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때 발병한 조현증과 함께 살아가는 차기순 씨
![]() ▲차기순 씨의 자화상 |
차기순, 그녀를 만난 건 홍제역 인근 골목에 있는 ‘로사이드’란 예술 공간에서이다. ‘로사이드’는 무의미한 낙서나 병리적인 증상으로만 여겨진 예술작업을 재조명하고 사회에 소개하는 곳이라고 한다. 장애인도 예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특이한 감성과 사고를 예술과 소통시켜 장애에 대한 통념과 예술에 대한 통념을 동시에 깨는 실험을 하는 곳이다. 고흐의 특이한 색감과 장 드뷔페의 ‘야생적 예술(Art Brut)’이 그들의 광기 체험에서 비롯된 걸 생각하면 일견 당연한 실험이라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장애에 대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케케묵은 고정관념 때문에 최근에야 힘들게 시작됐다. 기순 씨는 2015년 2월부터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얘기부터 하려고 했는데 기순 씨는 먼저 자신의 증상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차기순이고, 제 병명은 정신분열증, 조현병이라고 하는 거고, 20살 때 처음 발병했어요. 미대에 가려고 했는데 수능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재수 준비하는데, 어느 날 금요일인가 집에서 쉬고 있는데 환기구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여자애 목소린데 그때부터 20년 동안 환청에 시달리고 있어요."
2010년부터 ‘정신분열병’ 대신 ‘조현병’(調鉉病)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현악기의 줄을 고르듯 정신 줄을 조율할 필요가 있는 병이라는 뜻이란다. 일부러 뜻을 숨겨 낙인효과를 막자는 취지인데 글쎄,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닐 성싶다. 소위 조현병은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에 시작하여 만성적으로 정신적 혼란을 경험하는 병으로, 백 명 중 한 명이 걸릴 정도로 꽤 흔하다. 기순 씨처럼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고, 환청과 망상, 정서적 급변 같은 증상이 생긴다.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생화학적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약물로 증상을 억제시킬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 환청을 듣고 나서 엄마와 삼성의료원에 갔어요. 그러다가 가까운 병원에서 상담하고 약도 처방 받았어요. 약을 먹으니까 좀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약을 안 먹었더니 또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약을 먹다 안 먹다 그래요. 사실 먹어도 들리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먹으면 융통성이 생긴다고 할 수 있어요. 내 마음을 좀 캐치할 수가 있는데, 안 먹으면 어지럽고 메스껍고 손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잠도 못 자고 어떨 때는 환청이랑 대화도 하고 그래요. 2주, 3주, 길게는 석 달간 약을 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제가 아닌 것처럼, 말도 막 하고, 환청이랑 말도 주고받고 그랬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요. 처음에 소리 날 적에 제 버릇을 고쳐놓는대요. 여자앤데, 글쎄 제 버릇을 고쳐놔야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나중에 제가 “버릇 고쳤어? 내 버릇 고쳤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처음부터 그랬거든요. “떠나고 장치를 끄라고” 그래서 제가 “갈 것 같지? 갈 것 같지?” 그렇게 제가 자꾸 말려 들어가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기순 씨는 미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수능시험에서 떨어졌다. 재수를 준비했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또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기순 씨는 입학시험에 자신이 없다. 최근에는 중부교육기술원에서 봉제 기술 교육받으려고 지원했는데, 세 번이나 떨어졌다. 그녀의 꿈은 봉제, 수선 자격증을 따서 옷 수선하는 건데, 자격증 시험에 붙을 자신이 없다. 그녀의 첫 번째 증상은 그녀의 첫 번째 입시 실패와 함께 발생했다.
"스물두 살 때 기술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그때 살이 많이 쪘었어요. 살을 빼려고 아파트 초등학교 운동장을 막 돌았어요. 한창 예민할 때였는데, 약을 안 먹었어요. 그러자 또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TV에서도 나를 엿보고 있는 것 같고.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라디오도 못 듣겠고. 그래서 제가 나 자신을 팽개치듯이 차단시켜 버렸어요. 그런 것을 안 보면 되겠지.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마다 제 욕을 하는 것 같고 어떨 때는 소리도 막 지르곤 했어요. 전철에서 여자 애들이 히죽거리거나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한테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 또래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스물두 살의 기순 씨는 자기 몸에 자신감이 없었다. 식구들도 뚱뚱하다고 놀렸다. 살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 무렵 잠깐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나쁜 놈이었다. 모든 면에서 자기를 사랑하기 힘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비웃고 욕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실패와 좌절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기순 씨의 뇌에서 일어난 신경생화학적 변화와 그런 좌절 상황에서의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예외적인 일도 아니다.
