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연대,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해소 모색 토론회’
동등한 주체로서 함께 살아갈 방안 논의해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해소 모색 토론회'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육장에서 열리고 있다.
중증장애인들의 힘겨운 투쟁의 성과로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이후 2010년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되면서 정착했다. 그러나 활동보조서비스는 24시간 보장 문제, 본인부담금 문제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숙제는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 간의 갈등 문제이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의 갈등문제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제도화가 바우처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간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부터, 저임금에 따른 높은 이직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활동보조인 노동권과의 충돌, 활동보조인의 역할에 대한 경계의 모호함, 그리고 성희롱 문제까지…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간의 갈등은 여기저기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와 같다.
이에 활동보조인연대와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16일 늦은 2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해소 모색 토론회'를 노들장애인야학 교육장에서 열었다. 이번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쟁점별로 정리해 본다.
 
이날 토론회에서발제에 나선 전덕규 씨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의 갈등 문제를 '고용 불안정, 수급 불안정, 인력 부족'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각각 활동보조인의 입장, 이용자의 입장, 중개기관의 입장에서 겪는 문제를 집약한 것이다.
▲활동보조인 전덕규 씨
전 씨는 활동보조인의 측면에서 보면 “장애인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 할수록, 그것의 실현수단으로서의 활동보조인은 노예에 가까운 무엇이 되어 간다”라고 말한다. “딱히 활동보조인의 업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보조인은 장애인 이용자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줘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활동보조인이 이를 강하게 거부하면 이용자는 중개기관에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말한다. 장애인 이용자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억지로 서비스를 받도록 할 수 없는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바꿔 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활동보조인의 고용불안을 낳게 된다.
반면 장애인 당사자는 활동보조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늘 위기를 겪는다. 이것은 활동보조인들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최중증장애인의 경우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전 씨는 이를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하고 신변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활동보조인에게 몇 대 쥐어박히는 것보다 더한 폭력적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활동보조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장애인 당사자 본인도, 활동보조인도 알기 때문에 문제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복지관 등 중개기관의 문제도 존재한다. 바우처 결제가 수입원인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중 어느 한 쪽 편만을 들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전 씨는 "하지만 활동보조인은 자신의 근무처도 중개기관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중개기관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개기관에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을 중재해 주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문제의 밑바탕에는 중개기관의 인력부족 문제가 깔려 있다.
전 씨는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용자 교육 △중개기관 또는 지자체 인력 확충을 통한 활보서비스 현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의 공공성에 기초한 갈등해결 기준 마련 △활동보조인의 이용자 연결 공백에 따른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휴업수당 또는 월급제 도입 △이용자의 활동보조인 연결 공백에 따른 생활불안 해소를 위한 활동보조 임시인력 확충 등을 제시했다.
쟁점1 : ‘이용자의 욕구’ VS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활동보조인 김연우 씨
발제에 이어 진행된 본격적인 토론은 활동보조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활동보조인 김연우 씨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다 보니 활동보조인에게 요구되는 일도 많다"라면서 "그러므로 컴퓨터 활용 등 다양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보충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활동보조인 김명문 씨도 “지금 실시되고 있는 40시간 교육, 10시간 실습은 너무 적은 시간"이라며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장애인 인권 및 장애유형을 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 씨는 “활동보조에 대한 명확한 업무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뭘 더 교육시키겠다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전 씨는 "장애인 이용자분들의 과도한 욕구까지 활동보조인이 할 수 있어야 하는가"라면서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 활동보조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회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애인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을 공공성의 영역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 또한 너무 모호하다. 그럼에도 ‘공공성’이라는 개념까지 동원한 것은 이용자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어느 지점에 가서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과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덕규 : ‘질 좋은 서비스’라는 이야기 많이 하시는데요, 사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안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이 돈 받고 왜 이것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너무 열악한 조건이니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활동보조인이랑 이용자가 잘 참고 이해하자’ 이런 게 아니라,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고용 안정을 시켜줘야 하는 거죠. 활동보조인에게는 생계의 문제이니까요.
그러나 ‘내가 이 돈 받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이용자들은 ‘그럼 그만둬라’라고 맞받아치고, 그러면 서로의 이해대립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미숙 : 복지부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용자들은 활동보조 24시간을 요구하고, 활보들은 수가 인상을 요구한다. 그러면, 자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그럼 ‘이용자가 24시간 포기하고 18시간만 할 테니 활보 수가 올려주세요’, 이런 말은 안 하겠죠. 그 결과는 올해 결정된 것처럼 활보 수가가 동결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복지부만 좋죠. “이용자 요구 들어주다 보니까 활동보조 수가 올려줄 방법이 없더라”,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으니까.
▲활동보조인 김명문 씨
쟁점2 : 활동보조인 성비 불균형의 문제
 
