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우동민 활동가가 끊임없이 보낸 신호... 8년 만에 응답한 인권위

2019년에도 독자분들에게 장애계 소식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투쟁현장을 다녔습니다. 분이 넘치게도 ‘사진 끄트머리’라는 이름으로 올 한 해 담은 사진을 독자분들과 함께 톺아보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끄트머리는 사전적으로 끝이 되는 부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일의 실마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실마리’라는 단어를 보면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장을 이해하는 단서는 그 중심부가 아니라 헝클어진 실의 끝부분, 그러니까 현장의 가장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현장의 과정과 큰 관련 없이 눈길을 끄는 사소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가갈 때면 간혹 현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발판삼아 보도사진 밖으로 밀려난 사진, 또는 다뤄졌더라도 관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진을 모아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독자분들의 마음과 현장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핸드폰 화면에 ‘박김영희’라는 이름이 떠있다. 사진 박승원
핸드폰 화면에 ‘박김영희’라는 이름이 떠있다. 사진 박승원
 

“뚜르르르르”
“∙∙∙∙∙∙.” 

올해 12월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1월 2일 고(故) 우동민 활동가 8주기 추모식이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은 특히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참석해 8년 만에 우동민 열사의 죽음에 관한 책임이 인권위에 있음을 인정하며 사과한 날이기도 합니다.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1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 활동가들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올바른 제정과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 건물(당시 금세기빌딩 11층)을 점거했습니다. 인권위는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 갈등을 중재하고 최소한 인권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정작 인권위 건물 안에서 벌어진 농성에 개입할 때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농성장에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고 활동지원사 출입 및 식사 반입을 제한하는 등 인권을 과도하게 제한했습니다. 그런 탓에 농성 당시 활동가들은 독감 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뚜르르르르”
“∙∙∙∙∙∙.” 

당시 농성에 함께 참여했던 뇌병변 중증장애인 우동민 열사도 농성 도중 고열과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급성폐렴 증세가 악화돼 끝내 사망했습니다. 인권위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우동민 열사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끊임없이 부인해왔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최영애 위원장의 사과를 듣기까지 장애계는 인권위의 사과와 진상규명에 대한 책임을 촉구해 왔습니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들리지 않는’ 우동민 열사의 목소리를 쫓아 어떻게 계속 투쟁해 올 수 있었는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우동민 열사 8주기 추모제를 멀리서라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연대의 마음만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이례적으로 전화로 연대 발언을 한 활동가가 있습니다.

“뚜르르르르”
“네, 박김영희 입니다.” 

그날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_단 대표는 건강 문제로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 정도가 심해지는 탓에 박 대표는 기관지가 많이 축소된 상태라고 합니다. 바람이 차면 숨이 가빠져 외출을 삼가고 있고, 감기에 걸리면 가래가 기관지를 막을 수 있는 위중한 상황입니다. 바람도 얼어붙을 시기, 박 대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전화로 가쁜 숨을 온전히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날 박 대표는 “당시 우리는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는 국가기관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사회적 소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도할 수 있었다”라며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투쟁해온 역사를 잊지 않고 이어가는 일이 우동민 활동가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라고 전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마치, 박 대표의 목소리가 우동민 활동가의 발언처럼 들렸습니다.

지금도 열사들의 목소리는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 속에 파편적으로 남아 우리에게 시그널을 보내오는지도 모릅니다. 올해 비마이너는 장애해방열사 아홉 분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는 기획 연재를 진행했습니다. 수화기를 자처한 8명의 집필진이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이현준, 박기연, 우동민 활동가의 삶을 모으고 다시 조립하면서 여전한 시대의 차별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독자들에게 인기 없는 작업이지만, 앞으로도 열사들은 우리에게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올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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