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게으른사람들, ‘장롱 속 요크셔’ 연극 공연
“빚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가족으로 엮이는 상황을 표현”
![]() ▲민들레장애인야학과 작은자야간학교의 교사들로 구성된 극단적게으른사람들의 세 번째 공연 ‘장롱 속 요크셔’가 인천 부개문화사랑방에서 열렸다. 상환이 이르미에게 청혼하는 모습. ⓒ극단적게으른사람들 |
“상환아, 어디야? 좀 늦어? 그래, 천천히 와. 여기? 88번 종점에서 내리면 언덕길이 보일 거야. 언덕을 넘고 다시 언덕을 넘고 또 언덕을 넘으면 태양빌라라고 있어. 지하 103호가 우리 집이야. 그래, 어여 와.”
민들레장애인야학과 작은자야간학교의 교사들로 구성된 극단적게으른사람들(아래 극게사)의 세 번째 공연 ‘장롱 속 요크셔’가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인천 부개문화사랑방에서 열렸다. 작품 '장롱 속 요크셔'는 빚 때문에 붕괴하는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빚쟁이를 피해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 온 신대출, 백이자 부부와 아들 상환. 이름부터 짐작이 가는, 아버지의 대출과 아들의 상환. 부모님이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아들 상환은 2년을 기다린 여자친구 이르미에게 청혼하고 전역하는 날 집으로 데려간다.
“나 그만 갈게. 아프지 마. 나한테 실망할 거라고 했잖아. 나도 복잡해. 내 빚은 내가 갚아.”라는 이르미의 이별 통보.
“아프게 하지 마. 내가 빚쟁이라서 그래? 네 빚은 내가 갚아준다고 했잖아. 몸이라도 팔게?” 상환은 절규하지만 "팔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이르미는 떠난다. 여자친구를 소개하려던 자리에서 가족은 붕괴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폐암 말기였던 이자가 죽고, 대출은 상환에게 말한다.
“명심해라! 네 앞에는 철벽처럼 단단한 파도와 으르렁거리는 해일이 기다리고 있다. 넌 내 나약한 피를 상속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상속을 포기해라!”
그리고 대출은 잘 갈아 날카롭게 만든 신용카드를 꺼내 목을 긋는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죽였던 순종 요크셔테리어 말이에요. 제 아들. 그날 저는 장롱 속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내 볼을 핥고 꼬리를 흔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아들의 목을 힘껏 졸랐어요. 더, 더, 더 힘을 줬어요. 왜 그랬는지 아세요? 아들은 죽어야만 했어요.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아버질 원망할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전 제 아들이 요크셔든 똥개든 상관없었어요. 제 가족이니까요. 아버지의 그 유산, 상속받겠습니다.”
상환은 “이제 우리 가족이 다 모였네요”라며 전역 신고를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상환 혼자 남아 있을 뿐. 어린 삶부터 미워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상속으로 인정한 상환은 그 순간 미래를 본다.
![]() ▲상환의 빚을 알게 된 이르미가 떠나는 장면. ⓒ극단적게으른사람들 |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갔던 그 공간. 장롱.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장롱. 비밀이 생기기도 하고 추억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장롱 속에는 요크셔테리어가 있었다.
이번 연극의 연출을 맡은 민들레장애인야학과 작은자야간학교의 교사인 이경진 씨는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가족 이야기”라며 “젊은 세대의 상환이 잘 살아보려 하지만 빚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가족으로 묶이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장롱의 의미에 대해 “어릴 때 누구나 들어가는 공간이고 가장 쉽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곳”이라며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장롱을 이번 연극의 포인트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극에서 신상환 역을 맡은 작은자야간학교 김원호 교사는 “7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연습하는 내내 ‘상환’의 캐릭터에 몰입됐다”라면서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가족의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됐다”라고 연기의 소감을 밝혔다.
신대출 역을 맡은 박장용 교사는 “불리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쉽게 숨어서 지낸 기억을 장롱에 연결했다”라며 “가족의 관계를 ‘상속’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상속을 받으면서 상환은 아버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을 관람한 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은 “3년째 연극을 관람했는데 점점 실력이 늘고 있다”라면서 “다른 연극단체처럼 아예 모임이 아닌 단체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극게사는 지난 2011년부터 결성돼 ‘밤이면 밤마다’, ‘잘 지내고 있나요’ 등의 창작극을 연극을 한 바 있다.
![]() ▲죽은 이자와 자살한 대출을 보며 울부짖는 상환. ⓒ극단적게으른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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