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거주시설, 전 세계 코로나19 진앙지로 지목돼
UNCRPD 23차 세션에서 탈시설워킹그룹 꾸려, 긴급 탈시설 요구

2일 오후 10시 30분, 한국장애포럼이 보건복지부,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UN CRPD)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 ‘코로나19와 CRPD 19조; 장애포괄적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한 CRPD 촉진’을 열었다. 이날 회의는 오프라인 참여자는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4층 대강당에서, 각국 참가자들은 줌(zoom)을 통해 참여했다. 사진 허현덕
2일 오후 10시 30분, 한국장애포럼이 보건복지부,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UN CRPD)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 ‘코로나19와 CRPD 19조; 장애포괄적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한 CRPD 촉진’을 열었다. 이날 회의는 오프라인 참여자는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4층 대강당에서, 각국 참가자들은 줌(zoom)을 통해 참여했다. 사진 허현덕

“코로나19 감염 상황은 국가나 사회마다 차이가 있음에도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동일하게 비인도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사실이다.” (코로나19 대응 보편적인 긴급 탈시설 요구 공동 성명서 중)

전 세계 장애계가 코로나19로 선명하게 드러난 집단시설 거주에 대한 문제점을 짚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긴급 탈시설’을 요구했다.

2일 오후 10시 30분, 한국장애포럼이 보건복지부,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아래 UN CRPD)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 ‘코로나19와 CRPD 19조; 장애포괄적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한 CRPD 촉진’을 열었다. 이날 회의는 오프라인 참여자는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4층 대강당에서, 각국 참가자들은 줌(zoom)을 통해 참여했다.

# 집단시설 코로나19 ‘진앙지’

- 시설거주인, 정부의 지원·정보 제공 없이 고립된 채 코로나19 견뎌

회의에서는 134개국의 코로나19 피해상황과 장애인권에 대한 조사 내용이 발표됐다. 장애인권모니터링(Covid-19 and Disability Rights Monitoring)의 ‘코로나19 장애보고서’에 따르면 시설 내 거주자 대상으로 비상사태에 대한 안내와 조치가 잘 이뤄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33%가 ‘정부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기숙학교에 있는 장애학생 44%도 정부에서 특별한 조치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엘럼 유세피안 IDA 이사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정보접근이 매우 떨어지고 있다. 시설거주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기본 정보를 들을 수 없고, 종사자를 통해서도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수용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특히 코로나19로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되다 보니, 정신병원의 경우 84%의 응답자가 가족관계가 단절됐음에도 이에 대해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시설과 시설거주인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온전히 시설에 결정을 떠맡긴 채 감시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참가한 각국 참가자들의 모습. 사진 줌 캡처
온라인으로 참가한 각국 참가자들의 모습. 사진 줌 캡처

캐나다 온타리오의 한 장기요양시설에서는 95%(시설 종사자와 거주인 포함)가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됐다. 그러나 시설 내에서의 감염도 평등하지 않았다. 감염자 중 80%가 시설거주인이었다. 질리안 파렉 요크대학 교수는 “캐나다는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돌봄시설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시설에서는 사회적 지원을 할 수 없고 입소하게 되면 더욱 고립되는 경향을 띤다. 거주인과 지원자 간의 위계질서와 지원인력부족은 시설거주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코로나19 집단감염, 정신장애인의 취약성 다시 한번 확인

한국은 2020년 9월 말 기준 등록장애인 260만여 명 중 1299명(0.0496%)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전체 인구 중 비장애인 확진 비율(0.0445%)과 장애인 확진 비율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장애인 중에서 정신장애인 확진자 비율이 높았다”며 “장애인 확진자 1299명 중 정신장애인이 141명(10.9%)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도 시설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극심했다. 사랑의 열매 나눔문화연구소의 ‘시설 내 집단 감염에 대한 민간 연구소 자료’(2020. 7. 15. 기준)에 따르면 △요양병원 7곳(385명) △폐쇄병동 정신의료기관 3곳(330명) △일반 의료기관 3곳(127명) △종합병원 1곳(37명) △장애인거주시설 2곳(36명) 순으로 확진자가 많았다.

조민제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제2미주병원은 확진자가 196명이고 대실요양병원 확진자는 100명이었는데 두 병원은 같은 건물에 있다. 결국 한 건물에서 296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라며 “청도대남병원은 총 114명이 확진자로 나타났는데 노인전문병원, 대남병원, 보건소, 요양원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구조였다. 이런 구조에서 5층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103명 환자 전원이 확진자가 됨으로써 정신의료기관의 폐쇄적 환경이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제시했다.

오프라인 참가자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각국 참가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오프라인 참가자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각국 참가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코로나19에 대한 기초적 통계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프레토리아대학 장애인권부 이노센시아 음지지마-코노피 씨는 “장애인 코로나19 데이터와 통계 자료 자체가 필요하다”라며 “다만 장애인시설, 그중에서도 특히 심리·사회적 장애인시설에서 감염률이 매우 높고 인권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전했다.

# 지금 바로, 긴급 탈시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가 26개국의 △장애인 거주시설 △요양시설 △정신병원 △장애아동 기숙학교 등 장기·집단시설을 조사한 ‘케어홈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통계(2020년 6월)’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중 집단시설 거주 사망자가 약 4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 비율은 벨기에(50%, 4851명), 캐나다(85%, 6236명) 등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뉴질랜드나 슬로베니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사망자 숫자는 적었으나, 집단시설 거주인 사망자 비율은 각각 72%, 81%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열린 UNCRPD 23차 세션에서 탈시설워킹그룹이 꾸려졌다. 요나스 루스커스 UNCRPD 위원은 “시설에 있는 분들은 코로나19의 진앙지에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 탈시설워킹그룹이 만들어진 만큼, 긴급 탈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이드라인과 롤모델을 마련해 아시아, 유럽 등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겠다”라며 “이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들과 장애인대표기관이 어떻게 탈시설에 참여할 수 있을지 개념화해서 실제적인 규정과 법, 정책을 만들고 자립생활을 도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긴급 탈시설 개념에 대해 나디아 하다드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 이사와 이네스 불리쉬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 사무총장이 설명했다. UN CRPD 11조에서는 위험상황과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에서 장애인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19조에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9조의 일반논평5에서는 당사국이 긴급 탈시설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력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간사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간사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이네스 불리쉬 사무총장은 “긴급 탈시설에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탈시설이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체제라는 건 확실하다”라며 “긴급 탈시설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시설에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이라도 시설에 나와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추가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긴급 탈시설의 핵심요건으로 △주택/개별맞춤 △활동지원 △장애연금(소득보장) △동료지원 등을 꼽았다. 이러한 요건이 갖춰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간과 계획, 적절한 예산 마련과 모든 종류의 고립, 배제, 시설화를 없애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신장애 및 발달장애인, 장애아동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나디아 하다드 이사는 “장애포괄적 SDGs 이행 주체인 장애인운동단체와 모든 이해관계자를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 긴급 탈시설의 역량을 구축할 수 있다”라며 “코로나19 대응 방안에서 당사자와 당사자단체가 주체가 되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코로나19 대응 보편적인 긴급 탈시설 요구 공동 성명서-코로나29 팬데믹시대, 시설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를 함께 낭독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 [공동성명] 코로나19 팬데믹시대, 시설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