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에서 ‘인과관계 추정조항 삭제’ 등 대폭 수정해 원안 취지 훼손 우려
“산재·시민재난참사 막기 위해 10만 국민 동의한 원안 그대로 법 제정해야” 

4일 오후 2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주최로 단식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국회 정문 앞에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식 농성 8일차인 김선양 고 김재순 노동자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4일 오후 2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주최로 단식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국회 정문 앞에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식 농성 8일차인 김선양 고 김재순 노동자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국회 안팎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모여 국회에 원안대로 법 제정을 촉구했다. 

4일 오후 2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주최로 단식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국회 정문 앞에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스텔라데이지호, 대구지하철참사, 그리고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재난 인하대학생 등 피해자 가족과 당사자들이 참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기업 등 불특정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난 경우에도 기업과 공무원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재난참사 피해자들도 함께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말만 무성할 뿐, 2020년 연내 처리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8일 국회 임시회기 마지막 날까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12월 28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에서는 원안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안에는 △특정한 경우 경영책임자가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인과관계 추정 조항’ 삭제 △중대재해 기준을 국민동의청원 법안의 기준보다 인하(사망자 1명→2명) △법 적용 유예 대상 확대(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 포함) △책임 공무원 범위 제한(직무유기죄 해당할 때만 적용) 등 기존 원안의 내용이 대폭 축소됐다. 특히 책임 공무원 범위를 제한할 경우, 시민재해의 주요 원인인 불법적 인허가 등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이에 대해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국회가 오히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를 훼손하려고 한다”라며 “지금도 기업과의 결탁에 의한 위험한 인허가가 이뤄지지만, 정부와 국회는 인허가나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 처벌조항을 삭제하자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참사가 발생해도 기업의 손해가 적으니 기업들이 위험을 방치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삭제하거나 형량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이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피해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또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이 아픈 현실을 알게 되었다”라며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대로 제정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당사자인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총연합 대표가 산소통을 메고 발언을 하고 있다. 뒤편에는 '더 이상 일하고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사진 이가연
가습기살균제 피해 당사자인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총연합 대표가 산소통을 메고 발언을 하고 있다. 뒤편에는 '더 이상 일하고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사진 이가연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당사자인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총연합 대표가 어깨에 산소통을 멘 채 가쁜 호흡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조 대표는 “평범하게 일하다가 산소를 꽂고 고칠 수 없는 환자로, 한 가정을 망가트린 죄인으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어 “힘든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산재도 모른 채 (기업의 물건을) 단지 신뢰로 구매하고 사용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이를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윤리를 져버렸으며, 이로 인해 국민들은 허망한 죽음과 고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라며 “가습기살균제참사는 대기업이 내던진 전형적인 현재진행형 참사다. 법을 어긴 자는 작든 크든 그 크기에 비례한 배·보상, 처벌, 사죄해야 한다”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피해자 유예은 씨의 아버지 유경근 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정식 명칭은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이다. 생명과 안전 앞에서 재해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명백히 산업재해가 아닌,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인 우리가 이 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위원장은 “국회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산업재해예방과 기업 처벌만을 위한 법처럼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하려 하고 있다. 이는 ‘시민의 안전권 확보와 중대재해사고 방지’라는 법의 근본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목숨 걸고 일터로 나가고, 목숨 걸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하고, 목숨 걸고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둘 수 없다. 원안대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적으로 하는 법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고 김재순 장애인 노동자의 아버지 김선양 씨는 단식 농성에 돌입한 지 오늘부로 8일째가 되었다. 김 씨는 “유족들은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시키는 일 하다 죽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으며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며 30여 일 가까이 곡기를 끊고 있다”라며 “더 이상 국민과 시민, 노동자와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 기업주와 사업주를 보호하는 법안이 아닌, 그 누구의 눈치도, 말도 듣지 말고 10만 국민청원으로 발의된 원안 그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꼭 제정해달라”라고 호소했다.

4일 오후 2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주최로 단식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국회 정문 앞에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4일 오후 2시, 단식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국회 정문 앞에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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