"제 동생이 연극영화학과에 다녔어요. 연출과였는데, 나보고 “내 영화에 출연해줘” 그러는 거예요. 세 번이나. 그때는 살이 좀 덜 쪘을 때인데, 내가 “싫어, 싫어, 싫어” 했어요. 내가 왜 영화에 출연해요? 내가 뭐라고? 연예인도 아닌데. 내 남동생이랑 연관이 있는 거 같아요. “나는 연예인이야”라고 환청이 그러는 거 보면. 황당하죠? TV를 보면 거기서도 “나는 연예인이야” 그러는 거예요. 남동생을 참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그 후로는 사이가 나빠졌어요. 결국 남동생은 집을 나가 독립해서 살아요. 가끔 집에 와도 아는 척도 안 해요."
![]() ▲로사이드에서 만난 차기순 씨. |
뇌에서의 신경생리학적 이상 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게 당연하다면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상황적 대처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모든 장애가 그렇듯이 정신 장애도 상황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심각한 장애가 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장애의 상황적 요인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복잡하고 개선시켜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기순 씨의 정신적 문제에 결부된 상황을 자세히 분석할 입장은 못 된다. 그저 변죽을 울릴 뿐이다.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첫째 언니는 저랑 같은 병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발병했는데, 교회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경기도에 있는 교회 옆에 독립해서 살아요.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어요. 둘째 언니는 결혼해서 나가 살고. 여동생은 경찰청 사무직으로 일하는데, 일이 너무 힘든가 봐요. 눈이 쑥 들어갈 정도로 일을 많이 해요. 막내 남동생도 독립해서 살고. 집에는 엄마, 여동생, 저 그렇게 있어요. 엄마한테 미안해요. 돈 한 푼 못 벌어오니까. 용돈도 좀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그래야 되는데. 못 그러니까. 여동생도 눈치 주는 것 같고."
기순 씨는 직장이 없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오래 다닌 곳은 없다. 기순 씨의 얘기를 들으니 새삼 기순 씨의 ‘병’이 ‘장애’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교회 속장님 소개로 재건축 위원회에서 일한 적 있어요. 할 일도 없고, 오히려 심심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엑셀 프로그램으로 전산 하는 일이었어요. 저는 엑셀 하나도 못하는데, 황당하더라고요. 저보다 한참 어린 여자 애가 인수인계 하는데 막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런데 또 점심 먹고 나서 어떤 남자 한 분이 오셨는데, 엑셀을 전문으로 잘하는 분이셨어요. 제가 할 일이 없는 거죠. 그래서 토요일에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못하겠다고 하니까 왜 그러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유를 모르냐”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기순 씨는 엑셀 다루는 법을 모른다. 눈칫밥 먹는 방법도 모른다. 상황 봐가며 말하는 방법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냐 마는 기순 씨는 그 병으로 인해 좀 특별하다.
"거기 말고, 다른 회사 다닌 적도 있어요. 의상 쪽이라고 해서 갔는데, 그건 아니고, 옷을 어떻게 만드는지 엑셀로 브리핑 하는 그런 데였어요. 그런데, 사장이란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직원한테 막대하더라구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내 속엣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닐까 하는 강박관념. 기순 씨의 이런 증상이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어떤 말이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쌍스러운’ 말이라고 했다. 과할 정도로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말투 속에 기순 씨는 굉장히 상스러운 욕을 숨겨놓고 산다. 그 욕을 억압하면 할수록 남들이 그걸 알아들을 것 같다는 망상은 커진다. 비인간적인 직장문화가 그녀의 증상을 키우는 상황적 요인이 되고 또 그녀의 증상이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언니처럼 교회를 다녀보았지만 기순 씨한테는 도움이 안 됐다.
"교회에서 수련회 같은 데 갔는데, 30대 중반의 여자하고 20대 중반의 여자 둘이 저를 가운데 두고선 자기네끼리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거예요. “까톡~” 하고 쓰고, “까톡~”하고 쓰고 그러는데, 알고 봤더니 저를 가운데 놓고 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야, 니네들 내 욕해? 메시지로 내 욕해? 나, 갈 거야!” 그러고 싶은데. 그냥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보는 게 내가 뚱뚱하니까 그래서 말을 하는 건데. 나는 또 내 말을 알아듣고 그러는 게 아닐까. 내 겉모습이 흉해서 그러는 건데, 내 속 말을 알아듣고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자기를 사이에 두고 다른 사람들이 문자로 수군거리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괴롭다. 하지만 자기를 욕하는 환청에 시달리고, TV나 라디오 같은 매체에서도 환청을 듣고, 자기 속엣 말을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다는 망상을 가진 기순 씨에게 그런 상황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시대 대다수 사람이 참고 견디는 그런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을 기순 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병이 장애인 이유이고, 그런 장애 상황을 해소하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이유이다.
장애 등록은 하셨어요?
"아뇨. 안 했어요." 가능하긴 해요? 만약 등록하면 몇 급 나올 것 같으세요?
