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의 폐지’라면서 예산 반영 없는 정부,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

2019년에도 독자분들에게 장애계 소식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투쟁현장을 다녔습니다. 분이 넘치게도 ‘사진 끄트머리’라는 이름으로 올 한 해 담은 사진을 독자분들과 함께 톺아보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끄트머리는 사전적으로 끝이 되는 부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일의 실마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실마리’라는 단어를 보면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장을 이해하는 단서는 그 중심부가 아니라 헝클어진 실의 끝부분, 그러니까 현장의 가장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현장의 과정과 큰 관련 없이 눈길을 끄는 사소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가갈 때면 간혹 현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발판삼아 보도사진 밖으로 밀려난 사진, 또는 다뤄졌더라도 관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진을 모아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독자분들의 마음과 현장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7월 1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 선포를 외친 1,500여 명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회보장위원회 앞으로 찾아가 1박 노숙농성을 벌였다. 박문규 노들 활동가가 노숙농성을 위한 천막을 설치하는 모습. 사진 박승원
7월 1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 선포를 외친 1,500여 명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회보장위원회 앞으로 찾아가 1박 노숙농성을 벌였다. 박문규 노들 활동가가 노숙농성을 위한 천막을 설치하는 모습. 사진 박승원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장밋빛 홍보와 달리 장애인 당사자들은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충분한 예산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에 장애등급제 폐지 첫날 1,500여 명의 장애인활동가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들은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시작해 잠수교를 지나 서울역까지 행진했습니다. 한낮 온도가 30도까지 치솟았지만, 이들은 8.8km에 달하는 땡볕을 통과해왔습니다. 서울역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까지 한 시간가량 행진해 그곳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발언을 이어가는 동안 한 편에는 노숙농성을 위한 천막 설치가 한창이었습니다. 천막에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 확보,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찾아 삼만리’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10월부터는 기재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으로 장소를 옮겨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복지 예산을 제대로 편성해달라며 기재부 장관에 면담을 요청하는 이들의 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쯤이면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장애등급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9년의 해가 저뭅니다. 힘들게 달려온 자신을 토닥이며 잠시라도 쉼 있는 하루 보내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펼친 장애인 활동가들은 2일 오전 10시부터 ‘법정∙비법정 장애단체 차별책동 박능후 장관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쳐 잠들어 있다. 사진 박승원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펼친 장애인 활동가들은 2일 오전 10시부터 ‘법정∙비법정 장애단체 차별책동 박능후 장관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쳐 잠들어 있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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