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1만 8천여 명, 활동지원 삭감 위기에 직면

영국 대법원이 지난 8일(현지시각)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 아래 ILF)을 폐쇄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ILF는 1988년에 설치된 영국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자립생활 지원 예산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활동보조인을 고용해 이용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영국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와 예산이 갖춰져 있지만, 중앙정부가 관장하는 ILF가 장애인 이용자들의 만족도 면에서 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2년 12월 ILF의 신규 신청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첫 번째 폐쇄 시도를 했다. 그러나 다음해 11월 법원은 ILF 폐쇄가 2010년 제정된 평등법(Equality Act)이 규정한 “공공영역에서의 평등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공공영역 평등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는 새로운 자료 분석에 기초해 재차 ILF 폐쇄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올해 3월에 '2015년 6월부터는 ILF를 완전 폐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정부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면서, 중증장애인 1만 8000여 명에게 지원되던 활동지원 등 자립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 혜택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내년 6월부터 기금이 폐쇄되면, 이 예산은 각 지방정부의 일반예산으로 흡수될 예정이다. 그러나 영국 내 장애인단체들은 일반예산으로 흡수된 기금이 온전히 장애인 자립생활에만 쓰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개인 수급자가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을지에 대한 결정이 ‘국가최저기준’(national minimum)에 따르지 않고, 개별 지방의회가 결정하는 것에 따르게 된다는 것 또한 문제다.
영국 내 장애인 관련 자선단체 스쿠프(Scope) 리처드 호크스 회장은 ILF 폐쇄 결정이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고질적인 저예산과 매년 줄어드는 개인별 할당은 아침에 일어나고, 옷 입고, 씻는 등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도움을 얻기 위해 분투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일갈했다.
한편, DPAC(Disabled People Against Cuts) 등 장애인단체는 올해 7월, ILF 폐쇄를 막기 위해 런던 국회의사당 인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점거하는 등 투쟁을 벌여왔다. 법원의 결정이 알려진 후 DPAC은 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이것이 끝이 아니다. 우리는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라면서, ILF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