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휠체어 탄 사람이 어떤 한 사람과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위에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여러가지 즐거움 중에는 성적인 즐거움도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휠체어 탄 사람이 어떤 한 사람과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위에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여러가지 즐거움 중에는 성적인 즐거움도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지난 20년간 진보적 장애인운동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장애인 차별의 원인이 개인의 장애 상태가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주장하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었다. 즉, 휠체어 탄 사람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휠체어 탄 사람도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 확장될수록 “몸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멀어진 측면이 있다.”1) 특히 장애여성의 몸은 사회적 차별 속에서 더욱 은폐됐다. 이야기되더라도 장애여성은 성폭력 피해자로 대상화되거나, ‘섹슈얼하지 않은 몸’으로 성적 존재에서 박탈당했다. 장애여성의 삶의 조건/위치가 지난 20년간의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성과에 비례해 ‘나아졌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이 사회 ‘시민/사람’의 기본값이 ‘이성애자 비장애인 성인 남성’이듯, 장애인운동의 주어는 당연히 ‘장애인’이나 더 정확히는 ‘장애남성’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발 더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성과 재생산’을 사적 영역으로 밀어 넣은 것처럼 포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사적 영역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정상 섹슈얼리티의 권력’을 공적인 차원에서 구성해왔다. 성과 재생산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노동을 할 수 있는 표준적 인구 재생산의 주요 동력이기 때문이다. 성과 재생산은 자본주의 통치에서 실질적으로는 ‘인구 관리, 가족 관리’라는 공적 이슈로 다루어져 왔음에도, 표면상으로는 부차적 문제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 인간’(장애인)은 출산, 양육을 비롯한 노동력 재생산을 할 수 없는 몸이니, 성과 재생산 논의에서조차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인권운동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젠더 문제는 정말 부차적 문제인가? 최근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의 문제를 비롯해 권력형 성폭력, 미투 운동, N번방 사건까지, 젠더 문제는 인권의 부차적 문제가 아니라, 인권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장애인운동 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젠더 문제는 성폭력 문제에 한해서 이야기되거나 ‘장애남성’의 성서비스라는 지엽적 문제로 논의될 뿐이다. 그 논의 속에서 장애여성은 ‘취약한 존재’로서 대상화되었을 뿐, 고유한 서사를 가진 발화의 주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여성은 장애인이기에 차별당하고, 여성이기에 차별당하는 ‘이중 차별’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고 여성인 ‘장애여성’이라는 교차적 정체성으로 그만의 고유한 경험과 차별을 겪는다는 말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장애인운동의 오래된 명제,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존 맥라이트)는 말을 기억한다. 이에 따라 성과 재생산 문제를 장애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말하고 다시 정의함으로써 여기에서 시작하는 혁명에 대해서 가늠해보려고 한다.

-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이번 기획은 비마이너, 장애여성공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아래 셰어)가 공동기획하였다.

1998년 창립한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장애인운동 안에서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난 20여 년간 줄곧 이야기해왔다. 이들은 장애여성 섹슈얼리티의 특수성과 차별받는 위치성을 구조적으로 드러내면서, 이제까지 금기시된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권, 성적 권리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왔다. 셰어는 2016년에 결성한 ‘성과 재생산 포럼(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Forum)’을 전신으로 2019년에 설립되었다. 페미니즘과 퀴어운동, 장애인운동 등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권리를 확장하는 운동을 해왔으며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기획연재는 1,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장애여성공감이 기존 장애인운동 안에서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얼마나 협소하게 이야기되었는지를 짚으며,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제기한다.

2007년 제도화된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촉진하는 혁명적 제도로 평가되었다.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 전반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장애인과 활동지원사)은 사생활의 상당 부분을 서로 공유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친밀성의 문제, 신변보조를 받는/보여지는 장애인의 몸, 신체적 접촉과 성폭력, 통제와 돌봄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수가 문제 등에 가려져 부차적 문제로 취급되었다.

