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과학잡지 에피 공동기획 : 장애와 테크놀로지

접근성을 고민하다 보면, 장애인의 몸에서 사회 환경으로 초점이 조금씩 이동한다. 장애인권 활동을 통해 나에게 가장 체화된 것은 턱이나 계단, 복도의 너비를 미리 확인하고, 수어·문자통역, 화면해설, 표준 텍스트 파일을 제공하는 등의 지침이었다. 접근성은 무엇보다도 동등한 참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하지만 과연 접근성은 최소한의 조건일 뿐일까? 하나의 행사에는 원래도 많은 사람과 기계가 결합하지만, 접근성을 고려하면서 행사를 구성하면 더 많은 사람과 기계가 연결된다. 여기서 기계는 행사를 준비하고,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기계의 적절한 작동 여부나 기계들의 결합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바뀌고, 어떤 사람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접근성을 고민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사물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사물과 사람의 역할이 결과적으로는 같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접근성을 표현한 인포그래픽. 출처 픽사베이 
접근성을 표현한 인포그래픽. 출처 픽사베이 

『인간·사물·동맹』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기획된 책이다. 이 이론은 인간과 사물을 대등한 행위자(actor)로 간주하고, 행위자들 각각의 속성과 그 사이의 네트워크를 치밀하게 기술(description)한다. 책에서는 여러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는 프랑스 생브리외만(灣)에서 가리비 양식 가능성을 탐구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행위자는 연구원들, 어부들, 과학자 동료들뿐 아니라 가리비, 해류, 기생충까지도 포함하고, 이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는 아주 상세히 기술된다.

나에게 이 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권력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는 “한 행위자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다른 행위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는 통상적인 의미이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는 권력이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안에서 발생하며, 권력을 가진 행위자는 “더 큰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큰 네트워크는 “더 많은 행위자가 더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이다.1)

이 정의는 접근성과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이 곧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행위자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근성은 권력을 얻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앞서 언급한 ‘최소한의 조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여기서 나아가, 권력을 네트워크와 연관 지어 정의하는 방식이 장애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empowering)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는 기술과 결합하며 ‘지금 당장’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실천과 정체성을 다룬다. 기술 발전은 장애인들의 삶에 이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장애인 개인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혹은 적응할 수 있다는 압박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 발전에 단지 열광하거나 반대할 수 없고, 기술과 끊임없는 협상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특히 나에게는 기술과 매끄럽지 않게 결합하면서,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의 기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동원하여 자동차의 접근성을 높이는 “청테이프형 사이보그”들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휠체어와 보청기를 사용하는 Y, 그에게 양도한 J의 자동차, 음성 자막 변환 애플리케이션과 스마트 기기들, 자막이 없는 동영상 강의와 자막을 입력한 J의 아버지 A, 휠체어의 적재를 돕는 오토박스, 자동차 정비사 B,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수많은 기계와 기술은 한 자동차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처럼 “Y를 중심으로 연결된 사람과 기계들의 네트워크”2)는 Y가 자신의 접근성을 위해 다른 행위자들을 ‘동원’하는, 권력을 가진 행위자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동차에 오토박스를 설치하는 과정 전반에서 핵심이 Y의 접근성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접근성의 고려는 그 자체로 장애인 당사자를 권력을 가진 행위자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이나 농인의 존재와 실천이 문자통역사나 수어 통역사, 이들과 연결된 다른 행위자들을 동원하는 것도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다. 나는 주변에서 접근성을 보장받는다는 이유로 다른 참여자들보다 큰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대학 수업에서 문자통역사나 대필 도우미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할 때, 장애인 당사자는 어떤 일이 있든 마음 편히 수업에서 빠지기 어렵다. 혹은 접근성을 고려하는 기관이 너무나 없는 나머지, 일단 최소한의 접근성이 확보된 곳에서는 통역 과정에서의 오류와 같은 문제를 말하기 어려워진다. 아직 장애인들의 네트워크는 충분히 튼튼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그림. 출처 픽사베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그림. 출처 픽사베이 

나는 『시몽동의 기술철학: 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청사진』에서 하나의 활로를 찾는다. 특히 시몽동의 ‘소외’에 관한 논의에서 힌트를 얻었다. 소외를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자만이 경험하는 문제로 정의하는 이론가들과는 달리, 그는 소외를 기술적 대상들의 진화에 따라 사람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즉 새로운 기술과 관계 맺는 데에 실패하여 겪는 “심리적-집단적 불안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3) 계급에 따라 양상이나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외는 인간과 기계 사이 관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모두 거부하며, 핵심은 기술적 대상과 관계 맺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기술적 대상은 단지 야생에서 인간의 부족한 신체 능력을 보완하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가 아니다. 현실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휠체어는 단지 누군가의 이동을 돕기만 하지 않고, 사용자의 근육 구조나 몸의 습관, 환경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바꾼다. 기술적 대상과 함께할 때 우리는 아예 새로운 경험들을 마주하며, 몸과 기계 사이에서는 끝없는 협상이 벌어진다.

시몽동이 제안하는 새로운 인간상은 “기술자로서의 인간”이다. 기술자로서의 인간은 기술적 대상들을 사용, 발명, 수리, 조절, 유지하고, 그 기능과 작동에 세심하게 주의하는 “기술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핵심은 특정 기술에 관한 자격증이나 학위가 아니다.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우리는 이미 일상 속 “기술자로서의 인간”을 만났다. 앞서 언급한 “청테이프형 사이보그”, 그리고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가 자동차, 온라인 플랫폼 등에 개입하여 접근성을 개선하는 과정은 자신의 몸과 기술적 대상, 그리고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적 활동이다.

접근성을 고민하는 것이 매번 다른 몸에 맞게 기술적 대상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기술적 활동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접근성은 기술적 대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인간 모두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성은 특정 인구집단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조건에 관한 물음이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할 때 ‘나 때문에 마련한 편의’로 인해 부담을 느끼는 당사자들 또한 더 자유로워지고, 경사로, 문자통역사, 속기 키보드, 수어 통역사, 점자정보단말기 등이 연결된, 접근성을 위한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말이 비로소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세 권의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우리는 접근성과 권력의 관계를 장애를 중심에 두고 새롭게 사유할 수 있다. 나아가 접근성이 기술에 대한 하나의 판단 기준을 넘어,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가 기술과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데에 필수적인 열쇳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장애인에게 권력이 부여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체제 변혁적 가능성까지도 갖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에 담긴 기술철학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장애인의 구체적인 현실이 연결될 때, 접근성은 더욱 급진적인 개념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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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욱, 「7가지 테제로 이해하는 ANT」, 브루노 라투르 외, 『인간·사물·동맹: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이음, 2010, 25, 30쪽

2) 김원영, 「청테이프형 사이보그」,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113쪽

3) 김재희, 『시몽동의 기술철학: 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청사진』, 아카넷, 2017, 126쪽

* 필자 소개

안희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의 칼럼니스트이자 객원기자. 아픈 사람으로서 질병권을 고민하며, 질병과 장애 사이의 경계를 살피고 연대를 모색한다.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을 썼다.

* 이 글은 비마이너가 공동기획한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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