장애인 이용자가 불만으로 제기하는 ‘서비스 질의 문제’는 ‘활동보조인이 되는 진입 문턱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명문 : 지금 활동보조인을 아무나 쉽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돈 10만 원 내고 교육받으면 누구나 활동보조인이 될 수 있어요. 어떤 분은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구요. 4,50대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마트에서도 잘 안 받아 준다, 그러면 이런 분들이 갈 데가 식당 같은데 밖에 없어요. 그런데 활동보조 일은 대충 교육받고 이용자 연결되면 할 수 있거든요. 예전보다 이용자들이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은 늘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서비스의 질이 그만큼 나아졌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비슷한 내용의 토론이 오가는 동안에도 역시 활동보조인 재교육이 더 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계속해서 강조되었다. 하지만 ‘아무나 활동보조인 한다’라고 할 때, 암묵적으로 지칭되는 이 ‘아무나’는 누구인가? 이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고령의 여성 노동에 대한 비하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고미숙 :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편한 지점들이 많은데요. 서비스의 질을 이야기하시면서, 그 말 속에 '나이 많은 여성들의 서비스는 하찮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이 깔린 것 같아요. 특히 ‘마트에서도 안 받아준다’ 이런 말씀 속에는… 하지만 여성들은 그 나름의 세월이 엮어 놓은 뛰어난 자신의 능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장애아동을 케어하는 경우 어떤 남성들보다도 나이 많은 여성분들이 훨씬 잘합니다. 본인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연구하기도 하고. 솔직히 장애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대부분의 활동보조인은 젊은 남성들입니다.
활동보조인 일이 기본적으로 돌봄 서비스이고,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보니 현재 나이 많은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실정이다. 하지만 장애인 이용자 수도 여성이 많은 게 아니다 보니 남성 이용자를 여성 활동보조인이 맡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다.
고미숙 : 제가 활동보조인연대 일을 하면서 어떤 이용자분과 활동보조인 사이의 문제가 있어서 직접 가서 확인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못 갔어요. 그 이유가 뭐였느냐면, 활동보조인이 남편에게 자신이 남성 장애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으셨던 거에요. 이 분은 자기가 다른 남자의 옷도 갈아입혀 주고 목욕도 시켜준다는 사실을 알리길 두려워하신 거죠. 대부분의 성비 불균형 문제가 이래서, 여성 활동보조인은 문제를 숨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에요.
쟁점3 : ‘이용자의 부당한 요구’와 ‘활동보조인의 봉사정신’
이날 토론회의 또 하나의 주제는 활동보조인의 '일의 범위'였다. 활동보조인들이 ‘내가 이 돈 받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고 느끼는 경우 중 다수는 이용자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주변 사람들의 일을 부탁하는 경우, 특히 가족들의 일까지 해달라고 요구할 때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가장 교과서적인 답변은 ‘활동보조인이 못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정도이다. 그러나 매일 같이 얼굴을 보며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활동보조인의 노동 특성상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활동보조인 구범 씨는 말한다.
구범 : 사실 우리가 현장 나가보면 항상 불만인 게 뭐냐면요. 특정된 이용자만 하는 게 아니라 가족분들도 같이 한단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가족 일까지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잘라야 한다는 말이 맞아요. 그런데 실제 활동보조인 중에서 그걸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수미 소장
이런 갈등을 해결할 방법의 하나는 활동보조인이 그냥 참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활동보조인은 정당한 권리를 가진 ‘노동자’라기보다는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는 ‘봉사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애인 이용자들은 자신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봉사정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활동보조인에게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이용자가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자립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이기도 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수미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김수미 : 아까부터 봉사 정신 이런 말씀 많이 하시는데, 이용자 입장에서는 봉사정신 이런 것은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이용자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만 충실히 해 주시면 된다고 봐요. 봉사정신보다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런 마음으로…
 
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실제로 활동보조인들은 업무의 현장에서 늘 ‘봉사정신’을 요구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연우 : 봉사정신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그걸 들으면서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라고 느꼈어요. 많은 이용자분이 ‘이런 일 봉사정신 없으면 못 한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어떨 때는 활동보조인이 10시간을 추가로 일해 드렸는데, ‘봉사도 할망정 이런 일 못하냐’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봉사로 말하지 말라 하면서도 '봉사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잘할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는 거죠. 
 
약 두 시간 동안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들은 어느 때에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현장의 말들을 쏟아냈다. 때로는 너무 거침없는 말들이어서 서로가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활동보조서비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다. 서로 다른 목적과 방향을 가진 그 만남의 과정에서 여기저기 부딪치고 상처도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 그 숨어 있던 말들이 조금씩 말문이 터지는 순간부터 갈등의 해결 방법 또한 만들어질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