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되지 않아 개정 방침 발표, 성소수자 용어 바꿔
성소수자 단체 “대전시, 성소수자 인권 위해 뚝심 있는 모습 보여야”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와 지원을 명시한 개정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가 지난 1일 시행됐으나,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발에 대전시가 다시 조례를 개정하려 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전시에서 1일 시행한 이 조례는 성 평등 이념을 실현하고자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위임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여성발전기본법'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해 지난 1일 시행하면서, 대전시의회는 개정 법 시행에 앞서 6월 19일 권선택 대전시장이 제안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에 개정된 조례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원이 새롭게 포함됐다. 조례 3조에서 시장이 매년 성 평등 정책을 수립할 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보호 및 지원 정책을 수립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조례 22조에는 시장의 의무로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사회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을 권리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을 규정했다. 덧붙여 시장이 조례에 근거해 성소수자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을 지자체가 성 평등 조례에 담은 것은 과천시에 이어 대전시가 두 번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은 “연도별 성 평등 시행계획 수립 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계획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법규”라며 조례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대전시는 개정 조례 시행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3일 기자브리핑에서 성소수자가 포함된 조항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조에 규정한 성소수자 용어를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 등 중립적인 언어로 바꾸고, 22조 성소수자에 대한 지원을 차별에 대한 보호와 지원으로 한정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이러한 방향으로 조례가 개정되면 지방재정법 17조 1항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성소수자 관련 사업에 재정적으로 지원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결국 또 다시 조례가 개정되면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대전시의 태도 변화는 조례 시행에 대한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조례 시행을 전후로 대전 지역 기독교 단체와 한국기독교언론회 등이 동성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한국기독교언론회는 21일 논평에서 조례에 성소수자 조항을 넣는 것이 모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인 ‘여성과 남성의 평등’에 어긋나며, 동성애를 인정해 “사회 질서 파괴, 가정 붕괴, 비인간화를 촉진”한다며 문제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의 반발에 대해 대전시는 기자브리핑에서 “문제가 된 성소수자 용어는 법률 용어가 아니고 사전적 의미이므로, 그로 인하여 오해의 소지가 발생했다”라며 “조례에 규정된 것은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일 뿐, 재정지원 등 적극적 지원을 위해 쓰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소수자 단체에서는 보수 기독교 단체가 성소수자 지원 조항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대전시가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희 무지개행동 운영위원은 “조례의 용어를 중립적인 용어(‘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로 수정하면 보수 기독교 단체의 정치적 의도에 이용될 수 있다. 그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면 마치 성소수자와 성적 지향이 다른 이성애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처럼 주장하지 않겠는가.”라며 “대전시에서 성소수자가 당하는 차별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조례에 싣지 않으면 보수 기독교 단체는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정 운영위원은 “보수 기독교 반발 때문에 시장이 제안한 개정 조례를 또 개정하겠다고 한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조례 자체가 수많은 절차를 거쳤고, 대전시에서 반론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조례를 개정하면 조례를 통과시킨 진정성조차 의심된다”라고 비판했다.
정 운영위원은 “조례나 자치법규를 만들면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반론을 제기하며 개정하자는 식으로 나오는데, (대전시가) 이러한 식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며 “좋은 취지를 가진 조례라면 뚝심 있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