계는 서울시가 2020년부터 시행했다가 지난해 일방적으로 폐지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성, 능력주의에 기반한 경쟁 노동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제도다. (관련 기사: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와 민주주의의 재생 / 최태현)
오세훈 시장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폐지하면서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아래 특화일자리)을 도입했다. 그러나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했던 최중증장애인 대부분이 특화일자리로 흡수되지 못했다. 특화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이 수행하기엔 불가능한 일자리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특화일자리 예시로 발달장애인의 경우엔 원예관리사, 택배원, 세탁물 정리원, 세차원 등을, 뇌병변장애인의 경우엔 품질 검사원, 콘텐츠 모니터링, 온라인 홍보마케터 등을 제시했다.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사무국장은 “특화일자리는 오 시장의 의도와 달리 민간 일자리로의 연계 ‘실적’이 저조하다. 이는 곧 해당 일자리가 중증장애인에게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특화일자리뿐 아니라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일자리 전반이 중증장애인에게 맞지 않다는 사실이 현재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서울시는 단순히 ‘장애인 일자리’ 확대만 강조할 뿐,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권리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촘촘한 돌봄 정책’ 아닌 ‘촘촘한 시설 정책’”
서울시는 ‘편안한 주거·촘촘한 돌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생활가정과 자립체험주택을 확대하고, 모든 시설을 ‘복도형’에서 ‘가정형’ 주거공간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기자설명회에서 “일부 장애인단체에서 탈시설이 마치 굉장한 해법인 것처럼 과도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며 ‘시설과 지역사회와의 자연스러운 공존’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발바닥행동은 지난 18일 성명을 발표해 “‘촘촘한 돌봄’이 아닌 지역사회 자립생활 시대에 역행하는 ‘촘촘한 시설 정책’”이라며 “2026년에만 시설 개·보수 예산으로 약 63억 원을 투입해 시설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것은 주거 확대 정책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시설을 늘리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이날 “심각한 인권 침해 시설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함께 시설 폐쇄, 보조금 제한 등 강력 조치를 실시하고, CCTV(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 인권 침해 신고 활성화, 지도 점검 강화로 장애인 인권이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발바닥행동은 “오 시장이 내놓은 CCTV 설치나 보조금 제한 같은 사후적 조치는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탈시설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구체적’인 원스트라이크 아웃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는 ‘제2기 발달장애인 지원 기본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지원주택과 돌봄지원서비스를 623호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서울시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지원주택은 336호에 그치며, 목표 또한 2030년까지 500호로 늦춰진 상태다.
- 저상버스 100%? 이미 의무화된, 당연한 정책
서울시는 마을버스는 2030년까지, 시내버스는 2032년까지 100% 저상버스를 도입할 것이라 밝혔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위원장은 “이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이미 의무화된 사항으로, 서울시는 이런 약속을 수차례 해왔다”며 “실제 의지가 있다면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저상버스 예외노선(시설, 환경 등의 이유로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노선) 문제 해결 방안과 구체적인 예산 편성 계획 등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논의 없이 약속만 남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서울시는 ‘이동 자유를 확장하겠다’며 AI와 로봇 기술을 활용해 계단 이용 등을 돕는 ‘클라이밍 휠체어’와 수동휠체어에 부착하는 ‘동력보조장치’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클라이밍 휠체어 등 보조기기 자체가 가진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유니버설 엘리베이터 설치나 2층까지 연결되는 경사로 도입과 같이 환경을 개선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장애계 “‘제2의 약자와의 동행’에 불과한 혐오 정치”
서울시는 이번 종합계획의 특징으로 “준비 단계부터 서울시 장애인복지위원회를 비롯해 장애인 당사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실효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설명회와 보도자료, 서울정보소통광장 홈페이지에 공개된 장애인복지위원회 회의 자료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회의 결과 대부분이 ‘내부 검토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되어 실제로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강윤경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팀장은 23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장애인복지위원회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인단체와 협회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계획을 수립했다”며 “시설 관계자들이 건의사항이나 애로사항을 많이 이야기해 주는데, 그런 부분을 즉각 반영하는 건 한계가 있지만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시설 관계자가 아닌 시설 거주 장애인이나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직접 들었는지 묻자, 강 팀장은 “이번 발표를 위해 별도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지는 않았다. 다만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민푸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아주 보통의 하루’를 만든다면서 정작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닌 시설 관계자와 비장애인의 의견을 들었다”며 “핵심은 ‘누구를 기준으로 보통의 하루를 만들 것이냐’인데, 오 시장은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보통’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민 국장은 오 시장이 ‘기형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장애 혐오적 표현을 공적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이 장애인을 위한 보통의 하루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며 “이번 정책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제2의 약자와의 동행’에 불과하다. 그럴듯한 말로 약자의 권리를 빼앗아 온 것처럼, 2030년까지도 이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특히 탈시설과 이동권 보장을 ‘일부 장애인 단체’의 주장으로 치부해 혐오 정치를 다시 조장했다”고 규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