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준수율 높지만 장애인이 느끼는 현실은 ‘바닥’“이동편의증진법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 비판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한국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한국정부는 “대중교통의 73%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이동편의증진법)에 부합하고 건축물 편의시설 설치율도 77.5%까지 향상되었다”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도 그렇게 느낄까?

이렇게 질문해 보자. 이동편의증진법을 준수하면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은 보장되는가? 장애인 당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법상에 명시된 이동편의증진법 기준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2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에 나선 이들은 이와 같은 이동편의증진법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장애인이동권의 현황을 짚고 이를 통해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의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23일 오후 2시 이룸센터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렸다.

# 국토부 이동권 실태조사 기준 바뀌어야

이날 토론회에서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2013년 국토부의 이동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를 이야기하며, 이는 장애인이 느끼는 이동권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실태조사는 이동편의증진법에서 정한 대상 도로, 교통시설, 교통수단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상의 설치율과 장애인의 접근권이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국토부의 실태조사 중 보행환경 부분을 보면, 보도의 유효폭은 70.8%, 포장 80.6%, 기울기 85.3%, 턱 낮추기 72.4%, 점자블록 39.1% 등 평균 62.6%의 기준 적합률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

그러나 배 사무총장은 “당시 조사는 10개 시·도 조사대상 여객시설의 주변 출입구에서 버스 정류소 사이의 도로 542개를 조사한 것”이라며 “조사대상 대다수는 이면도로가 아닌 주도로인데 주도로는 이면도로에 비해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즉, 표본을 어디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그나마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주도로의 기준적합률이 62.3%에 불과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행환경의 열악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버스, 철도, 항공기, 여객선 등 교통수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버스차량 81.5%, 철도차량 93.2%, 항공기 98.1%, 여객선 16.7% 등으로 평균 72.4%의 기준적합률을 보였다.

그러나 버스의 경우, 일반버스와 저상버스가 분리되어 조사됐고 휠체어 승강설비, 휠체어 공간 등은 저상버스에 대해서만 조사됐다. 애초에 조사 기준 자체가 높은 적합률을 보일 수밖에 없도록 구성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저상버스는 시내버스에만 도입되어 있고 고속버스, 광역버스와 같은 시외버스엔 도입되지 않아 휠체어이용자의 이용이 불가능하다. 시내버스에 도입된 저상버스 전국 도입률도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시내버스의 16%에 불과하다.

철도의 경우는 어떤가. KTX 열차엔 휠체어 이용자 좌석이 한 열차당 4석씩 정해져 있으나 특실의 시네마칸과 일반실의 식당칸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새마을호에 휠체어이용자는 아예 탈 수 없고, 무궁화호는 탑승할 수는 있으나 승하차 설비가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동편의시설 설치율에서 100%에 가까운 적합률을 보인 항공기에 대해서도 배 사무총장은 “물론 법의 기준에 따르면 100%가 맞지만, 이동편의증진법에는 항공기에 설치해야 하는 이동편의시설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배 사무총장은 이동권 실태조사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수치는 달라질 것”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배 사무총장은 또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가 1, 2급 등록 장애인 200명당 1대로 되어 있는 기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 택시가 200명당 1대로 도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 기준도 이렇게 정해졌으나 이는 옳지 않다”라며 “비장애인은 자전거, 버스 등을 자유롭게 탈 수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택시는 ‘선택’이나 장애인에게 특별교통수단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휠체어 미이용 교통약자에 대한 특별교통수단 도입에 대해선 교통바우처를 통한 대안을 제시했다. 현행법에선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한 차량만 특별교통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리프트 미장착 차량이 특별교통수단으로 인정될 경우, 지자체에선 비교적 비용이 저렴한 리프트 미장착 차량을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도입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 사무총장은 “휠체어 미이용 장애인들이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려는 이유는 요금 때문”이라면서 “요금이 이유라면 별도의 차량을 도입할 게 아니라 이들에게 교통바우처를 발급해 일반택시에서 이를 사용하도록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 모든 대폐차 차량 저상버스로 교체 필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도건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에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토론자들은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전장연 조현수 정책국장은 모든 시내버스의 대폐차 차량을 저상버스로 교체하고, 시외·고속버스 등에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이동편의증진법 상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처음 저상버스를 도입한 서울의 경우, 현재 차령 9년을 초과한 대폐차 차량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에 대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대폐차되는 차량이 일반버스로 도입될 우려가 있다. 이는 장애인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의 대폐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도건 집행위원장은 이동편의증진법 상에 중앙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교통수단 도입 책임과 역할이 지자체에 위임되자 지자체의 재정 상황과 역량에 따라 지역 간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도의 장애인활동가들이 2008년부터 경기도이동권조례제정 운동을 벌여 그 결과 14개 시·군은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이 2014년 현재 97%에 이르나, 나머지 지역은 47%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과천, 구리, 여주, 안성, 광주, 남양주의 경우엔 특별교통수단이 여전히 한 대도 도입되지 않았다.

이에 이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조례 제정 운동부터 해야 했다”라며 “개정안엔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담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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