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진 교수, "차별의 문제와 함께 다양성, 보편성 문제 숙고해야"
"장애등급 심사로 36.7% 등급 하락은 '대학살'과 같다"
![]() ▲제6회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 둘째날인 5일 오후 '장애등급제와 보편적 복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주최로 제6회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5일 오후에 '장애등급제와 보편적 복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기조발제를 맡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정책, 특히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은 많은 부분 선별주의에 의거하고 있다"라면서 "심지어 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은 장애인연금은 자산조사뿐 아니라 장애 상태와 등급까지 더해 이중의 장벽을 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장애를 정의하는 의학적 접근법, 기능적 접근법, 사회정치적 접근법 등 세 가지 개념 틀을 설명하면서 현재 의학적 접근법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에 대한 법적 정의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정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본지 2010. 07. 22일 자 "장애에 대한 사회정치적 접근법으로 법과 제도 정비해야" 참조)
조 교수는 "의학적 접근법은 장애를 정의할 때 질환 명을 장애 목록으로 제공해 어떤 사람이 제한이 있다면 결과보다는 원인에 관심을 두는 것이며, 기능적 접근법은 어떤 것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 두 가지가 사회복지프로그램에서 주로 채택하는 접근법인데, 장애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면서 장애인이 무엇을 못한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점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사회정치적 접근법은 장애를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 등 외부환경의 측면에서 바라보며 장애인이 변해야 한다는, 재활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비판한다"라면서 "우리나라 장애 관련 법들은 의학적 관심이 대부분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인권법인데도 불구하고 기능적 관점에서 장애를 서술했는데 인권법이므로 사회정치적 접근법으로 장애를 정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의학적 접근법에 근거한 장애의 정의를 사회정치적 접근법에 근거한 종합적인 장애의 정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 교수는 장애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차별의 관점에서만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면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차별을 받는 여성, 이주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들이 있는데 왜 장애인만 더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다"라면서 "따라서 장애인의 문제를 차별의 관점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 보편성의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장애의 정의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왜 장애인에게 특별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느냐?'라고 물을 때 장애인의 독특한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운 나쁘면 장애인이 된다'가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장애인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당장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고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눈앞에 닥친 문제이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정의의 문제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가자가 조 교수에게 "다양성의 문제와 보편성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다양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보편성의 문제와 대치되는 느낌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재난 등이 발생했을 때 여성을 먼저 구조하는 것은 여성을 차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독특한 특성이 있어서 대접하는 것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게 다양성의 문제로 접근하자는 뜻"이라며 "보편성의 문제는 옛날에는 장애 특성에 맞는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했다면 요즘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장애를 삶 중 하나의 형태로 보는 게 아니라 삶의 보편적 과정으로 보자는 것으로 서로 대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토론에 나선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강현석 공동대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영희 소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 |
이어 토론자로 나선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강현석 공동대표는 "과거에는 나도 형평성과 객관성을 위해 장애등급을 재판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지역에서 뇌병변 1급 장애인이 장애등급이 하락할까 걱정돼 장애인연금 신청을 하지 못하는 현실 등을 보면서 보편적이면서 현실에 맞는 장애의 정의와 권리를 확보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영희 소장은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시설생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 살 수 있도록 주거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14명을 선정했지만 지자체의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없어 신청해도 대기자로 밀리거나 장애등급 심사에 최소한 두 달이 걸리는 등의 문제로 현재 2명만 나온 상황"이라고 전하고 "그럼에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어느 곳도 지원하지 않고 대책 또한 없다"라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은 "현행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장애아동 부문이 소홀해, 장애아동에게 장애등급이 아니라 장애아동의 욕구에 기반을 두고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라는 별도의 법을 만들고 있다"라고 밝히고 "현재 장애아동에게 투입되는 예산이 1,400억 원 정도,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을 만들면 투입되는 예산이 5,000억 원 정도인데, 정부 관계자들은 '왜 별도의 법과 지원체계를 만들어서 돈을 들이느냐?', '과연 보편적인 서비스 지원체계를 확립할 수 있겠느냐?'라며 불확실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기존 장애등급제에 대한 인식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다음 순서로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이 가상의 복지부 관계자로 나와 장애등급제 강화를 옹호하는 논리를 설명했다.
가상의 복지부 관계자는 "주어진 예산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서비스가 가도록 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분과 복지부의 입장은 같다"라면서 "가령 예산 문제 때문에 복지부에 항의를 많이 하는데, 지난해 복지부도 여러분이 농성을 할 때 기획재정부, 국회를 상대로 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억울하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만약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자리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고용된다면, 이는 고용되어야 할 장애인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급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다른 나라도 의학적 형평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가상의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007년부터 1~3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등급 심사제도를 한 결과 40% 가까이 등급이 하락했는데 이는 시험에서 10개를 맞추었을 때 100점을 주는 시험에서 5개, 8개를 맞춘 사람에게 100점을 준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지금은 의학적 형평성을 강화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가상의 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복지부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관점에서 장애인들을 위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실제로 주류 장애인계에서는 복지부 관료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하고 "하지만 본질은 복지부, 기획재정부, 국회 등이 서로 역할을 나눠 통치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복지부의 역할은 주어진 예산으로 장애인계를 분할해 지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복지부가 객관성과 공정성, 국민적 신뢰 등을 이야기하며 장애등급 심사제도를 확대하는데, 정말 복지부가 말하는 가짜 장애인의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장애등급 심사제도 때문에 등급이 하락한 사람들 중 '결정 불가','확인 불가' 등에 속하는 5% 정도에 불과하다"라면서 "2급이 되면 활동보조서비스 지원 중단, 3급이 되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애등급 심사제도로 36.7%가 등급이 하락했다는 것은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살'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005년 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을 할 때 예산이 겨우 15억 원이었지만, 내년도 복지부 예산요구안을 보면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1,347억 원 수준"이라면서 "따라서 '예산이 없다'라는 말은 '실제로 예산이 없다'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정책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기 싫다'라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 ▲토론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질문 및 의견을 밝히고 있다. |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의 질문 및 의견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복지부에 장애인이 몇 명이 있는지 궁금하다"라면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마음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장애인복지는 장애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추진되어야 하며, 이명박 정부가 삭감한 부자들의 세금 중 일부만 써도 장애인들은 충분한 복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에는 장애인 관료들이 있고, 장애등급 심사제도 확대 과정에서도 이른바 주류 장애인계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예를 들면 장애인장기요양제도 추진단에서 우리가 본인부담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도 주류 장애인계에서는 본인부담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이기에 단순히 장애인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음 질문자는 "복지부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장애등급 심사제도를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2~3급 장애인 중에서도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1급으로 서비스 이용 대상을 제한하고, 일을 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연금을 주어야 하지만 역시 장애등급으로 제한을 둬 지급한다는 것은 모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서비스별로 별도의 판정기준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이치에 맞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