"네, 가능해요. 아마 1급 나올 거예요. 20년 동안 저를 상담해 오신 신경정신과 선생님이 계신데, 저를 꿰뚫어 보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안 했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요. 직장생활은 힘들고, 알바하면서."
복지혜택은 없고 낙인효과만 있는 상황에서 정신장애 등록을 왜 안 했냐고 물어본 내가 한심하다. 그런 그녀의 사회화를 도와줄 만한 곳은 어디일까? 기순 씨는 송파정신건강증진센터 ‘늘품’에 다녔다고 했다.
"저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요. 게임도 하고, 노래도 하고, 책도 읽고, 요가도 하고. 맛있는 것도 주고. 매일 오라고 하시는데 자주 안 가요."
기순 씨에게는 취미생활보다 사회생활이 더 필요하다. 중부교육기술원에는 세 번 떨어졌고, 교회에서는 미움만 샀다. ‘로사이드’는 기순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순 씨는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기순 씨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

이 그림 두 개는 다른 거랑 다르네요? 평범한 사람들인데, 누구예요?
"전철에서 그렸어요. 연필로 스케치하고 나서 나중에 볼펜으로 그렸어요."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몰래 그렸죠." 왜요? 이 사람들한테 뭐 특별한 점이 있나요?
"아뇨. 그냥. 그리고 싶었어요. 안 보겠지 생각하면서."
그림은 기순 씨에겐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매체다. TV, 라디오, 핸드폰이 기순 씨에게 망상과 환각의 매개체가 되는 것과 달리 그림은 자기가 소외되지 않은, 온전히 자기가 주도하는 매체다. 지하철 한 쪽에 앉아서 스케치북을 은폐물 삼아 웅크리고 다른 승객의 얼굴을 그리는 기순 씨의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다.

기순 씨의 그림은 화려하다. 과할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을 사용한다.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그렸다는 세월호 연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월호에 관한 그림들을 많이 봤지만 이런 그림은 처음이다. ‘이렇게 그려도 되나? 슬픔을 이렇게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해도 되나? 감히 노란 리본을 패션 소품처럼 활용하다니...’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다시 보니, 그 화려한 색감 속에 기순 씨의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다. 더할 수 없이 화려하고 강렬한 슬픔이다. 그녀의 특이한 정신세계가 통념을 깨는 예술적 감성으로 전해진다고 할까. 세월호 연작과 묘한 긴장을 일으키는 ‘죽음 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에는 이런 이야기가 첨부되어 있다.

농기구를 든 분노한 민중들이 궁전 안으로 쳐들어오기 직전이다. 마리 앙뚜와네뜨는 막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로, 마리 앙뚜와네트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창밖을 보고 있다. 창밖으론 단두대가 보인다. 단두대 아래론 그녀에게 익숙한 머리 하나가 데굴거리고 있다. 그녀 남편의 머리다. 민중들은 창 안의 마리 앙뚜와네트를 발견하고 어서 저 여자를 끌어내자고 더욱 함성을 높인다. 저 화려한 잠옷을 보라고, 자는 와중에도 온갖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빼지 않는 저 악독한 년을 보라고 민중들은 소리치며 그녀를 향해 거침없이 돌을 던진다. 덜컹덜컹, 궁전의 문이 열리기 직전이다.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녀의 얼굴빛은 이미 죽은 이의 것과 같다.
기순 씨 그림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달려있는 게 여럿 있다. 자기가 그린 그림 속의 여인들이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는 발상이 무척 흥미롭다. 화려한 패션의 ‘쎈 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기순 씨가 즐겨 그리는 ‘쎈 언니’들은 기순 씨의 전도된 자화상 같다. 자기에게는 없는 마르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스타일이 그녀의 그림에 일관성을 준다. 그런 스타일은 다른 사람을 그릴 때도 나타난다. ‘로사이드’가 북부시립병원에서 한 ‘함께 그리는 풍경’이란 프로젝트에서 기순 씨는 환자들의 옷과 배경을 화려하게 바꿔 그렸다.

이 프로젝트에서 기순 씨는 창작비로 한 명당 6만 원씩 받았다. 그게 최근에 한 유일한 알바였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수선집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봉제, 수선 기술을 배워서 수선집을 차리고 싶어요. 땡땡이 무늬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그런 분들에게 멋진 옷을 리폼해 드리고 싶어요."
기순 씨의 그림에는 그녀의 꿈이 담겨 있다. 수선집을 하며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옷을 화려하게 리폼해 주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헝클어진 정신줄을 멋지게 수선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그림 속 ‘쎈 언니’들이 입은 화려한 의상은 과연 그녀의 손에서 실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자기가 만든 멋진 옷을 입고 ‘쎈 언니’ 표정으로 당당하게 워킹하는 기순 씨의 모습을 꿈꿔도 좋은 걸까?
글쓴이 : 박정수.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2015),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2011)이라는 책을 썼지만 정작 정신분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문학 연구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