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범죄화 - 문제점과 대안’ 연속강좌 ④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에서 4월 20일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감염병과 범죄화-문제점과 대안’ 연속강좌를 진행합니다. 강좌에서는 감염병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과 범죄화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합니다. 비마이너는 이 강좌를 수강하는 인권활동가들의 후기를 싣습니다.
[ 강의 순서 ]
① 감염병과 범죄화의 역사 - 혐오, 낙인, 공포를 규율하기 : 추지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② 감염병과 감금, 격리, 사회적 배제 : 김현철(토론토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③ 감염병과 차별: 코로나19와 HIV를 중심으로 : 윤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서채완(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④ 확진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 최규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⑤ 감염병과 관계성: 돌봄과 친밀성을 어떻게 재구축할까 : 서보경(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⑥ 대만의 HIV 감염인 비범죄화 운동 : 두스청(대만통츠핫라인), 아이보리(대만감염인인권연합회)
* 이 글은 5월 11일 진행된 최규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님의 ‘확진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속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졌지만, 일상을 잃은 무력감과 분노를 오고 가는 시간 속에서 감염병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것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대응 방법을 찾고자 함이기도 하지만, 종종 특정 대상/집단을 표적해 전파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기도 한다. 방역조치의 일사불란한 실천의 요구는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한 공존과 연대의 제안만은 아니다. 방역조치를 따르지 않(못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도덕적 비난이 아닌 진압과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세균 총리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며 “불법행위자 즉시 검거1)"를 주문했고, 클럽과 지역에서 코로나 확산이 우려되면 ”감염폭탄 막아2)“내라며 경찰과 정부의 합동단속을 실시하고 ”확진자 부주의·무책임이 폭탄3)“이라며 비난했다.
감염병예방법을 비롯해 재난안전관리기본법, 테러방지법까지 동원해 감염병 환자와 감염병 의심자가 방역수칙을 위반했을 때 형사처벌을 높이려는 개정 시도들이 이어졌다. 강도 높은 처벌이 감염병 예방에 효과적일까?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회의 적이 되고 각자의 실천 가능성을 살펴보지 않은 채 방역수칙 위반만으로 범죄자가 된다면 이들 미래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서로를 돌보고 회복을 기원하기보다 감시와 처벌이 가장 우선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안전한 삶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감염병의 명명과 지목이 숨기는 것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의 강의 ‘확진자는 범죄자가 아니다’는 감염병의 발생과 대응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서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접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안을 한다.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과 함께했으며 문명의 변화와 몰락 등 인류사의 변화에 감염병의 영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감염병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맥닐(William H. McNeill)의 ‘미시기생’, ‘거시기생’의 개념을 통해 살펴봤다.
미생물(병원체)이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미시기생이다.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먹이를 얻어 번식에 성공하고 다른 숙주로 이동하며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감염이다. 농경의 시작과 함께 인류는 밀집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환경의 변화를 겪는데 이는 미생물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기도 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감염병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생태계의 먹이사슬이나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면서 에너지와 자원을 빼앗아가는 관계를 거시기생이라 한다. 식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부와 기술을 축적한 약탈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생산자들로부터 식량을 수탈하고 일하는 자들에게 의존하는 새로운 기생체였다. 지배집단은 피지배집단을 약탈하고 착취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는데 과도한 착취는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적절한 수준의 수탈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피지배계급의 생산 경제에 기생하는 사회구조 속에 착취는 피지배계급의 건강을 약화시켰다. 피지배계급은 건강과 환경이 나빠질수록 감염병에 취약해지고 노동력과 건강을 상실하게 됐지만, 지배계급은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범인’을 지목할 필요가 있었다.
페스트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때 유대인과 마녀를 지목했던 것처럼 콜럼버스의 대항해 시대, 유럽에서 매독이 확산하자 사람들은 이를 ‘신대륙병’이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유럽의 전염병과 학살로 목숨을 잃었는데 오히려 ‘신대륙병’이라며 매독 감염 원인으로 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지목한 것이다. 동시에 유럽 국가 간 전쟁에서 군인들에 의한 성범죄로 매독이 확산하자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이 병을 ‘프랑스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에선 ‘이탈리아병’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침략과 전쟁은 민중을 약탈하면서 감염병을 확산시켰다. 지배 세력은 책임을 전가하는 이름을 붙이면서 근본적인 원인을 감추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했다.
