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통합지원법, 다음 해 3월 시행
서울시, 법 이행 준비해 놓고 ‘공공돌봄정책’ 주장
기존 서비스 이름만 바꿔놓고 재탕
돌봄책임 민간에 떠넘기고 경쟁 부추기기
종사자 처우개선 한다면서 ‘명절수당 5만 원’
서울시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아래 서사원)을 폐지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후 서울시의 공공돌봄정책은 어떻게 됐을까. 서울시는 다음 해 시행을 앞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돌봄통합지원법)을 이행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서비스를 이름만 바꾸거나 살짝 개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민간기관의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서사원이 제공하던 공공돌봄서비스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달 24일 열린 ‘서울시 공공돌봄 시민공청회’에서 공개됐다. 이 공청회는 ‘시민참여 기본 조례’ 9조에 따라 5천 명 넘는 서울시민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공청회를 열라고 청구하면서 성사된 자리였다.
다음 해 시행 앞둔 돌봄통합지원법 준비해 놓고 ‘공공돌봄’ 생색
정경란 서울시 돌봄복지과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서울시 공공돌봄 현황과 계획을 발표했다. 정 과장에 따르면 서울시 공공돌봄 추진방향은 △신청 한 번(One Stop)으로 해결하는 통합 돌봄서비스 △맞춤형 의료 및 돌봄서비스 등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한 첫 번째 계획으로 자치구마다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전담조직 구성은 법에 명시된 사항”이라고 전했다. 돌봄통합지원법 20조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별 통합지원협의체 구성’을 이행하겠단 뜻이다. 즉, 서울시는 정부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놓고 ‘자체 공공돌봄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또한 이에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인건비 지원을 행정안전부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송해란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에 따르면 복지부는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위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25개 자치구에 국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때 자치구는 필수적으로 예산을 들여야만 한다. 국비지원은 지방비 매칭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토론자로 나선 윤자영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자치구별 전담조직은 인력의 고용형태, 지속성, 전문성 확보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해 각 보건소에도 전담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윤 교수는 “보건소 전담인력 계획은 단순한 행정연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기존의 동행센터에서 근무하는 복지플래너와 돌봄매니저를 ‘통합돌봄관리사’로 개편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서울시는 2023년,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을 ‘동행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체계를 이미 개편한 바 있다. 윤 교수는 “이는 기존 행정조직 내 인력 재배치”라며 “복지플래너와 돌봄매니저는 기존 업무 외에 상담, 현장방문, 서비스 의뢰를 추가로 수행하게 돼 있는데 역할중첩과 업무과중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두 번째 계획은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따라 조례를 제·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자치구마다 조례를 제정해 통합지원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돌봄통합지원법 20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자체 내에 통합지원협의체를 둬야 한다. 그런데 이는 첫 번째 계획으로 발표한 ‘자치구별 전담조직’과 동일하다.
정 과장은 세 번째로 ‘통합돌봄 지원 시범사업’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 4월, 성동구·광진구 등 7개 자치구는 해당 시범사업에 참여해 구당 7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통합돌봄지원센터를 설치했다. 구별로 스마트 헬스케어, 다학제 의료, 퇴원환자 연계 등 특화사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서비스를 받은 사람 수는 9월 말 기준 539명이다.
김홍찬 서울시 복지정책과장은 자치구별 통합돌봄지원센터 시범사업이 “돌봄통합지원법 전면 시행에 앞서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시도하는 노력”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구 단위 통합돌봄 자체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같은 서울시에서 다른 말을 한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중앙정부 지원이 없고 시 지원도 없을 경우 각 자치구 재정만으로는 통합돌봄 사업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업이 재정난에 부딪혀 시범사업에서 그칠 우려가 커 보인다.
마지막 계획은 ‘매뉴얼 제작 및 교육’이다. 서울시는 자치구별 전담인력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업무매뉴얼을 제작하고 기존 복지플래너와 돌봄매니저에서 개편된 ‘통합돌봄관리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돌봄정책이라기보단 행정절차의 일부에 가깝다. 서울시 공공돌봄이 아직 현장지원의 구체적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행정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갖 기구 출범, 출범, 출범… 민간기관 경쟁 부추기기까지, 이게 공공돌봄?
