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애인단체, 장애인권리협약 위반한 영국 정부 유엔에 진정

▲영국 장애인단체 DPAC이 장애인복지 예산 삭감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영국 정부가 장애인 복지 예산 삭감 등을 밀어붙여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엔의 조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영국 정부의 긴축정책과 복지예산 삭감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장애인단체 DPAC(Disabled People Against Cuts)은 지난달 말 홈페이지를 통해, 영국 정부가 장애인권리협약을 "심각하고 조직적으로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유엔이 영국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PAC은 보수-자유당 연립정부가 장애인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가하는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을 조사해 달라며, 지난 2013년 5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의거해 유엔에 공식 요청서를 제출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정부가 협약상의 규정을 위반해 장애인 개인의 권리가 침해 당했지만 국내에서 가능한 모든 구제절차를 이용하고도 권리구제가 되지 않았을 경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통보해 심리를 청구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DPAC의 요청서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와 정부의 복지 개혁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했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유엔에 두 차례에 걸쳐 서면으로 반박 내용이 담긴 답변서를 보냈고, DPAC도 영국 정부가 협약을 위반했다는 추가적인 증거 자료를 제시해 맞서왔다. 공방 끝에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영국 정부의 협약 위반에 대해 조사를 시작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유엔은 공식 조사에 착수한 후 몇 달 안에 영국을 방문해 조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DPAC은 "한 국가가 이 협약의 선택의정서에 의거해 직접 조사를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는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영국 정부에 의해 권리 침해를 받아왔고, 야당에 의해 무시당했으며, 거대 장애인단체로부터 배신당해 온 장애인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의 경로”라고 이번 조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DPAC은 영국 정부가 장애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권리를 침해했다며, 그 근거로 40가지가 넘는 정책 목록을 제시했다.

이 중에는 △전면적인 복지총액 제한제도의 도입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 폐지 △노동연계복지에 따른 급여 제한과 능력상실급여(Incapacity Benefit) 폐지 △공공 임대주택의 경우 가족 수에 견줘 남는 침실이 있으면 주택보조금을 삭감하는 침실세(bedroom tax)의 도입 △교통수당 삭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영국의 시민단체 UK Uncut(www.ukuncut.org.uk)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0월 영국의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1920년대 이래로 가장 극심한 공공 서비스 예산 삭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사회서비스 전체 예산은 40억 파운드(약 7조 원)가량 삭감되었다. 게다가 올해 5월 보수당이 단독 정부 수립에 성공하면서, 120억 파운드(한화 20조 원 규모)에 달하는 복지 예산 삭감이 추진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DPAC은 “많은 장애인들이 여러 가지 인권 침해와 생활 수준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며 “복지급여 제한을 받아 푸드뱅크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빈곤으로 인해 영양실조를 겪는 사람들도 증가했다”라고 실태를 밝혔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의 노동연금부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유엔의 조사 과정은 비밀이 원칙”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한 억측에 답변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는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아, 위와 같은 개인통보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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