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나의 언어가 존중받기를
- 예쁜 목소리는 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몇 해 사이에 숨 쉬는 게 힘들어지고 음식을 먹을 때 사래걸림이 심해졌다. 원래 폐활량이 굉장히 낮은 편이었고 뇌병변 장애 특성 중 하나인 호흡조절에도 어려움이 있었던지라 크게 걱정은 안 했다. 일상적으로 호흡이 불규칙해 숨이 차오르는 것뿐이라고 혼자 진단했다.
증상이 더 악화하면서 위기감이 몰려왔다. 연하장애(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장애) 검사를 받았다. 연하장애 검사는 가끔 받고 있는데 검사를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밍밍한 요구르트 같은 물질을 삼켜야 하며(맛에 민감한 나는 이 물질을 삼킬 때마다 헛구역질을 해댄다) 엑스레이 촬영 화면으로 물질을 삼킬 때 식도에 걸리는 건 없는지, 식도가 좁아져 있지 않은지 촬영한다.
이번 검사에서 예전보다 연하장애가 더 악화하였다는 결과가 나와서 주치의 교수님은 내게 한 가지를 제안하셨다. 발성 치료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정식 치료가 아닌 연구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나와 같은 케이스를 모집 중이라고 했다. 임상 치료라 의료비도 안 들고 효과를 본 환자도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흔쾌히 승낙해 버렸다.
얼마 뒤에 발성 치료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는 일주일에 두 번씩 한 시간 동안 “아~~~” 소리를 길게 내고 목소리 높낮이 조절 훈련과 함께 몇 주간 단어, 문장, 문단을 읽는 연습을 하는 형태였다. 소리도 그냥 내는 것이 아니라 “예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게 목표이다. 처음 받아보는 치료라 힘도 들고 한 시간 동안 떠들어대면 기운이 쭉 빠진다. 아픈 몸 때문에 받는 치료라지만 예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치료사의 말에 가시가 박힌 듯하다. 예쁜 목소리는 도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 가족은 내게 ‘집 전화 받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어릴 적에 온갖 치료를 다 받았지만, 언어치료는 따로 받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언어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온종일 쫑알쫑알 말 많은 시끄러운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장애가 진행되면서 안면마비와 함께 언어장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어장애가 나타나면서 발음이 어눌해지고 목소리 톤도 수시로 변해갔다.
함께 살던 가족은 내게서 언어장애가 급격히 보이자 언젠가부터 집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집에 장애인이 있다는 걸 주변인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내가 낯선 사람 혹은 별로 안 친한 사람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안 받거나 피하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친분이 별로 없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 할 상황이면 전화가 울리는 순간부터 온몸에 긴장감이 맴돈다. 전화기 건너편 사람이 조금이라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순식간에 혀가 얼음이 되고 성대 쪽에서 잠금장치가 생겨 나오려던 목소리가 안 나온다. 아무리 쥐어짜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내가 여러 번 말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란 짐작과 또박또박 나오지 못할 나의 음성에 두려움이 생긴다. ‘전화기 너머 사람이 혹시 장애인이란 걸 알게 되면 상대가 무시하지 않을까?’란 나의 무의식이 작동해 버리는 느낌이다.
그동안 내 장애에 대해 수십 번 써 왔지만, 신기하기도 나의 언어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이 없다. 언어장애로 인해 받는 차별이 너무나 익숙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언어장애는 신체적 장애와 별개로 또 다른 차별의 표적 대상이 된다. 차별이 뼛속 깊게 새겨져 있어서 무엇부터 고민을 풀어야 할지 아직도 머릿속이 어지럽다.
-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차별은 시작된다
나의 언어장애는 언어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이 그렇듯,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찰떡처럼 잘 알아들어서 언어장애가 심한지 못 느끼는 주변 친구들도 몇 명 있다. 음성언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몸 컨디션에 따라 언어장애 정도가 달라지곤 한다.
어떤 날에는 말하는 나조차 이상할 정도로 말이 술술 나올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단어 하나 말하기도 힘든 날이 있다. 말하기 힘든 날에는 온몸에 힘을 끌어모으고 성대를 쥐어짜며 말해야 해서 괴기한 음성이 나올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어눌한 발음으로 알아듣기 힘든데 목소리 톤까지 좋지 않게 나오면 그날은 집 밖을 나오기 싫을 만큼 위축감이 상당하다. 아무도 내게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이런 나의 언어 상태와 다르게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는 빠른 소통과 알아듣기 편한 언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언어장애로 겪은 차별 사례만 써도 책 한 권은 거뜬하게 나올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나의 신체적 장애보다 언어장애를 가진 목소리로 모든 걸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나를 ‘아무것도 말할 줄 모르는 무능한 장애인’으로 빠르게 판단하고는, 말 시키는 것을 주저하거나 얼른 주변 보조인을 찾는다. 때론 청각 장애까지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게 “보호자 어디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한다. 혹은 단어 하나 말했을 뿐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보호자 없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자주 듣는다.
언젠가 한 번은 용기를 내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강의 첫 시간에 수강자들이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차례가 돼서 긴장된 몸짓을 하며 ‘잘 말해 보자’ 마음을 먹고 “저………”라고 말하려는데 강사가 다짜고짜 “아, 거긴 쉬는 시간에 쪽지로 써서 줘요. 글은 쓸 수 있죠?”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혀가 굳어지고 성대는 음을 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결국 강의를 다 듣지 않은 채 나와서 해당 홈페이지에 장문의 항의 글을 올리며 환불을 요구했다. 이후 사과와 강의 비용 환불은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 소통 방식은 내가 정할게!
내가 언어장애로 인해 받았던 차별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AAC(보완대체의사소통) 사용을 권유한다. AAC가 언어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획기적인 보조기기는 맞지만, 시간 격차가 중요한 사람 간의 소통에서는 AAC도 한계가 있다. 특히 손에 장애가 있어서 단어 누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빠르게 오고 가야 할 대화에서는 이것도 무용지물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혐오의 말을 내게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빠르게 맞대응을 해줘야 하는데 AAC 입력할 시간이면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사실 AAC 누르는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사회라면 장애 차별도 없을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내가 말을 많이 해서 힘들까 봐, 혹은 나의 목소리가 듣기 편하지 않아서 말 대신 글을 요구할 때도 많다.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노동일 때도 있는데 무조건 글 쓸 것을 요구받게 되면 불편해질 때도 많다. 솔직히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친한 사람과 있으면 몇 시간을 혼자 떠들다가 ‘아차! 친구의 말도 들어야지’ 할 때도 있다. 언어장애가 있다고 해서 과묵하거나 말하기 싫은 건 아닌데 듣는 쪽이 편한 방식으로 택해질 때, 나는 분노가 생긴다.
올해 초, 센터에서 또 다른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공무원과 상대할 일이 많아졌다. 이전 다른 센터에서 근무할 때도 공무원과 직접 소통을 많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나 힘들었다. 언어장애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한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보면 온몸의 힘이 쑥 빠진다. 활동지원사를 통해 대리 소통도 해보았지만, 내용을 모르는 활동지원사에게 소통 지원을 받는 게 더 늪에 빠지는 일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 웬만해선 직접 소통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식 개선 교육 차원에서 공무원도 언어장애를 가진 담당자와 소통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서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공무원과 소통하는 일은 여전히 자신이 없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센터에서는 공무원과의 소통을 다른 동료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동료들한테 미안함과 동시에 과연 이것이 맞는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나의 언어가 언어로 존중받으며 내가 어떤 수단으로 소통할지 선택할 수 있게 기다려 주는 사회가 된다면 나도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