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학교 교과 과정에 수화를 제2외국어로 포함해야

지난 9월 중순, 안철수 예비후보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은 다른 출마자들과 조금 달랐다. 안철수 예비후보의 옆에 수화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기에 신선하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그리고 수화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이로 인하여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안철수 예비후보는 물론 다른 예비후보들의 공식석상에서 그러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대중들에게 수화 사인을 보내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는 미국만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수화통역사를 대동한다. 이들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고위관료들이 수화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통역사를 공식행사장에 대동하는 이유가 있다. 수화가 소외계층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언어와 동등한 언어라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화는 소외계층이 사용하는 소통수단 정도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소외계층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수화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영화 <도가니>이다. <도가니> 사건은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나 장애인 성폭력문제가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묵살된 청각장애인의 소통권도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영화 <도가니>를 보면 듣지 못하는 농학생들이 소리언어(한국말)로 수업을 받고, 체벌이나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청각장애인 학생을 위해 수화로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없다. 생각하기도 싫은 <도가니>에서의 장면은 영화 속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 과정을 보면 청각장애인들은 특수학교 유치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소리언어를 배운다. 소리언어가 수화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수화가 아닌 구화로 교육을 하는 학교도 많다. 당연히 수화를 잘하는 교사들이 많지 않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이상민 의원실)를 보면 전국 15개 농학교 교사 391명 가운데 6%인 24명만이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외 3개의 농학교는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아예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에서 농학생들이 언어선택권에 제약을 받고 있다. 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차별이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2월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는 수화가 언어의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언어로서 수화의 증진과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지원 육성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수화를 통한 접근 및 소통에 대한 권리도 명시하고 있다. 보편적인 언어로서 수화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는 국제문서만이 아니라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개별법도 명시되어 있다.

 

▲ 지난 10월 9일 세종대왕상 앞에서 초헌관으로 분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이 고사를 집전하는 모습.

 

수화언어의 문제와 차별받는 농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계에서는 '수화언어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수화공대위)를 꾸려 올해 초부터 활동 중이다. 수화공대위는 지난 한글날 수화도 언어의 하나로 반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고사의식도 치렀다. 간절함이 있었기에 이러한 퍼포먼스도 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캠프 앞에서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그 외의 대선 예비후보들에게도 요구서를 발송하고 공약 채택 등을 협의하고 있다.

 

수화공대위를 비롯해 많은 농인들이 바라는 것은 수화가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대선 예비후보들이 수화언어 관련 법률 제정은 물론 수화의 인식개선과 확산을 위해 일반학교 교과 과정에 수화를 제2외국어로 포함할 수 있는 공약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수화에 대한 차별적인 법령 개정은 물론 농 교육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항도 정책 개선안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안철수 예비후보가 대선 출마 과정에서 보여준 광경은 신선했지만 확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앞으로 남은 기간에 이러한 광경을 더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수화언어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수화언어에 대한 사항을 대선 공약으로 삼아줄 것과 관련 정책을 만들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예비후보들은 복지와 장애인을 위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러한 장애인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김철환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늘 마음속에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 부끄러움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이고, 척박한 삶을 사는 장애인, 그 가운데 농인들이 이웃해 있어서이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 땅의 농인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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