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일반 예산으로 이양, 기존 수급자 대책 없어
장애인단체, 하원의회 로비 점거하며 항의하기도

영국의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이 7월 1일 자로 완전히 폐쇄됐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 기금을 통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던 1만 8천여 명의 중증장애인에 대한 후속 대책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장애인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센 상태다.
자립생활기금은 1988년에 설치된 영국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자립생활 지원 예산으로, 장애인 당사자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해 활동보조인 고용 등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예산의 규모는 약 3억2천만 파운드이며, 1만 8천여 명에 달하는 수급자 대부분이 중증장애인이다. 이 제도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립생활기금을 둘러싼 영국 내 갈등은 2012년 12월 정부가 갑작스레 이 기금에 대한 신규 수급자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법원이 2013년 11월에 자립생활기금 폐쇄가 평등법(Equality Act)이 규정한 '공공영역에서의 평등 의무 위반'이라고 판결해 정부의 시도는 한 차례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이듬해 정부가 '2015년 6월 30일 이후로 기금 완전 폐쇄'를 선언하면서 갈등은 계속됐다. 그러나 영국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고 2014년 12월에 자립생활기금 폐쇄가 적법하다고 선언하면서 정부 결정에 힘이 실리게 됐다.
기금이 폐쇄되면서 기존 예산은 전부 지방정부로 이양되게 된다. 하지만 이양되는 예산은 기존 예산 규모보다 대폭 축소된 2억6200만 파운드에 불과하며, 예산 사용처도 명확히 명시하지 않은 채 지방정부 일반예산에 포함하도록 해 온전히 자립생활에 쓰이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실제 영국의 장애인단체 'Disability Right UK'(아래 DRU)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예산을 이양받는 지방정부 가운데 3분의 1만이 이 돈을 자립생활에만 쓰이게 하도록 보호할 대책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게다가 지방정부로의 예산 이양도 2016년까지만 보장될 뿐 그 이후는 불투명한 상태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예산의 사용처를 분명히 적시해 교부하게 되면 지방정부가 지역의 욕구에 따라 유연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며 대책 마련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정부는 또 1996년 제정된 지역사회돌봄법(Community Care Act)을 통해 대다수의 장애인이 지방정부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 이중으로 급여를 받는 것은 '불필요한 관료주의'라며 자립생활기금 폐쇄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들은 정부의 이런 조치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DRU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돌봄이 많이 필요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할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립생활기금을 폐쇄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든 장애인 정책의 변화는 실질적인 자립생활을 가능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엄밀하게 평가를 한 뒤 결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은 엄밀한 평가를 거쳤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24일 장애인단체 'Disabled People Against Cuts'(아래 DPAC)는 데이비드 케머런 영국 총리가 하원의회에 참석해 대정부 질의에 답하고 있을 때, 의회 로비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며 자립생활기금 폐쇄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날 DPAC 소속 장애인 20여 명은 의회 회의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로비 점거를 끝내고 난 후에도 의회 앞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며 항의의 뜻을 계속 이어나갔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반발에 대해 영국 노동연금부의 대변인은 "반대자들은 이번 개혁으로 인해 장애인이 받는 지원이 없어질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지만, 이는 단지 지원을 위한 자금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며 "기존 자립생활기금 이용자들의 돌봄 및 지원 욕구는 이후에도 충족될 수 있다. 다만 지원 방식이 하나의 경로로 통합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DPAC은 자립생활기금이 완전히 사라지는 6월 30일에도 총리 관저 등이 위치한 다우닝가 10번지 인근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며, 정부가 후속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자립생활기금을 지키자!"("Save the ILF!")를 외치며 행진했고, 시위 내내 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 예산을 무참하게 폐지한 보수당 정부를 규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