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범죄화 - 문제점과 대안’ 연속강좌 ①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에서 4월 20일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감염병과 범죄화-문제점과 대안’ 연속강좌를 진행합니다. 강좌에서는 감염병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과 범죄화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합니다. 비마이너는 이 강좌를 수강하는 인권활동가들의 후기를 싣습니다.

[ 강의 순서 ]

① 감염병과 범죄화의 역사 - 혐오, 낙인, 공포를 규율하기 : 추지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② 감염병과 감금, 격리, 사회적 배제 : 김현철(토론토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③ 감염병과 차별: 코로나19와 HIV를 중심으로 : 윤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서채완(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④ 확진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 최규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⑤ 감염병과 관계성: 돌봄과 친밀성을 어떻게 재구축할까 : 서보경(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⑥ 대만의 HIV 감염인 비범죄화 운동 : 대만통츠핫라인, 대만감염인인권연합회

* 이 글은 2021년 4월 20일 진행된 추지현 님의 ‘감염병과 범죄화의 역사’ 강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2021년 4월 20일,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주최한 ‘감염병과 범죄화 - 문제점과 대안’ 연속강좌의 1강이 진행되었다. 1강의 주제는 ‘감염병과 범죄화의 역사’였다. 추지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진행한 1강의 핵심 개념은 ‘범죄화’이다. 범죄화란 특정 개인을 범죄자로, 특정 행위를 범죄로 명명하는 과정이자, 이를 통해 특정한 존재나 행위에 대해 제재를 부과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범죄사회학자들은 범죄화를 둘러싼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왔는데 특히 어떤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는 과정에는 이미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해왔다고 한다. 하층 계급의 절도는 손쉽게 범죄로 규정되지만, 기업의 착취는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 현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범죄화 과정에 내포된 권력 관계를 통해 범죄는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범죄화 과정에서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형성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한국에는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존재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는데 이는 HIV 감염인들의 성행위 자체를 범죄화하며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 무엇이 체액인지, 무엇이 전파매개행위인지 정확히 규정하지 않는 이 법은 HIV 감염인의 행위를 언제든 범죄로 만들 여지만을 남겨둘 뿐이다. 이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기보다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규율”로 작동한다.

한센인 시신 해부가 이뤄졌던 소록도 검시실. 소록도 주민에 의하면 1996년까지 오른쪽 선반에는 낙태한 태아 표본을 포르말린액에 담아 보관한 유리병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강혜민
한센인 시신 해부가 이뤄졌던 소록도 검시실. 소록도 주민에 의하면 1996년까지 오른쪽 선반에는 낙태한 태아 표본을 포르말린액에 담아 보관한 유리병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강혜민

-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제도화한 ‘전염병예방법’

이번 강의에서는 감염병과 관련된 법의 역사를 통해 특정 존재들이 규율되는 방식을 짚어보았다. 지금의 감염병예방법은 1954년 ‘전염병예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은 과거부터 존재한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제도화했다.

전염병예방법 제정 이후 감염병 환자의 특정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과 특정 집단에 대한 강제검진 및 취업제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한센병은 ‘열등한 피식민지인의 몸을 상징’하는 질병이자 조선인의 인종적인 특징에서 기인하는 질병으로 다루어진 맥락이 있으며, 한센병 환자에 대한 온갖 소문들과 공포에 찬 담론이 성행하기도 했다. 한센병에 대한 공포는 국가로 하여금 한센병 환자를 강력히 규제하도록 만들었고 전염병예방법 또한 이러한 과정의 연속선 상에서 추동된 법이라는 연구들이 있었다.

식민지기 서구적 도시화 과정의 산물로 다뤄진 성매개감염병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특히 성매개감염병의 경우 성판매 여성을 감염의 진원지로 다루며, 성매매라는 행위나 성구매 남성을 규제하는 방식이 아닌 성판매 여성을 관리하고 제한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1954년 제정된 전염병예방법 자체가 미군 장기 주둔에 따라 미군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는 연구 또한 존재하는데, 이러한 연구들은 전염병예방법의 시행령이 성판매 여성의 성매개감염병 검진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센병과 마찬가지로 성매개감염병 또한 특정 집단을 병의 근원으로 여긴다. 특정 집단에 대한 규율을 통해 감염병을 통제하겠다는 상상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 1980년대~현재, ‘인권 없는’ 법 개정으로 강화되는 감염인 혐오

