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문화운동으로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의미와 역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문화/예술

 

장애가 있는 몸은 어떤 방식으로든 늘 보여 지는 위치에 놓이곤 한다. 일상적으로 외출할 때면 사람들은 여전히 드러내놓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방송의 카메라는 장애인의 몸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이것이 장애인의 관점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이제 우리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이야기의 주인으로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 중에서도 영화는 영상의 힘과 사회적 파급력을 믿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할까. 치료, 테라피(물리요법), 사회통합, 교육, 극복… + 장애인 문화/예술. 마치 우산 개념처럼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안에는 위와 같은 용어들이 놓여 있다. 모든 예술은 일정부분 치유의 효과를 보기도 하고 사회통합의 기능과 공익성을 띄기도 한다.

 

하지만 왜 유독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해서는 그러한 기능을 강조하는 것인가. 왜 장애인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통합’이어야 하는가. 아마도 장애인을 치료와 재활의 대상으로 전제하기 때문은 아닌가. 이러한 접근 방식 자체가 장애인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오히려 차단하며 예술영역에서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품들.

 

영화제의 시도와 도전

 

영화관이란 공간에서 장애인의 일상과 삶, 이슈가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스크린 안팎에서 ‘영상’이란 매체로 진행되는 영화제의 ‘운동’은 올해로 10년째다. 지난 10년간 영화제는 영상을 통해 진보 장애인 운동을 알려나가며, 많은 작품과 장애인 감독을 발굴해 왔다. 또한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미디어교육을 통해 장애인 미디어 접근권을 높이고 자신의 언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영상을 친밀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장애유형의 참여자들이 현장의 문제의식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도전했고, 이 과정을 통해 기술에 대한 문턱은 낮아지게 되었다.

 

장애인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방식을 찾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화의 창작과정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 아니라, 사회가 제한하는 정상적인 몸의 가치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기도 하다. 결국 문화/예술 영역의 주변인으로만 머물던 장애인이 영화 제작/생산의 주체가 되려고 하는 과정은 정상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변화를 위한 운동인 것이다.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며, 자신의 언어를 구성하고,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이것이 문화/예술운동이 가지는 ‘과정’의 가치이다.

 

하지만 깊어지는 주제의식만큼 다양한 표현양식, 영화적 완성도 등이 앞으로 장애인 인권영화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담보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의미’만 있는 영화를 대중에게 보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결국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장애인 인권영화가 주제의식과 운동을 드러낼 독창적 형식과 기술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장애인문화운동 전체에도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줄 것이다.

 

장애인문화운동과 장애인인권영화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개인의 가치는 장애인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언론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대단해요’라는 말의 바탕에는 ‘장애=무능’이란 편견이 깔려 있다. 그래서 장애인 문화/예술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이만큼 했다’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작업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 어떠한 독특한 표현 양식과 주제의식을 담아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 장애로 말미암아 경험하는 일상이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쳐서 표현되는지, 그리고 세상과 어떻게 소통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장애인이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 장애인, 장애인 예술,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 작품이 담아내고 있는 주제의식 등 이 모든 것들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다룰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관점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작품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문화 및 예술생산의 주체로서 장애인의 몸과 주제의식은 과연 어떤 한계와 가능성이 있을지, 장애가 있는 예술가들이 먼저 고민과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 문화운동이 '비장애인처럼'의 인정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미학적, 구조적, 방식적, 신체적 특징이 있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래야 장애인 문화/예술이 '비장애인처럼'의 흉내가 아닌 독자적인 장르로써 인정받게 될 것이다.

 

장애인문화운동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창작할 때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장애인’, ‘장애인의 현실’이라는 소재주의를 넘어 어떻게 더 일상적으로 또는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기술과 형식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것은 현란한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표현 양식을 개발하고 인정받는 것인데, 이를테면 자막과 화면해설, 수화, 문자통역, 점자자료집 등 장애인 영상 접근권 확보를 위한 방식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들이 의사소통 수단으로의 역할을 넘어서 영상작업과 상영과정 안에서 권리로써 필수적인 요소로 인정될뿐만 아니라, 장애인 영화가 가지는 장르적 특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더불어서 만들어진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들어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영화/영화’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며, 풍성한 비평 속에서 장애인 영화라는 장르의 의미가 새롭게 구축될 것이다.

 

더불어 영화제가 장애인 인권영화 혹은 장애인문화운동의 의미를 담론화하려는 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담론 생산과 확산을 위한 방법으로 ‘장애인 영화/인권영화’에 관한 논평과 리뷰 등에 대한 공모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이는 관람객들에겐 적극적으로 영화를 관람하고, 읽게 하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며, 장애인문화운동과 장애인 인권영화의 지평을 넓혀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장애인운동의 흐름에 비추어 매년 지원하는 응모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자리도 필요할 것이다.

 

영화로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장애인 당사자의 일상과 삶, 그리고 투쟁과 실천의 현장들 속에 영화제는 놓여 있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영화를 창작하고, 영화로 장애인의 인권을 말하고, 장애인 인권의 관점으로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장애인 인권영화를 관람하고,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유통된다. 이 과정에서 창작하는 당사자와 영상 활동가, 영화제 기획단, 관람객들은 영상을 매개로 소통하며 세상의 변화를 고민하게 된다. 이런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는 영화제는 치열한 운동의 현장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운동의 힘이고, 영화제가 가지는 운동적인 의미일 것이다.

 

* 이 글은 지난 3월 28일 열린 ‘1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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