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발생 80%가 50인 미만 사업장
장애인노동자 70%,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
김재순 사망 1년, 장애인노동자는 출근할 때마다 여전히 목숨 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면죄부 주는 중재법 바뀌어야

오는 22일은 고 김재순 장애인청년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장애해방열사 단은 21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김재순 씨 1주기 추모제를 열고 고인을 추모하며 장애인노동자가 아직도 안전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룸센터 앞에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쟁취를 위한 농성장이 있으며, 21일로 농성 73일을 맞이했다.

고 김재순 씨 사진 앞에 향이 피워져 있고 국화 여러 송이가 놓여 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 현장. 현수막에 ‘장애청년노동자 고 김재순 동지 1주기 추모제’, ‘조선우드 사업주 처벌! 중대재해처벌법 제개정! 죽음의 노동을 넘어 권리를 노래하는 노동으로!’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국화 그림이 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 현장. 현수막에 ‘장애청년노동자 고 김재순 동지 1주기 추모제’, ‘조선우드 사업주 처벌! 중대재해처벌법 제개정! 죽음의 노동을 넘어 권리를 노래하는 노동으로!’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국화 그림이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노동자 목숨은 파리목숨… 출근할 때마다 목숨 걸어야 한다

지적장애인인 고 김재순 씨는 작년 5월 22일, 광주 조선우드 공장에서 홀로 합성수지 파쇄기에 올라가 폐기물을 제거하다 파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사인은 다발성 분쇄손상이다. 사망 당시 25살이었다.

김재순 씨의 죽음은 전형적인 산업재해다. 합성수지 파쇄 작업은 고위험 작업이라 적어도 2인 1조가 작업해야 했지만 김 씨 혼자 작업을 수행했다. 비상 정지 리모컨, 추락을 방지할 작업발판 등 안전장치도 전무했고 안전모, 안전화 같은 보호장구도 없었다.

작년 5월 15일, 고 김재순 씨가 상부(호퍼)에서 분쇄기를 가동해 점검하고 있고, 사수의 역할을 한 배부장이 아래에서 굴착기로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고 김재순 산재사망 사고 진상조사 2차 중간보고서
작년 5월 15일, 고 김재순 씨가 상부(호퍼)에서 분쇄기를 가동해 점검하고 있고, 사수의 역할을 한 배부장이 아래에서 굴착기로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고 김재순 산재사망 사고 진상조사 2차 중간보고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노동현실도 김재순 씨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 씨는 조선우드에서의 업무가 힘들어 퇴사했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3개월 만에 조선우드로 돌아갔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 장애인을 채용하는 사업장이 많지 않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김재순 씨는 조선우드에 취직할 때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장애인이 노동할 곳이 너무 없다. 괜찮은 일자리를 갖는 게 힘들다. 그 현실이 만들어낸 사태가 김재순의 죽음이다”라고 성토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은 더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산재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죽고 다쳤다. 그런데 장애인노동자의 68.2%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조선우드도 10인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이었다.

이처럼 장애인이 ‘죽음의 노동’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장애인노동의 사고 발생률도 높은 상황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19년 기업체 장애인 고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 기업체의 연간 사고 발생률은 0.8%다. 전체 근로자의 사고 발생률 0.5%보다 1.6배 높다. 조재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권익옹호팀장은 “장애인의 목숨이 파리목숨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노동하기도 어렵지만 노동권을 실현하기도 어렵다”며 장애인이 안전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개정하고 노동의 판때기를 갈아엎자”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개정하고 노동의 판때기를 갈아엎자”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 산재사망에 면죄부 주는 중재법… 장애계 “제개정 투쟁 전개할 것”

고인의 아버지 김선양 씨를 포함해 노동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여러 유가족이 단식농성을 하는 등 끈질기게 싸운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경제계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축소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는 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는데, 통과된 법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3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발주처에 안전보건의무를 부여하는 조항도 담기지 않았고 산재은폐를 시도한 경영 책임자 등에 노동자 사망에 관한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 추정조항도 삭제됐다.

추모제에 참가한 한 활동가가 국화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에 참가한 한 활동가가 국화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에서는 이와 관련한 비판이 이어졌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문제점이 많은 이 법에 대한 제개정 투쟁과 함께 본래 법안 취지에 맞는 시행령 제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태 정태수추모사업회 회장은 “50인 이상 대기업은 돈이 많아서 비교적 안전장치를 다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재순 씨는 이윤 때문에 죽음의 구렁텅이에 혼자 내던져졌다. 한 사람도 더는 죽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중대재해처벌법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검찰은 박상종 조선우드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하고 지난 3월에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오는 28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아버지 김선양 씨는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박 대표를 법정구속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고 김재순 씨의 아버지 김선양 씨가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선양 씨가 든 피켓에는 ‘광주지방법원 판사님, 아들 김재순을 죽게 하고도 잘못을 부인하는 살인기업 (주)조선우드 사업주를 법정구속해 주십시오. 고 김재순 노동자 아비 김선양’이라 적혀 있다. 사진 김선양 씨 제공
고 김재순 씨의 아버지 김선양 씨가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선양 씨가 든 피켓에는 ‘광주지방법원 판사님, 아들 김재순을 죽게 하고도 잘못을 부인하는 살인기업 (주)조선우드 사업주를 법정구속해 주십시오. 고 김재순 노동자 아비 김선양’이라 적혀 있다. 사진 김선양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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