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평택시, F등급 받은 시설에 사망사건 발생 전까지 조치 전무
시설 원장, 장애인 복지급여 가로채고 학대한 정황
국가·지자체·원장에 책임 묻는 손해배상소송 제기

22일 오전 11시, 장추련 등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삼거리 앞에서 미신고시설 장애인 사망 사건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 및 사랑의집 원장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경기도 평택 미신고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인 사망 사건 피해자 유족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시설 원장에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3월 8일, 경기도 평택 포승읍에 있는 미신고시설 평강타운에서 한 지적·지체 중복장애인이 활동지원사로부터 폭행당해 사망했다. 피해자는 12년 전 개인운영시설인 사랑의집에 입소했지만, 사망 당시에는 바로 옆에 있는 불법 미신고시설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사망 후 사랑의집 원장이 미신고시설을 통해 장애인 복지급여를 가로채고, 거주인을 지속으로 학대한 정황도 드러났다. 활동지원사에게 폭행을 지시하고, 활동지원사의 급여를 가로챈 의혹도 있다. 

22일 오전 11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애인권클리닉 등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삼거리 앞에서 미신고시설 장애인 사망사건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 및 사랑의집 원장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남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장애인권클리닉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복지부·평택시, F등급 받은 시설 사망사고 발생 전까지 조치 안 해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인을 학대한 원장뿐 아니라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하지 않고 방치한 평택시와 대한민국에도 책임이 있다’며, 소송의 의미를 밝혔다.  

지난 2019년 복지부는 사랑의집 현장 방문조사에서 ‘사회복지시설 평가’ 모든 항목에 F등급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복지부 담당 공무원들은 이번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평택시 소속 공무원들도 미신고 시설 운영에 관해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점검하고 시설폐쇄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소송대리인 김남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장애인권클리닉 교수는 “국가가 사랑의집에 방문조사까지 했는데도 시설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어떻게 한 지붕아래 불법시설이 있는데도 국가가 수년간 방치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한국 법원은 사망상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경우, 일실수익(경제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수익)에 해당하는 보상금은 근로능력을 통해 판단해서 중증장애인은 충분한 배상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이번 소송에서는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주장하겠다”라고 밝혔다. 

개인운영시설의 운영의 문제점 총체적으로 드러나

이번 사건이 시설 양성화정책에서 비롯된 개인운영시설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복지부는 2002년, 미신고시설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미신고시설에 대한 3년간의 처벌유예기간을 주고, 신고기준을 완화하는 조건부 신고를 도입하는 등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을 펼쳤다. 사랑의집과 같은 개인운영신고시설도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따라 완화된 신고요건이 적용된 시설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의 허술한 관리·감독은 바로 옆에 미신고시설을 꾸리고 운영자와 시설 거주 장애인을 활동지원사로 등록해 활동지원서비스를 악용하는 것도 포착하지 못했다. 

사건 직후 장애계는 전국의 미신고시설 즉각 폐쇄를 촉구하며, 자립지원 대책마련과 미신고시설관리지침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거주인을 다른 시설로 전원시키는 지자체 조치를 방관하거나 미신고시설을 공동생활가정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유도해 면죄부를 줬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국가와 지자체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수용시설 정책을 폐기해 시설에서 억울하게 죽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피해 장애인의 동생 김경태(가명)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아무도 관심 없던 우리 형…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해야”

기자회견에는 피해 장애인의 동생인 김경태(가명) 씨도 참여했다. 김 씨는 울먹이며 “이 자리에 오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우리 형에 대해서 관심도 안 가졌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 끝에 이 자리에 오게 됐다. (사랑의집 원장이) 꼭 정당한 처벌을 받게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게끔 국가에서 제발 (유족의 목소리를)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15년 전 탈시설한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시설에서는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고, 먹을 것을 주면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이 맞아도, 내부 직원들이 알리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사건처럼 사람이 맞아서 죽어야지만 문제가 드러난다”라며 “하루빨리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강조했다. 권 대표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벌써 다 되었는데도 아직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게 개탄스럽다. 경기도와 평택시가 관리·감독을 잘못하고, 대한민국이 거주시설 정책을 확대한 데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라며 “작년 12월, 탈시설지원법안이 68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탈시설지원법이 제정돼 더 이상 거주시설이 존재하지 않게 국회와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활동지원사 정 아무개 씨는 작년 11월 20일, 1심에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10년의 반 토막 수준인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사랑의집과 평강타운 두 시설 모두 폐쇄되었지만,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에 불복한 원장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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