감염병의 명명과 지목의 역사를 확인하면서 2020년에도 여전했던 모습이 겹쳐진다.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코로나19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한 폐렴’을 고집하는 집단은 중국인을 비난하고 혐오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대상 증오 범죄와 인종차별 행위가 증가했다. 최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국가명을 딴 변이 바이러스 이름이 해당 국가에 낙인을 찍고, 차별을 유발할 수 있어 국가명을 빼고 그리스 알파벳을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단속과 처벌이 만들어내는 혐오
역사상 감염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감염인에 대한 혐오를 키웠다. 대표적으로 유대인이나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들을 통제함으로써 감염병의 확산을 제어할 수 있다는 반인권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은 이들 역시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권리와 보호가 필요하고, 감염병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강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해 전염병 접근방식에 대한 시사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는 경찰이 감염병을 감시하고 단속했다. 경찰이 강압적으로 단속하니 조선사람들은 숨어버렸고 일제가 조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기보다는 감시와 단속 같은 억압적인 방식을 동원했기 때문에 오히려 감염병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일제의 잘못된 감염병 관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한센병 환자들을 사회와 분리하고 강제 낙태와 불임수술을 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의학과 미생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기생하는 미생물을 관리하면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했지만 이런 개별적인(미시기생적인) 접근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사람을 바이러스와 동일하게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방역은 바이러스의 경로를 따라 추적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삶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고,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사람을 차단하게 된다. 이 과정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바이러스의 차단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과 행정을 만들어낸다.
치료제와 백신이 해결할 수 있을까?
최규진은 사회적이며 구조적인 접근(거시기생적 관점)과 인권적 관점으로 감염병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도시로 노동인구가 집중하게 되었는데 비위생적인 환경은 전염병의 확산을 가져왔고 가난과 노동착취는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이 1842년에 낸 ‘영국 노동자의 위생상태에 관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평균 수명이 17세였다. 이때 이르러서야 미시기생과 거시기생의 균형을 위해 아동노동을 제한하는 공장법과 급수 및 하수 처리시설을 개선하는 공중보건법이 만들어졌다. 이후 제국주의 시대 세균학이 발전하면서 지배계급은 거시기생적 접근을 외면하고 미시기생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결핵의 사례처럼 백신과 항생제의 개발(미시기생적 접근)만으로 감염병이 감소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농업생산량이나 위생 상태와 같은 환경의 변화가 결국 결핵 감소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정책 역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국가는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를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바꾸지 않은 채 처벌의 위협만을 강요하고 있다. 감염병의 치료와 백신 같은 미시적인 접근은 감염인들을 개별화할 뿐 이들이 왜 취약한 조건에 있게 되었는지를 드러내지 못한다. 국가가 이들의 삶을 그대로 둔 채 방역 성공이나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할 수 있을까?
안녕하고 존엄한 삶을 위해서는 ‘확진자 숫자 줄이기’를 넘어 사람을 지키는 조치가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하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 최규진이 강조한 감염병에 대한 거시기생적 접근을 위한 관점일 것이다. 거시기생의 개념이 감염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유는 ‘미시기생은 의학이고 거시기생은 사회학’이라는 도식을 넘어서게 하고, 이미 의학 안에서 사회구조적 접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감염병에 대처하는 정책이 왜 넓은 건강의 개념을 견지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해결을 긴밀하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의 위기는 확진자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느냐에 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삶의 총체, 삶의 존엄을 지키는 방역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를 높여갈 때 요양병원에서, 장애인수용시설에서, 구치소에서 한발도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던 시간을 돌아봐야 한다.
* * *
1) 정세균 "전쟁에 준하는 사태…불법행위자 즉시 검거", 경향신문, 2020.09.27.
2) “핼러윈발 클럽 감염폭탄 막아라”…경찰·서울시 합동단속, 뉴스1, 2020.10.27.
3) 지역감염 주범 누군가 봤더니…'확진자 부주의·무책임'이 폭탄, 뉴스1, 2020.09.06.
* 필자 소개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 인권활동가와 법률가로 구성된 공권력감시대응팀에서 경찰 등의 국가 공권력이 집회 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활동과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확장하는 활동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