정 과장에 이어 김 과장이 발표했는데 주제가 또 ‘서울시 공공돌봄서비스 추진 현황’이었다. 김 과장 발표를 통해 서울시는 서사원 폐지 후 문어발식으로 여러 기구를 출범해 민간기관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김 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서사원 폐지 다음 달인 지난해 6월, ‘서울시 공공돌봄강화위원회’를 출범했다. 해당 위원회는 3개월의 논의 끝에 같은 해 9월, ‘서울시 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전략으로 △돌봄 전담 지원기구 설치 △쉽고 편리한 돌봄서비스 전달체계 구축 △돌봄 사각지대 해소 △돌봄종사자 행복일터 조성 등 네 가지를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돌봄 전담 지원기구’인 ‘사회서비스지원센터’를 출범했다. 해당 센터는 장기요양, 활동지원서비스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관을 관리하는 곳이다. 김 과장은 “지난 9월 기준 민간 사회복지시설 157개소에 대한 현장평가를 추진하고 이용자 2,20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추진 중”이라 밝혔다. 또한 “컨설팅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며 서비스기관 역량교육과 매뉴얼 개발 등을 통해 민간 돌봄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토론자인 좌혜경 인하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은 “민간기관 관리가 필요한 일이기는 하나 사회서비스원이 제공하던 공공돌봄이라는 본질적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 지부장 또한 “공공은 감독자로만 남고 돌봄의 실질적 운영은 여전히 민간에 의존하는 형태”라고 비판했다.
두 번째로 서울시는 ‘쉽고 편리한 돌봄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을 위해 지난해 11월, ‘안심돌봄120’을 출범했다. 김 과장은 “서울 어디서나 120+3을 누르면 돌봄 종합상담부터 서비스 기관 연계까지 원스톱으로 편리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기준, 안심돌봄 120을 통해 총 1만 515건의 돌봄상담이 이뤄졌고 상담결과에 따라 총 890건에 대해 서비스 기관 연계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오 지부장은 “다산콜센터 노동자의 경험담을 종합해 보면 안심돌봄120 출범 이전에도 사회서비스 기관을 안내하는 상담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었기에 안심돌봄120 출범 이후에도 다산콜에서 서비스 기관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서비스 기관 연계 조치된 건이 890건밖에 안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세 번째로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 ‘좋은돌봄인증제도’를 출범했다. 민간 장기요양기관이 기피하는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요양기관에 서울시가 ‘좋은돌봄기관’이라 인증하고 운영보조금, 복지포인트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또한 와상·사지마비 등 최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사를 매칭하는 기관에 ‘중증장애인 전문활동지원기관’ 인증을 시행한다.
오 지부장은 “민간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율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돌봄 서비스의 품질을 시장에 맡기는 것으로 공공책임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표준화된 돌봄기준을 확립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공공이 돌봄의 주체에서 중개자로 후퇴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좌 연구원 또한 “민간기관은 국가재정에 의존하면서도 이윤추구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윤이 남지 않는 기피대상자나 지역은 서비스 사각지대가 되고 공급이 집중되는 곳에선 서비스 중복과 기관 간 갈등을 불러올 것”이라며 “과다한 경쟁으로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는 종사자 처우 개선을 위해 고난도 이용자에 대한 추가 돌봄수당으로 요양보호사의 경우 시간당 5천 원, 활동지원사는 월 3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또한 명절 특별수당으로 하루 5만 원을 지급하고 ‘좋은돌봄인증 방문요양기관’과 ‘중증장애인 전문 활동지원기관’에 배설케어 로봇 등 스마트 기기를 지원한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서비스분야는 비정규직이나 계약제 방식의 취약한 고용관계에 노출된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유지돼 왔다. 사회서비스원은 이들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경험과 전문성이 뛰어난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자리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며 사회서비스원 재설립을 요구했다.
좌 연구원은 “굳이 서사원을 해산하고 별도의 공공돌봄강화위원회를 출범해 공공성 강화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 자체가 명분 없고 비효율적이며 조삼모사식 방식이라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