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준 열사 9주기 추모제 열려
유가족, 활동가 40여 명 모여 열사 추모

▲이현준 열사 9주기 추모제가 14일 광화문역 해치광장에서 열렸다.

“이현준 열사는 항상 칭얼대는 사람이었습니다. … 하지만 열사는 단지 혼자서 칭얼대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문제를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문제로 생각해 그 해결을 위해 제도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했던 의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장애해방열사_단 박김영희 대표 발언 중

이현준 열사 9주기 추모제가 14일 늦은 4시 광화문역 해치광장에서 이현준열사추모사업회(아래 이현준추사) 주최로 열렸다.

근이양증을 앓았던 이현준 열사는 함께걸음,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장애우권익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며 장애인 기초연금제, 성년후견인제도, 장애인콜택시, 활동보조인제도, 자립생활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등 장애인 정책제시와 실현을 요구하던 중 2005년 3월 16일 41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열사 유가족, 장애인단체 활동가 등 40여 명이 모여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등 활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장애해방열사_단 박김영희 대표는 “아마 그가 지금 살아 있었더라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현장에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가 열사와 함께 투쟁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진우 활동가는 “활동보조인도 없었을 때 자립생활을 시작한 열사는 많은 부분을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근육장애인의 고통을 꾸준히 알리고 끝없이 투쟁을 이야기하셨다”라면서 “자립생활하면서 손수 모범을 보였던 열사를 생각하며 투쟁을 이어가겠다”라고 다짐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현준이를 마지막으로 봤을 당시 현준이는 휠체어에서 오래 생활해 팔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현준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면서 “24시간 활동보조가 있었더라면 현준이는 지금도 이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 사무총장은 “24시간 활동보조를 확보하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것이 현준이의 뜻”이라면서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남은 우리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유가족 발언 중인 열사 동생 이현제 씨.

열사의 동생인 이현제 씨는 “이 자리에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1년에 한 번 인사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라면서 “10주기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어 고생이라는 말, 절망이라는 말이 없어지는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장차법 총칙에 있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제안한 사람이 현준이었다”라면서 “현준이를 중심으로 법을 배워본 적도 없는 장애인 당사자 몇 분이 팀을 꾸려 총칙에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담은 규정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장차법 법안 만들 때 현준이의 따뜻한 감성을 느꼈던 것 같다”라면서 “힘들 때마다 열사 생각하면서 같이 갔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민중가수 이지상 씨가 열사 추모공연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현준 열사 제단에 분향과 헌화하며 추모제를 마쳤다.

한편 이현준추사는 오는 16일 낮 12시 고인의 유골을 뿌린 강화도 외포리 황천포구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매년 이현준 열사 추모제마다 추모공연을 하고 있는 이지상 씨.

▲헌화하는 참가자.

▲헌화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묵념하는 참가자.

▲분향하는 참가자들.

▲이현준 열사 제단에 국화가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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