또한, 탈시설-자립생활의 주체로 발달장애인의 문제가 떠오른 만큼 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의 문제도 이야기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자조단체인 피플퍼스트운동이 대두되면서 발달장애인의 선택과 자기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발달장애인의 성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율과 통제의 관점이 지배적이다. 성교육 또한 ‘규범적 내용들을 어떻게 잘 교육할 수 있을지’의 관점으로 이뤄진다. 통제와 규율을 넘어선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그리고 탈시설과 함께 ‘장애인거주시설과 섹슈얼리티’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거주시설 경험이 있는 장애여성들을 만나 시설 내에서 통제·억압되었던 이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장애여성과 장애남성의 성은 시설 내에서 각각 어떻게 규율화되고 구축되는지 살펴본다.

1부 연재가 끝난 후에는 장애인운동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에서 성적 권리를 주요의제로 다루기 어려운 현실을 짚고 개선해나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진행한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셰어가 ‘낙태죄 폐지 이후에 장애/장애인의 재생산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며, 2부 끝에는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의 자기낙태죄 조항(제269조 제1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두 조항은 올해 12월 31일까지 개정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2021년부터는 효력을 잃게 된다. 이와 함께 관련 조항인 모자보건법 제14조 또한 개정되어야 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팔에 형법 제269조(낙태) 조항이 쓰여 있고, 그 위에 붉은색으로 엑스가 쳐있다. 사진 나영
팔에 형법 제269조(낙태) 조항이 쓰여 있고, 그 위에 붉은색으로 엑스가 쳐있다. 사진 나영

낙태를 범죄시하면서도, ‘본인이나 배우자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엔 낙태를 허용한다’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국가가 어떤 낙태는 허용하고, 어떤 낙태는 허용하지 않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여전히 우생학적 인식이 인구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우생학적 인식은 모자보건법뿐만 아니라 과거 가족계획과 오늘날의 산전검사, 보조생식기술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법 개정으로 형법에서는 낙태죄가 사라진다고 해도 향후 의료현장이나 의료법 등에서 우생학적 사유는 작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낙태죄 개정에서 장애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며, 개정 이후 ‘장애인의 재생산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사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재생산권’이라는, 우리사회에 여전히 낯설지만 필요한 개념을 주요 키워드로 사용한다. “흔히 재생산권을 모성권으로 축소, 이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단지 강제 불임시술이나 모자보건법의 우생학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 허용 조항 등으로 대표되는 명백한 인권침해를 금지하는 것만으로 확보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며, 장애여성의 삶에서 출현하는 다양한 맥락의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2) 따라서 낙태에 대해 “‘생명권 대 선택권 구도’를 넘어서 국가의 인구정책에 대한 분석을 수행할 필요가 있으며, 생명권 논의에 내재된 생명의 위계와 정상성 개념을 비판하고, 기존에 비장애/이성애/기혼여성의 출산 중심으로 진행된 재생산권 담론의 관점을 전환하고, 재생산권을 임신․출산의 사건이 아닌 생애 전 과정 속에서 확보되어야 할 권리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3)

이 연재의 제목은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이다. 흔히 ‘성을 밝힌다’고 하면 성을 탐닉하고 향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밝힌다(조명하다)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었는데 드러나지 않던 것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존 의미에 기대어 성적 폭력의 대상이거나 보호·통제의 대상이었던 장애여성이 성을 향유하고 즐기는 주체로 ‘조명되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 나아가 재생산의 영역에서 늘 아래에 있던 ‘장애’가 위로 올라타는 ‘장애상위’, 즉 전복적 시도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성과 재생산을 우리의 언어로 새롭게(革) 이름짓는(命), 나름의 혁명(革命)적 시도이다. 뜨거운 여름 속에서, ‘성과 재생산’을 깨물고 빨고 핥으며 제대로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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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2013, 16쪽
2) 『배틀그라운드』, 백영경 외 11명, 후마니타스, 2018, 9쪽
3) 위의 책, 9쪽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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