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노조 “근로기준법 위반, 무효” vs 중개기관 “법 지키기 어려워 양해 구한 것”
근로기준법 위반 조장하는 정부 제도, 갈등 원인

최근 일부 장애인활동지원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노무제도 운영 관련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제기됐다.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아래 활보노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서울 2곳, 경기 2곳, 부산 1곳 등의 활동지원 중개기관은 활동보조인들에게 ‘인사노무제도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게 했다.
합의서를 보면 먼저 중개기관과 활동보조인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로기준법’상 특례제도를 운영하도록 했다. 또한 필요한 경우 활동보조인이 유급휴일에 근무하되 이를 대체해 다른 날에 쉬거나, 중개기관이 연차 유급휴가를 대체해 현금 및 대체 휴일을 주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더해 지난해까지 발생한 연차휴가·미사용수당·근로자의 날 수당 등 미지급 금품채권에 대한 민형사상 이의제기를 하지 않도록 했다.
이에 대해 활보노조는 9일 중개기관에 합의서 작성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열었다. 합의서가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활동보조인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현민 노무사는 “합의서에 있는 법정 근로시간 특례, 유급휴일 근무에 대한 보상 휴가, 연차 유급휴가에 대한 대체 휴가 등의 내용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대표가 아닌 개인 근로자로부터 받은 동의는 효력이 없다”라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서면 합의는 무효다. 이에 따라 연차수당 등에 대한 미지급을 인정하는 합의서 조항 또한 무효”라고 설명했다.
부산 지역에서 합의서를 받은 활동보조인 당사자는 서면을 통해 “노무사를 입회시켜서 합의서를 강요받은 나와 다른 동료들은 갑(중개기관)의 힘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합의서를 제출하고 난 뒤 노동권 박탈과 임금체불이라는 불이익 앞에서도 갑의 눈치를 봐야 하는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당사자는 “근로기준법에 5인 이상 사업장에는 연차수당을 지급하도록 명시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중개기관은) 무효 합의서를 쓰게 하여 입막음용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활보노조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합의서를 제시한 해당 중개기관 측 노무사는 “활동보조인들과 함께 합의서에 대해 교육할 때, 제도적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해달라고 한 것이다. 강요는 아니”라며 “(활동보조인 노동권을 보장하지 못한) 책임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중개기관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개기관, 이용자, 활동보조인들이 서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정 최저임금조차도 보장하지 못하는 보건복지부의 활동지원제도가 중개기관과 활동보조인간 갈등의 원인이라는 점은 양자가 모두 인식을 같이했다. 이미 지난해 활동지원 수가 8810원으로는 활동보조인의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주 40시간 기준 113만 6920원, 2015년 최저임금 116만 6220원)이었고, 올해도 활동지원 수가가 190원 오른 9000원에 그쳐 최저임금 인상분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덕규 활보노조 교육선전부장은 “정부가 활동보조인 노동권을 고려하지 않고, 수가가 낮아 기관의 어려움이 많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중개기관이 정부가 조장하는 노동권 후퇴에 동참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중개기관도 노동권을 축소하는 행위가 아닌 정부의 활동지원 수가 인상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노동자와 함께 싸워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중개기관 측 노무사도 “제공기관 입장에서도 수가가 현실적으로 인상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활동보조인들에게 근로기준법을 모두 지키긴 어렵기 때문에, 복지부나 기획재정부에 수가를 현실화해달라는 협상을 하고 있다.”라며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수가 때문에 법정 수당을 지급하지 못해, 언제든 노동청 실사가 나오면 중개기관은 임금체불로 걸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