1980년대에 가면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성판매 여성에 대한 검진이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1984년에 성병 건강진단규칙을 개정하면서 강제적 진단 조항은 삭제되었지만, 영업자를 처벌하는 방식을 통해 간접통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1985년 한국에서 처음 에이즈가 발생하고 88올림픽 등으로 관광객이 다수 입국할 것이 예상되면서 “이국적이고 치명적인 전염병이 확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1987년 ‘유흥접객업소 종업원’과 성접촉을 통해 에이즈가 발생했다는 사례가 늘자 성판매 여성에 대한 에이즈 검사가 확대되었고 1987년 에이즈예방법이 별도로 제정되었다.

1988년 여성단체 및 보건의료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에이즈 추방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당시 여성단체가 주장한 바는 미군이 에이즈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는 여태까지 HIV를 비롯한 성매개감염병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성판매 여성이 아니라, 남성 성구매자에게 감염의 책임을 부과하는 전복적인 시도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은 강제검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이 아닌, 미군 남성 또한 검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감으로써 강제 검진 자체의 문제, 감염병에 따른 낙인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1988년 에이즈예방법이 처음으로 개정되었고 여기서 “공중과의 접촉이 많은 업소종사자”를 의무검진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성판매 여성에 집중된 강제검진은 지속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성매매 목적의 해외 관광이 증가하고, 미군 감축으로 인한 기지촌 쇠락, 기지촌 낙인 등에 따른 한국 여성의 성시장 참여 변화와 해외 여성의 이주 현상이 발생하면서 검진의 강제성은 약화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들이 등장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감염병예방법은 여러 차례 개정되기도 했다. 법은 계속해서 개정되었지만 ‘인권’이라는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법 개정은 감염병 범죄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법이 개정되는 동안 감염인에 대한 처벌과 혐오, 제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 4월, 장애계와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인정을 촉구하며 차별 진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HIV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 정부는 적극 구제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지난 4월, 장애계와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인정을 촉구하며 차별 진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HIV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 정부는 적극 구제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 감염의 구조적 요인 은폐하는 ‘감염병의 범죄화’

지금까지 정리한 바와 같이, 감염병예방법의 역사를 이야기한 추지현 님의 이번 강의는 감염병 범죄화의 효과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감염병예방법은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특정 집단을 범죄화하는 힘에 기대어 작동해왔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성매개감염 가이드라인1) 또한 성매개감염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위험인자’의 예로 ‘마약 중독자’, ‘성접대부’, ‘길거리 청소년’, ‘익명의 성파트너(인터넷만남, 즉석만남, 광란의 파티)’와 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현재 보건의료영역이 가진 사회적 낙인을 그대로 드러낸다.2)

‘감염병의 범죄화’는 감염병의 ‘위험인자’로 여겨지는 존재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할 명분이 되어왔다. 강의에서 지적하듯, 범죄화를 통한 사회적 낙인은 감염인의 사회적 관계망을 파괴하고 이런 사회적 관계망의 부재는 감염인들에 대한 착취로까지 쉽게 연결된다. 또한, 감염병의 범죄화는 검진의 기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감염병 환자, 또는 위험인자로 구획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감염병의 범죄화는 특정 ‘집단’, 특정 ‘개인’을 범죄화함으로써 감염의 구조적 요인을 은폐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지 않고, 그 당사자만을 범죄화하는 것은 감염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번 강의의 결론은 감염병 범죄화의 해소는 감염병에 얽힌 여러 문제를 해결할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주장에 깊이 동의하며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코로나19는 감염이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안전과 다른 사람의 안전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지 않았던가? ‘감염’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언제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연결됨으로 인해 발생할 어떤 사건들, 그러니까 ‘감염’이라는 일상적 사건을 범죄화하지 않고, 감염병에 관한 대안적인 법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감염병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규범을 어떻게 해체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남은 강의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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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매개감염 진료지침, 질병관리본부·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2016

2) 최예훈, 셰어 이슈페이퍼 2020년 4월호 ‘성매개감염의 위험과 쾌락을 협상하기’

* 필자 소개 _ 김보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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