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음악이 흐르는 가을밤 공연 열려
성북센터 문화자조모임, 작품 발표와 합창 이어져
난, 쉬운 여자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건만, 사람들은 나를 참 쉽게 대한다. 어르신들의 반말은 물론이고 비장애인들에게 감히 질문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에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격려까지 한다.
내가 쉬운 여자인가, 아니면 나의 장애가 쉬운 것인가.
- 김종숙, '쉬운 여자'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성북센터)가 주최한 ‘이야기와 음악이 흐르는 가을밤’ 공연이 25일 늦은 5시 서울 삼선동 문화예술카페 별꼴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은 성북센터 문화자조모임인 ‘함께 만드는 이야기 조각보’에서 지난 1년간 창작한 작품을 발표하고 ‘오 솔레미오’ 참여자들이 연습한 노래를 부르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함께 만드는 이야기 조각보’ 회원 김종숙 씨는 ‘쉬운 여자’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했다. 청중들은 ‘쉬운 여자’라는 통속적인 말이 나오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작품에서 말하는 ‘쉬운 여자’가 장애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꼬집는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의미의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얼굴이 예쁘게 생겼네, 언제부터 못 걸어?’
‘생후 7개월부터요. 소아마비예요.’
‘예쁘구만 결혼은 했수? 아이는?’
‘네, 결혼했구요. 딸이 둘이고 대학생이에요.’
어느덧 김 씨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면 시작되는 어르신들의 호구조사에 묻지 않는 내용까지 답하는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김 씨도 ‘세상에 다 가질 수는 없어. 이쁘니 위로를 삼아요’, ‘어휴~ 화장을 곱게 했네, 멀쩡한 나보다 훌륭해, 존경스러워요, 파이팅!’이라고 말하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난감할 뿐이다.
이어 김 씨는‘내가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가 장애인이어서 나를 쉽게 대한다’ 라면서‘짓궂은 노인의 관심을 가장한 성희롱 앞에서는 정색을 하며 대들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련만 아직은~~~ 난, 쉬운 여자다’라며 끝을 맺었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조각보’ 회원 정진희 씨는 ‘영희야 놀자’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정 씨는 이 작품에서 시설에 있었을 때 친하게 지내던 장애인 친구 ‘영희’와 보낸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토로한다. 알고 보니 일반적으로 여성의 이름으로 인식되는 영희는 정 씨와 같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정 씨는 영희와의 결혼을 원하는 걸까?
나는 손에 장애가 심해 컴퓨터로 겨우 글자 치는데 영희와 1:1 대화를 빨리 못한다.
그래도 영희는 기다려준다.
영희도 빨리 못해 나도 기다려준다.
하지만 정 씨는 ‘영희도 나도 좀 상태가 나은 사람을 원하여 결혼을 하고 싶을 거다’라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지만 장애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결혼상대로 적절하지 않게 여길 것이라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고민에는 부모의 바람도 짙게 섞여 있다. 그래서 정 씨와 영희는 장애인이라서 여전히 친구 사이이다.
나의 바램은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똑똑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상태가 좀 나은 사람과 결혼하여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싶다.
그것이 나의 부모님의 바램이고 꼭 이루고 싶다.
이날 ‘함께 만드는 이야기 조각보’ 모임을 함께 꾸려온 이선희 강사는 “모임을 시작할 때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면서 “언어소통이 어려운 정진희 선생님이 웃으면 웃는 이유를 짐작만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글을 통해 왜 정 선생님이 웃는지를 알게 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씨는 “특히 모임을 진행할 때 정진희 선생님의 새 활동보조인이 정 선생님이 쓴 작품을 보고 놀라면서 전보다 더 존중하며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라면서 “글을 통해 정진희 선생님이 하나의 존재로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았던 그날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고명숙, 황윤숙, 이순애, 이호숙 씨 등이 장애가 있는 삶의 애환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고, ‘오 솔레미오’는 ‘마법의 성’과 ‘아름다운 세상’을 합창하며 그동안 쌓은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성북센터는 “‘함께 만드는 이야기 조각보’와 ‘오 솔레미오’ 등 문화 자조모임의 두 가지 활동은 문화적 소통도구로 글과 노래를 활용하고 언어라는 장벽을 글이나 음악적 감성으로 드러냄으로써 소통의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종숙님의 쉬운 여자...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장애가 있을뿐, 불쌍하고 아무것도 할수 없을것 같은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듯... 그들에게도 할수 있는 힘이 있고 열정도 있다. 단지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느릴뿐 할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제발 무시하는 태도는 삼가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